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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27년, 시골 출신의 무명 강사가 쓴 한 권의 책이 20세기 철학을 통째로 다시 쓰게 만들었다.
책의 제목은 『존재와 시간』, 저자는 마르틴 하이데거, 나이는 38세였다.
이 책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게 들린다. "우리는 '있다'는 게 뭔지 알고 있나?"
'나는 있다', '신이 있다'처럼 매일 쓰는 말인데,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2500년간 아무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거다.
하이데거는 그 물음을 700페이지에 걸쳐 파고들었고, 독일 철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무명의 프라이부르크 강사는 마르부르크 대학 정교수가 됐고, 곧이어 스승 후설의 자리까지 물려받았다.
후설은 현상학이라는 철학 사조를 창시한 거장이다. 현상학이란 "선입견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철학으로, 20세기 초 유럽 지식인 사회를 흔들었다.
그 스승의 의자에 앉은 사람이 38세의 하이데거였다.
하지만 이 성공 뒤에 반전이 있다.
인생 최고작을 발표하고 학계 정상에 오른 이 사람은, 불과 6년 뒤 자신의 명성을 스스로 깎아먹을 결정을 내린다.

존재의 의미를 묻는 데 7년을 들인 철학자가, 나치당 입당 원서에 서명하는 데는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1933년 4월 21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에 취임하고, 열흘 뒤인 5월 1일 정식 입당했다.
총장 취임 연설의 제목은 '독일 대학의 자기주장'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즘을 철학적 언어로 정당화했다.
가장 정교한 사유를 가진 사람이 가장 위험한 이념에 철학의 외투를 입혀준 셈이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크다. 하이데거의 철학에는 '세인(das Man)'이라는 개념이 있다.
세인이란 생각 없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는 '다들 그렇게 하잖아'의 인간형이다.
그가 그토록 경고한 세인에, 1933년의 하이데거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편입됐다.
총장직은 1년 만에 사임했다. 그런데 당적은 달랐다.
하이데거는 1945년 독일이 패전할 때까지 나치당원 신분을 유지했다.

하이데거가 나치당원증을 받은 그해, 그가 사랑한 유대인 제자는 게슈타포 심문실을 지나 망명길에 올랐다.
게슈타포는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로, 유대인 색출과 정치범 탄압을 담당한 공포의 기구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 강의실이었다.
35세의 유부남 교수 하이데거와 18세 신입생 한나 아렌트였다.
아렌트는 훗날 『전체주의의 기원』을 써서 독재 권력의 본질을 해부한 정치철학자가 되는데, 당시에는 그저 강의를 들으러 온 유대인 여학생이었다.
두 사람의 비밀 연애는 4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게 끼어들었다.
1933년, 하이데거가 나치당에 입당하던 그해에 아렌트는 게슈타포에 체포됐다가 가까스로 풀려나 독일을 탈출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쫓아내는 걸 하이데거는 직접 목격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1950년, 17년의 침묵을 깨고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다시 찾아갔다.
이후 두 사람은 하이데거가 죽는 1976년까지 서신을 주고받았고, 아렌트는 전후에 그의 철학적 작업만큼은 옹호하는 데 나섰다.

그는 죽기 10년 전, 자신이 죽은 뒤에야 공개될 말을 남겼다.
사과는 그 안에도 없었다.
1966년 하이데거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인터뷰했다.
조건이 있었다. "내가 죽은 뒤에야 공개하라."
1976년 그가 사망하고 나서야 세상에 나온 이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만 말했다. "이제는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자신의 나치 협력에 대한 명시적 사과는 끝내 없었다.
전후 프랑스 점령군이 1949년까지 그의 교수 자격을 박탈했고, 수백만 명이 학살된 홀로코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연루됐는데도 그랬다.
더 충격적인 건 2014년에 나왔다.
『검은 노트(Schwarze Hefte)』라고, 하이데거가 생전에 남긴 사적 철학 일기가 사후에 출간됐는데, 그 안에 반유대주의적 표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기는 사적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도 그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하이데거는 철학에서 '진실(Wahrheit)'을 "은폐되지 않음"이라고 정의했다.
숨겨진 것을 끄집어내 드러내는 행위가 곧 진실이라는 뜻이다.
평생 은폐를 걷어내는 철학을 쓴 사람이, 자신의 가장 명백한 과오만큼은 끝까지 은폐한 채 죽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세대가 모두 떠난 뒤에도, 『검은 노트』는 여전히 서가에 꽂혀 있다.
하이데거가 끝내 하지 않은 말은, 그가 남긴 말들만큼이나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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