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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야스퍼스의 책상 서랍에는 8년 동안 똑같은 자리에 작은 유리병 두 개가 놓여 있었어요.
자신과 아내가 함께 삼킬 청산가리였어요.
1937년,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유대인 아내 게르트루트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직에서 쫓겨났어요.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과 결혼한 사람은 협력자로 간주됐거든요.
그래서 부부는 결정을 내렸어요.
게슈타포가 문을 두드리는 순간, 둘 다 삼키자고.
가족사진 옆 서랍에 마지막 비상약을 두고 매일 아침을 맞이하는 부부를 상상해 보세요.
그 서랍을 열 때마다 "오늘은 아니구나" 싶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거예요.
그 상태로 8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있어요.
야스퍼스가 평생 연구한 개념이 바로 한계상황이에요.
한계상황이란 인간이 죽음, 죄책, 고통 앞에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순간을 말해요.
삶의 가장 가장자리, 피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그 벽 앞에 서는 경험이에요.
그는 그 개념을 서랍 속 청산가리와 함께 매일 살아냈어요.
책상에 앉아 한계상황을 쓰면서, 그 한계상황이 그의 집 거실에 있었던 거예요.

야스퍼스가 한계상황을 알게 된 건 책에서가 아니라, 매일 밤 침대 위에서 멈출 듯한 자기 숨소리에서였어요.
18세에 그는 기관지확장증 진단을 받았어요.
기관지확장증은 폐의 공기 통로가 비가역적으로 늘어나는 병이에요.
담당 의사는 말했어요. "30세 전에 죽을 겁니다."
그 진단을 받은 청년이 선택한 것은 의대였어요.
죽음을 선고받았으니 죽음을 연구하기로 한 거예요.
야스퍼스는 정신과 의사가 됐어요.
그리고 30세 되던 해인 1913년, 『일반정신병리학』을 출간했어요.
지금도 정신의학 교과서로 쓰이는 책이에요.
딱 선고받은 그 나이에, 자기 분야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을 책을 써냈어요.
하지만 그는 의학이 자기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의학은 "몸이 왜 죽는가"를 설명하는데, 그가 진짜 묻고 싶었던 건 "그래도 어떻게 사는가"였거든요.
그래서 그는 철학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매일 호흡을 세며 살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그 호흡 하나하나가 철학 재료가 됐어요.
결국 그 재료로 20세기 실존철학의 한 축을 세웠어요.
그리고 야스퍼스는 86세까지 살았어요.
시한부 선고를 무려 68년 초과했어요.

20세기 가장 가까웠던 두 철학자는, 결국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교단 복귀를 막는 의견서를 쓰면서 끝났어요.
1920년대, 야스퍼스와 마르틴 하이데거는 서로의 집을 오가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어요.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쓴 독일 철학자로, 지금도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혀요.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원고를 먼저 읽어주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1933년, 하이데거가 나치당에 입당했어요.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까지 맡았어요.
가장 친한 친구가 어느 날 정반대 진영의 완장을 차고 나타난 거예요.
야스퍼스의 아내는 유대인이었고, 그 친구가 입당한 당은 유대인을 말살하려 했어요.
편지는 끊겼어요.
1945년, 독일이 패망했어요.
하이데거의 교수직 복귀 심사에서 야스퍼스는 의견서를 제출했어요.
내용은 단호했어요. "그를 교단에 다시 세워서는 안 된다."
같은 실존을 연구한 두 사람이 동시대를 함께 살면서 정반대 선택을 했어요.
한 쪽은 권력과 손을 잡았고, 한 쪽은 8년 동안 청산가리를 품었어요.
야스퍼스는 그 차이를 끝끝내 용서하지 않았어요.

청산가리에서 풀려난 야스퍼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동족의 죄를 네 가지로 분류하는 거였어요.
1945년 미군이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어요.
이제 서랍을 비워도 됐어요.
그런데 야스퍼스는 안도하는 대신, 강의록을 펼쳤어요.
이듬해 나온 책이 『죄의 문제』예요.
그는 독일인의 죄를 네 가지 층위로 나눴어요.
형사적 죄는 직접 범죄를 저지른 개인의 죄예요.
정치적 죄는 그 정권 아래서 납세하고 투표한 시민 전체의 책임이에요.
도덕적 죄는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눈을 감은 개인의 양심 문제예요.
형이상학적 죄는 같은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이 죽어가는 것을 막지 못한 연대 실패예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내가 직접 해고 결정을 내리진 않았어도, 그 회의실 옆 복도에서 커피를 마시며 침묵했다면, 그 침묵도 죄라는 거예요.
"나는 그 회의실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요.
야스퍼스는 그걸로 부족하다고 했어요.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연루라는 거예요.
그리고 야스퍼스는 독일 지식인 중 가장 먼저 이 말을 공개적으로 했어요.
저항한 사람이 가장 먼저, 가장 엄격하게 동족의 죄를 물었어요.
하지만 1948년, 야스퍼스는 독일을 떠났어요.
스위스 바젤로 이주해 그곳에서 삶을 마쳤어요.
"독일이 충분히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였어요.
가장 혹독하게 반성을 촉구한 사람이, 결국 그 반성이 오지 않자 짐을 쌌어요.
그 이주 자체가 야스퍼스의 마지막 진술이었는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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