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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4살 버틀러는 일부러 수업을 방해했어요.
그리고 그 벌이 자신이 가장 원하던 것이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죠.
1956년 미국 클리블랜드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주디스 버틀러는 헤브라이 학교에 다녔어요.
헤브라이 학교란 유대인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종교 교육 기관인데, 쉽게 말하면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따로 다니는 종교 과외 교실 같은 곳이에요.
버틀러는 거기서 일부러 분위기를 흐트러뜨려서 랍비에게 끌려가는 1:1 보충 수업을 받아냈어요.
그 자리에서 랍비는 버틀러에게 마르틴 부버, 키르케고르, 스피노자를 읽혔어요.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의 관계로 인간 존재를 설명한 유대인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불안과 선택을 파고든 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을 하나로 본 네덜란드 철학자예요.
학교에서 가장 말썽꾸러기였던 아이가 사실 가장 진지하게 책을 읽고 싶었던 아이였던 거예요.
처벌이 보상이 되는 상황, 딱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원하는 걸 스스로 알고 있을 때요.
14살의 버틀러는 이미 그걸 알고 있었어요.

1990년, 페미니즘 학술서 한 권이 학자들의 서가가 아니라 대학가 거리에서 닳아갔어요.
버틀러의 박사논문은 원래 19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을 다른 철학자들이 어떻게 읽어왔는지를 추적하는 연구였어요.
그런데 그 헤겔 연구자가 1990년에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을 내놨고, 학계가 뒤집혔어요.
페미니즘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해체해버린 책이에요.
어려운 학술서인데도 10만 부 이상 팔렸고 30개국 언어로 번역됐어요.
두꺼운 이론서가 동네 도서관이 아닌 시위 현장 가방 속에 꽂혀 있는 상황과 같아요.
버틀러 본인도 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어요.
사실 그녀가 건드린 건 단순한 성별 논쟁이 아니었어요.
"여성을 위한 운동이 '여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가정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었어요.
그 질문이 당시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 불편한 진실처럼 받아들여진 거예요.

버틀러에게 "나는 여자다"라는 감각은 태어날 때 부여받은 것이 아니에요.
매일 아침 새로 연기되는 것이에요.
버틀러의 핵심 개념은 수행성(performativity)이에요.
젠더가 내면에 원래 존재하는 본질이 아니라 반복된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주장이에요.
아침마다 특정 방식으로 화장을 하고 옷을 고르고 말투를 조율하는 그 동작 하나하나가 "나는 여자다"라는 정체성을 매일 새로 구성하고 있다는 거예요.
버틀러는 이 개념을 언어철학에서 가져왔어요.
영국 철학자 존 오스틴은 말이 현실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낸다는 이론을 제시했는데, 결혼식 주례사의 "이제 두 사람을 부부로 선언합니다"가 대표적인 예예요.
그 한 문장이 발화되는 순간, 두 사람의 법적 관계가 새로 생겨나는 거니까요.
버틀러는 이걸 젠더에 적용했어요.
"여자라서 이렇게 행동한다"가 아니라 "이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여자로 읽힌다"는 거예요.
순서가 뒤집혀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여자다움'이, 실은 수십 년간 반복된 무대 위 퍼포먼스라는 거예요.
무대가 너무 익숙해져서 연기라는 걸 잊어버린 것뿐이고요.
본질주의를 해체한 철학자에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장은, 결국 "나는 ___이다"였어요.
2020년 인터뷰에서 버틀러는 자신이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밝혔어요.
논바이너리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성별 범주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정체성이에요.
그리고 자신을 가리킬 때 she 대신 they/them 대명사를 써달라고 했어요.
『젠더 트러블』을 쓸 때 she였던 사람이 70대에 와서야 자기 호칭을 바꾼 거예요.
30년 전 책에서 모든 정체성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그 사람이, 정작 자신의 정체성에 라벨을 붙이는 데 평생을 주저했던 거예요.
이게 모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반대예요.
버틀러가 말해온 것과 정확히 일치해요.
정체성은 한 번에 확정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다시 쓰인다는 거니까요.
평생 "나는 내성적이다"라고 말해왔는데 어느 날 "사실 잘 모르겠다"고 인정하는 것, 그게 혼란이 아니라 솔직함일 수 있잖아요.
버틀러가 70대에 they를 택한 건 늦은 발견이 아니라, 자신의 이론을 자기 몸에 끝까지 적용한 결과예요.
"여자란 무엇인가"를 평생 파고든 철학자가 마지막에 내린 결론은 "나는 잘 모르겠다"였어요.
그런데 그 대답이 가장 용기 있는 대답일 수도 있어요.
당신은 "나는 ___이다"라는 빈칸을 얼마나 확신하며 채우고 있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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