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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문주의를 연 첫 행위는 죽은 사람에게 쓴 항의 편지였어요.
1345년 봄, 페트라르카는 베로나 대성당 도서관 구석에서 낡은 양피지 묶음 하나를 발견했어요.
거기 적힌 건 키케로가 평생 친구 아티쿠스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들이었어요.
키케로는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철학자이자 웅변가로, 페트라르카에게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어요.
그런데 편지 속 키케로는 달랐어요.
정치적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동료의 뒤를 흉보고, 결정을 내렸다가 번복하는 평범한 인간이었거든요.
충격을 받은 페트라르카는 곧장 1400년 전에 죽은 키케로에게 직접 편지를 썼어요.
편지에서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영웅의 모습이 사라졌다며 책망했어요.
평생 우상이었던 작가의 비공개 계정을 발견했더니, 그가 동료를 은근히 깎아내리던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된 기분이에요.
그 환멸의 순간이 인문주의의 시작점으로 꼽혀요.
인문주의란 신과 교회가 모든 것의 중심이던 중세를 뒤로하고, 인간 그 자체를 탐구하자는 흐름이에요.
환멸이 먼저였고, 새 시대는 그다음에 왔어요.

그날 정상에 도착한 페트라르카는 잠시 어색하게 서 있었어요.
그 시대 유럽에는 풍경을 보려고 산에 오른다는 행위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1336년 4월 26일, 페트라르카는 동생 게라르도와 함께 남프랑스 몽 방투에 올랐어요.
해발 1909m, 주변 평야에 홀로 우뚝 솟은 봉우리예요.
이유는 딱 하나, "꼭대기에서 경치를 보고 싶다"는 거였어요.
당시 사람들은 산을 피해야 할 장애물로 여겼어요.
순례자나 상인이 어쩔 수 없이 넘는 곳이었지, 그냥 '보러' 오르는 건 없던 일이었어요.
그런데 페트라르카는 그냥 올라갔어요.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가져온 책을 펼쳤어요.
4세기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고백록』이었는데, 손이 닿은 자리를 무심코 읽으니 이런 문장이 나왔어요.
"사람들은 산꼭대기를 찬탄하면서 자기 자신은 잊는다."
그는 책을 덮고 곧장 하산했어요.
경치를 보기 위해 올라갔다가, 경치를 보는 자기 자신을 들킨 것 같아 내려온 거예요.
카페 창가에서 노을을 30분 멍하니 보다가 "이런 한가한 짓을 하다니" 하고 자책하며 일어선 적 있다면, 그게 딱 이 순간이에요.
근대적 감각의 출발점과 중세적 죄책감의 마지막 잔재가, 그 산 정상에서 동시에 만났어요.

그가 라우라를 처음 본 날부터 마지막 시를 쓴 날까지 31년이 흘렀어요.
그동안 두 사람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어요.
1327년 4월 6일 성 금요일, 페트라르카는 아비뇽 생트클레르 교회에서 한 여인을 봤어요.
아비뇽은 당시 교황청이 있던 도시였어요.
그 여인이 바로 라우라, 이미 결혼한 귀족 여성이었어요.
그날 이후 21년을 페트라르카는 그녀를 위한 시만 썼어요.
1348년 라우라가 흑사병으로 죽은 뒤에도 10년을 더 썼어요.
결국 총 366편이 모여 『칸초니에레』, 이탈리아어로 '노래책'이라 불리는 시집이 됐어요.
그런데 두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대화를 나눴다는 기록이 없어요.
매일 출근길에 마주치는 카페 직원에게 31년 동안 매일 시를 한 편씩 썼는데, 단 한 번도 그 카페에 들어가 본 적은 없는 상황이에요.
서구 사랑시 전체의 원형이 된 작품이, 실제로 존재한 적 없는 관계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자기 명성이 라틴어 서사시에 달려 있다고 믿었어요.
그 책을 지금 읽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1341년, 페트라르카는 로마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계관시인으로 즉위했어요.
고대 로마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던 의식으로, 페트라르카 이후 수백 년 만에 처음 부활한 행사였어요.
그 자리에서 그가 내세운 대표작은 『아프리카』, 로마 장군 스키피오의 일대기를 담은 라틴어 대하 서사시였어요.
페트라르카는 평생 라틴어를 '진짜 언어'로, 이탈리아어를 '일상어' 정도로 여겼어요.
그래서 366편의 사랑시 『칸초니에레』를 'nugae(누가에)'라고 불렀어요.
라틴어로 '잡문' 혹은 '시시한 것'이라는 뜻이에요.
"나는 라틴어로 영원을, 이탈리아어로 순간을 쓴다"고 그는 직접 적었어요.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어요.
『칸초니에레』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비롯해 이후 서구 사랑시 전체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평생 공들인 학술서보다 술자리에서 끄적인 농담 트윗이 더 오래 살아남은 작가처럼, 그가 가장 부끄러워한 글이 그를 영원하게 만들었어요.
어쩌면 가장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가장 오래 남는 건지도 몰라요.
페트라르카 자신은 끝내 그 이유를 알지 못했을 테지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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