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근대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 자기 자식 다섯을 단 한 명도 직접 키우지 않았어요.
1746년부터 1751년 사이, 장자크 루소는 동거녀 테레즈 르바쇠르와 다섯 아이를 낳았어요.
그리고 한 명씩, 차례로, 파리의 고아원 앙팡 트루베(Hôpital des Enfants-Trouvés)에 맡겼어요.
이름을 직역하면 '버려진 아이들의 병원'이에요.
18세기 그 고아원의 영아 사망률은 90%를 넘었어요.
다섯 명 중 네다섯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루소도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어요.
훗날 루소는 자서전 『고백록』에서 이 결정을 해명하려 했어요.
형편이 어려웠고, 아이를 제대로 키울 능력이 없었다고요.
하지만 그 '형편'과 90%의 사망률 사이엔, 어떤 말로도 채우기 어려운 간격이 있어요.
오늘날로 치면, 육아 유튜버가 정작 자기 아이는 한 번도 돌보지 않은 격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쓴 책이 전 세계 교육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에밀이라는 소년은 루소의 펜 위에서만 자랐고, 진짜 다섯 아이는 고아원 명부에만 남았어요.
1762년, 루소는 『에밀』(Émile, ou De l'éducation)을 펴냈어요.
가상의 소년 에밀을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키워낸다는 교육 철학 소설이에요.
아이의 타고난 본성을 믿고, 주입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배우게 하라는 주장이었어요.
그런데 이 책은 나오자마자 파리 고등법원에서 금서가 됐어요.
제네바 시의회는 공개 광장에서 불태웠고, 루소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됐어요.
자기 아이를 다섯 명 모두 고아원에 보낸 사람이,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설파한 책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 아이러니는 뒤집어봐도 똑같이 이상해요.
맞는 말을 썼기 때문에 도망자가 됐는데, 그 맞는 말을 정작 자기 삶에선 한 번도 실천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책은 오늘날에도 교육학 필독서 목록에 올라있어요.

1762년 한 해에 루소는 두 권의 금서를 펴냈고, 30년 뒤 그 책들이 왕의 목을 잘랐어요.
『에밀』과 같은 해에 『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도 나왔어요.
이 책의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
당시로선 왕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어요.
루소의 질문은 단순했어요. "왕이 백성에게 세금을 걷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뭔데요?"
그 답으로 그가 내놓은 게 일반의지(general will)예요.
일반의지란, 개인의 사욕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향한 공통된 의지예요.
쉽게 풀면, 권력의 정당성은 신이나 왕조의 혈통이 아니라 시민들의 합의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국민이 동의했으니까 정부가 세금을 걷는다"는 발상인데, 1762년엔 이게 혁명적이었어요.
그리고 30년 뒤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 혁명의 주역들은 루소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어요.
특히 로베스피에르 같은 자코뱅파 지도자들, 즉 혁명을 가장 과격하게 밀어붙인 세력이 루소를 사상적 교과서로 삼았어요.
루소는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책은 살아남아 역사를 바꿨어요.

사회계약을 설계한 그는 정작 어떤 사회에도 속하지 못한 채 숲을 산책하다 죽었어요.
체포영장을 피해 루소는 스위스 모티에로 달아났어요.
거기서도 쫓겨나, 결국 영국으로 건너갔어요.
영국에서 그를 받아준 건 데이비드 흄이었어요.
흄은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루소를 직접 초청해 안전하게 머물 자리를 마련해줬어요.
하지만 루소는 얼마 뒤 흄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의심에 사로잡혔고, 공개적으로 흄을 비난하며 결별했어요.
파리 지식인 사회의 수장 디드로, 즉 당시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집단 작업 『백과전서』를 이끈 인물과도 평생 등을 돌렸어요.
루소는 스스로를 온 세상이 적대하는 피해자로 느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는 점점 더 혼자가 됐어요.
말년에 파리 외곽으로 돌아온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Les Rêveries du promeneur solitaire)을 쓰기 시작했어요.
혼자 숲을 걸으며 식물을 채집하고, 그 산책 중 떠오른 상념들을 기록한 에세이예요.
루소는 이 책을 완성하지 못한 채 1778년 세상을 떴어요.
시민이 계약으로 권력을 만든다고 썼던 사람이, 정작 어떤 관계도 유지하지 못했어요.
근대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 자기 아이는 한 명도 키우지 않았어요.
루소는 위선자였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정직하게 써냈던 사람이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