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148년, 열 살 소년은 코르도바를 떠났다.
그는 다시는 그 도시로 돌아오지 못했다.
코르도바는 당시 유럽에서 도서관이 70개가 넘던 도시였다.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인이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시장에서 책을 사던 곳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뉴욕과 옥스퍼드를 합쳐놓은 도시 정도다.
그런데 그해, 알모하드 왕조가 코르도바를 정복했다.
알모하드는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으로, 점령지 이교도에게 선택지를 딱 셋만 줬다.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죽거나, 떠나거나.
소년의 아버지는 짐을 쌌다.
마이모니데스 가족은 스페인 남부를 떠돌다 모로코 페즈로, 다시 십자군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을 거쳐, 약 12년 만에 이집트의 푸스타트에 닿았다.
지금의 카이로 구도심이다.
모순은 여기 있다.
이 12년의 방랑 중에, 소년은 자라서 유대 율법 최초의 체계적 주석서 집필을 시작했다.
짐 보따리 하나로 도시를 전전하면서.

그의 직장은 살라딘의 궁정이었다.
십자군 전쟁에서 예루살렘을 되찾아 유럽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그 살라딘이었다.
1185년경, 마이모니데스는 살라딘의 재상 알 파딜과 살라딘의 아들 알 아프달의 주치의로 임명되었다.
그의 하루는 이랬다. 새벽에 말을 타고 카이로 궁정으로 가서 왕족을 진료하고, 오후에 푸스타트 자택으로 돌아오면 또 일반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율법을 쓸 시간이 생겼다.
이 일과는 마이모니데스 본인이 1199년 제자 사무엘 이븐 티본에게 보낸 편지에 직접 적혀 있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 너무 지쳐서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러면서도 그는 10년에 걸쳐 『미슈네 토라』를 완성했다.
『미슈네 토라』는 유대 율법 전체를 14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수천 년간 뿔뿔이 흩어져 있던 율법 조문들을 처음으로 하나의 체계로 묶어낸 작업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수천 년치 대법원 판례 전체를 혼자 색인화해서 설명서를 새로 쓴 것에 가깝다.
그리고 이 책은, 십자군과 싸우던 무슬림 술탄의 궁정 안에서 탄생했다.

그가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를 쓴 이유는 단순했다.
그 자신이 평생 방황했기 때문이다.
1190년, 마이모니데스는 이 책을 히브리어가 아닌 아랍어로 썼다.
유대인의 성스러운 언어를 놔두고 아랍어를 선택한 것 자체가 이미 선언이었다.
"이 책은 특정 민족이 아니라, 이성으로 신을 이해하려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책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었다. 성경에는 신이 손을 뻗었다, 분노했다, 후회했다고 적혀 있는데, 신에게 정말 손이 있는가?
마이모니데스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를 빌려와 이 문장들을 전부 비유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로, "완전한 존재는 신체적 한계를 가질 수 없다"는 논리 체계를 남긴 사람이었다.
쉽게 말하면 이런 상황이다.
과학을 믿는 친구와 종교를 믿는 부모 사이에서, 둘 다 진리라고 말해야 할 때의 그 곤란함.
마이모니데스는 그 곤란함을 평생 안고 살았고, 결국 책 한 권으로 답하려 했다.
"신앙과 이성은 모순이 아니야. 네가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읽은 것뿐이야."
이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 주장이 폭발적인 반발을 불렀다.

1232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 광장에 마이모니데스의 책이 쌓였다.
불을 붙인 자는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이었지만, 그들을 부른 자는 유대 랍비들이었다.
마이모니데스가 죽은 지 28년이 지난 뒤였다.
몽펠리에는 당시 유럽 유대 학문의 중심지였다.
그 한복판에서 솔로몬 벤 아브라함이라는 랍비가 마이모니데스의 책을 기독교 종교재판소에 직접 고발했다.
"이 책이 우리 젊은이들을 철학으로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광장으로 나가 『안내서』와 『미슈네 토라』에 불을 붙였다.
동족의 손이 이교도를 불러다 동족의 책을 태운 것이었다.
결말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0년 뒤인 1242년, 같은 광장에서 이번엔 유대인의 탈무드 24수레가 불탔다.
같은 종교재판소가, 같은 방식으로, 이번엔 유대 공동체의 핵심 경전에 불을 놓았다.
유대 공동체는 이것을 신의 벌로 받아들였다.
동족의 책을 불태우라고 이교도에게 손을 내밀었던 그 고발의 대가를, 공동체 전체가 치른 것이라고.
마이모니데스는 지금도 유대 철학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불린다.
하지만 그의 책은 살아있는 동안 이단 의심을 받았고, 죽은 뒤엔 동족의 손으로 불탔다.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를 쓴 사람은, 결국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못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