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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31년 토크빌이 프랑스 정부에 제출한 출장 신청서엔 감옥 제도 연구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는 감옥에 거의 가지 않았어요.
25세의 알렉시 드 토크빌과 친구 귀스타브 드 보몽은 정식 허가를 받아 1831년 봄 대서양을 건넜어요.
명목은 미국의 교도소 시스템을 시찰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
하지만 9개월 동안 두 사람이 실제로 한 일은 완전히 달랐어요.
17개 주, 약 7,500마일을 돌았어요.
오늘날로 치면 서울에서 출발해 지구를 3분의 1바퀴 돈 거리예요.
회사 출장을 한 가지 목적으로 승인받고 정작 다른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쓴 셈이에요.
진짜 목적은 처음부터 따로 있었거든요.
토크빌이 알고 싶었던 건 민주주의 그 자체였어요.
당시 유럽은 왕정이냐 혁명이냐를 두고 갈기갈기 찢겨 있었어요.
그런데 대서양 건너편에 이미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나라가 있었어요.
그는 그 나라를 직접 눈으로 보러 간 거예요.
토크빌이 뉴욕에 내렸을 때 그는 25살이었어요.
그의 외증조부는 단두대에서 죽었고, 부모는 그 앞에 줄을 서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어요.
1794년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 시기, 토크빌의 외증조부 말제르브가 처형됐어요.
말제르브는 국왕 루이 16세의 재판정에서 왕을 직접 변호한 법관이에요.
당시 그 자리에 나서는 건 사형 선고를 자처하는 것과 다름없었는데, 그는 했어요.
토크빌의 부모도 잡혀 들어갔어요.
처형 날짜를 기다리며 감옥에 있다가, 독재자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면서 간신히 풀려났어요.
토크빌의 아버지는 그 시절을 겪으며 21세에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셌어요.
그런데 토크빌은 가문을 무너뜨린 사상을 평생 미워하는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어요.
혁명과 평등이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 끝까지 이해하겠다고 결심한 거예요.
가족을 죽인 사상의 메커니즘을 평생 연구해 책으로 남긴 사람.
증오가 아닌 분석으로 간 사람.
그게 토크빌이에요.
9개월 동안 토크빌이 본 미국의 진짜 본질은 자유가 아니었어요.
평등이었어요.
1831년 5월부터 1832년 2월까지 그는 뉴잉글랜드, 오대호, 미시시피 강, 뉴올리언스, 남부 농장, 워싱턴까지 이동했어요.
증기선 안에서 농부, 상인, 노예 소유주, 자유 흑인, 인디언 추장과 직접 대화를 나눴어요.
매 대화마다 노트를 꺼내 기록했어요.
그가 미국 곳곳에서 반복해서 발견한 건 한 가지였어요.
그는 이걸 "조건의 평등(equality of conditions)"이라고 불렀어요.
모두가 동등하다는 감각이 정치뿐 아니라 경제, 관습, 언어, 심지어 말투까지 사회 전체를 움직이고 있다는 거예요.
유럽에서 온 귀족 눈에 이게 얼마나 낯설었을지 생각해봐요.
프랑스에서라면 귀족과 농부가 같은 식탁에서 반말로 얘기하는 일 자체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미국에선 그게 당연했어요.
그렇다고 토크빌이 그 평등을 아름다운 것으로만 보지는 않았어요.
평등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함께 봤거든요.
모두가 같은 위치에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을 옆 사람과 끝없이 비교하게 된다고 그는 기록했어요.

토크빌이 가장 두려워한 폭정은 왕의 폭정이 아니었어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였어요.
1835년 출간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토크빌은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놨어요.
이 책은 출간 직후 유럽 전역에서 읽혔고, 그는 30세에 정치사상가로 이름을 알렸어요.
왕의 폭정과 다수의 폭정은 작동 방식이 달라요.
왕이 무언가를 금지하면 반대할 대상이 눈에 보여요.
하지만 여론이 무언가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회에선 반대할 대상 자체가 사라져요.
그냥 공기처럼 퍼진 압박이 다른 목소리를 서서히, 조용하게 지워버려요.
토크빌은 이 메커니즘을 미국에서 직접 목격했어요.
결국 그는 이렇게 썼어요. "미국에서 독립적인 사고와 진정한 토론의 자유가 이토록 적은 나라를 나는 알지 못한다."
나중에 그는 이것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온화한 전제정(soft despotism)"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폭력 없이 국민을 어린아이처럼 편안하게 돌보면서 동시에 모두를 비슷비슷하게 만들어버리는 통치 형태예요.
SNS에서 다수가 같은 의견을 외치면 다른 목소리가 조용히 사라지는 걸 본 적 있나요.
토크빌은 그 메커니즘을 200년 전에 이미 종이 위에 적어놨어요.
민주주의를 가장 냉정하게 분석한 사람이 동시에 민주주의의 가장 깊은 병을 처음으로 이름 붙인 사람.
단두대가 가문을 무너뜨린 후손이 쓴 책이, 지금도 정치학 강의실에서 읽히고 있어요.
당신 옆 사람도 지금 이 순간 그 병의 어느 단계에 있는 건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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