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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레싱이 죽은 지 4년 만에, 야코비는 그의 무덤을 열었어요.
그가 꺼낸 것은 시신이 아니라 한 줄의 고백이었습니다.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은 18세기 독일 계몽주의의 거장이에요.
계몽주의란 쉽게 말해 "신보다 이성, 전통보다 논리"를 앞세운 지적 혁명으로, 레싱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자이자 철학자였죠.
그런데 1785년, 야코비는 『스피노자 학설에 관한 편지』라는 책을 펴내며 폭탄 같은 주장을 했어요.
"레싱이 살아생전 나에게 직접 고백했어요. '나는 스피노자주의자야'라고요."
스피노자주의란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상이에요.
핵심은 단순해요. 신과 자연은 하나다, 인격신은 없다, 자유의지도 없다, 모든 것은 필연이다.
당시로선 사실상 무신론 선언과 같은 말이었어요.
레싱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요.
반박할 수도, 해명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그는 사실 무신론자였다"고 폭로한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절친이 죽은 뒤 그의 비공개 일기를 SNS에 올린 거랑 같아요.
이 책 한 권이 독일 지성계 전체를 뒤흔들었어요.
'범신론 논쟁(Pantheismusstreit)'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신과 자연이 하나인가를 둘러싼 당대 최대의 철학 전쟁이었어요.
그리고 이 논쟁이 낳은 가장 극적인 결과가 하나 있어요.
레싱의 오랜 친구이자 유대인 계몽 철학자였던 모제스 멘델스존이 반박 원고를 들고 나가다 길에서 쓰러져 사망했어요.
야코비의 폭로가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야코비는 레싱을 깎아내리려던 게 아니었어요.
그는 계몽주의 이성이 결국 어디로 가는지 보여주려 했다고 했죠.
하지만 결과는 달랐어요. 가장 친밀한 대화를 무기로 삼아, 당대 가장 위대한 지식인의 명성에 불을 질렀어요.
모든 철학자가 이성에 매달릴 때, 야코비는 정반대를 외쳤어요.
이성을 끝까지 따라가면 신은 죽는다고요.
야코비의 논리를 따라가 볼게요.
이성은 모든 것에 '왜?'를 묻죠.
'왜 사랑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신은 왜 존재하는가'.
그 질문들의 끝에는 스피노자의 결론이 기다리고 있어요.
모든 것은 필연적 인과관계로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자연이고, 거기엔 기도를 듣는 신도 없고 선택을 하는 자유도 없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사랑? 뇌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이야. 감동? 신경 자극이고."
야코비는 이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정반대의 길을 제안했어요.
그것이 '살토 모르탈레(salto mortale)'예요.
이탈리아어로 '치명적인 도약'이라는 뜻으로, 곡예사가 목숨을 걸고 허공에 몸을 던지는 바로 그 동작이에요.
이성이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 논리를 내려놓고 신앙을 향해 몸을 던지라는 거예요.
칸트, 피히테, 헤겔이 이성으로 신을 구하려 안간힘 쓰던 시대였어요.
야코비는 그들을 향해 말했어요.
"그 노력 자체가 이미 무신론으로 가는 길이에요."
당연히 동료 철학자들은 황당해했어요.
18세기 독일 지성계에서 "이성을 버려라"는 말은 오늘날 의대 교수가 강의실에서 "과학을 믿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거든요.
하지만 야코비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는 자신의 입장을 '신앙의 철학(Glaubensphilosophie)'이라 불렀어요.
증명할 수는 없지만 즉각적으로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앎이라는 주장이에요.
한마디로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예요.

오늘날 누구나 쓰는 '허무주의'라는 말은, 야코비가 한 동료 철학자를 비난하려고 새로 만든 욕설이었어요.
1799년, 야코비는 독일 관념론의 거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어요.
피히테는 "세계는 자아가 만든다"고 주장한 철학자로, 당시 독일 철학계의 떠오르는 스타였죠.
야코비는 그 편지에서 피히테의 철학에 이름을 붙였어요.
"허무주의(Nihilismus)."
라틴어로 'nihil'은 '아무것도 없음'이에요.
야코비가 보기에, 피히테의 철학은 자아만 남기고 신도, 실재하는 세계도, 진짜 가치도 전부 지워버리는 이론이었어요.
그래서 욕처럼 던진 거예요. "당신 철학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잖아요."
그런데 이 단어의 타임라인이 놀라워요.
니체가 허무주의를 자기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한 건 야코비가 이 편지를 쓴 지 약 80~90년 뒤예요.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악령』에서 허무주의자 캐릭터를 그린 것도 70년 뒤였죠.
오늘 누군가가 "요즘 사는 게 다 허무해"라고 말할 때, 그 단어의 출발점은 신앙을 지키려던 한 독일 상인의 분노였어요.
무신론자가 만든 말이 아니에요.
정반대로, 신이 없어지는 게 두려웠던 사람이 만든 말이에요.
그 아이러니, 뭔가 좋지 않나요.
헤겔은 야코비를 "감정에 의존하는 철학자"라고 비웃었어요.
하지만 헤겔이 평생 가장 자주 반박한 이름이 바로 야코비였어요.
야코비는 철학자이기 이전에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어요.
그는 뒤셀도르프 근교 펨펠포르트(Pempelfort) 저택에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을 불러 모은 살롱을 운영했어요.
살롱이란 오늘날의 지식인 네트워킹 모임으로, 피초대자 명단이 곧 그 주인의 지적 영향력을 보여줬죠.
야코비의 살롱엔 괴테와 헤르더가 드나들었어요.
괴테는 『파우스트』를 쓴 독일 최고의 문호이고, 헤르더는 민족 문화와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철학자예요.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름들이 그의 응접실에 모인 거예요.
그런데 역사는 야코비에게 가혹했어요.
칸트, 피히테,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의 서사에서 야코비는 '그 사이에 끼어든 각주' 신세가 됐어요.
헤겔은 그의 철학을 '감정의 철학(Gefühlsphilosophie)'이라 불렀는데, 이성의 체계를 쌓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이건 사실상 "논리도 없이 느낌으로 철학하는 사람"이라는 비아냥이었어요.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이상한 장면이 보여요.
야코비가 만든 단어 '허무주의'는 니체, 하이데거, 실존주의를 거쳐 현대 사상을 정의하는 핵심 언어가 됐어요.
"이성만 밀고 가면 신은 죽는다"는 그의 경고는, 20세기 철학이 '신의 죽음' 이후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출발점이 됐고요.
야코비를 각주로 밀어낸 사람들의 언어 안에, 그의 생각이 살아있어요.
잊혀진 사람의 단어로 철학이 계속되고 있는 거예요.
야코비가 그걸 알았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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