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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미국 독립을 가장 먼저 외친 사람은 미국인이 아니라, 영국에서 막 쫓겨오다시피 한 코르셋 장인이었어요.
1737년 영국 시골에서 태어난 토마스 페인은 코르셋 제조업에 실패하고, 세무 공무원으로도 잘렸고, 잡화점도 말아먹었어요.
그리고 37세에 빈털터리로 필라델피아 부두에 발을 디뎠죠.
그런데 도착하고 겨우 14개월 뒤, 이 무명의 이민자가 47쪽짜리 소책자를 들고 나타났어요.
제목은 '상식(Common Sense)' 왕이 없어도 나라가 돌아간다는, 당시로선 상당히 불온한 주장이었어요.
책은 익명으로 나왔고, 1년 만에 50만 부가 팔렸어요.
오늘날 기준으로 얼마나 대단한 숫자냐면, 당시 식민지 인구 250만 명 중 5명에 1명이 읽은 셈이에요.
지금 미국 인구 비율로 환산하면 약 6,500만 부에 해당해요.
그러니까 결국 독립선언서가 나오기 6개월 전, 아직 미국이라는 나라도 없던 그 시점에, 한 망명객의 글 한 편이 여론을 결정지은 거예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정치 팸플릿의 저자는, 그 책으로 단 1실링도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았어요.
페인은 '상식'의 인세 전액을 거절하고, 출판 수익을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대륙군의 군수품 구매에 기부했어요.
대륙군은 독립전쟁을 치르던 식민지 군대인데, 당시 군인들이 신발도 없이 눈밭을 걸어다닐 정도로 가난했어요.
그가 거절한 돈이 그 신발과 화약이 됐어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페인 본인은 여전히 셋방을 전전했고, 이후 발표한 '미국 위기(The American Crisis)' 시리즈도 똑같이 처리했어요.
미국 위기는 전쟁이 가장 힘들던 시기에 워싱턴이 군인들 앞에서 직접 읽어주라고 명령한 글이에요.
같은 책으로 큰돈을 번 출판업자들은 따로 있었어요.
하지만 페인의 원칙은 단호했어요: "정치적 진실에 가격표를 붙이면 진실이 아니다."
오늘날로 치면, 첫 책이 100만 부 팔린 작가가 인세 전액을 군대에 기부하고 본인은 월세를 못 내는 상황이에요.

두 개의 혁명에 불을 붙인 사람이, 그중 하나의 혁명에 의해 죽기 직전까지 갔어요.
미국 독립 이후 페인은 1791년 '인권론(Rights of Man)'을 발표했어요.
영국 왕정을 정면 공격한 이 책으로 그는 영국에서 반역죄로 기소됐고, 간신히 프랑스로 도망쳤어요.
프랑스는 그를 영웅으로 맞이했어요.
시민권과 국민공회 의원직까지 줬는데, 국민공회는 프랑스혁명 당시 나라를 통치하던 의회예요.
하지만 페인은 거기서 루이 16세의 처형에 반대했어요.
그 선택이 그를 적으로 만들었어요.
자코뱅파 혁명의 급진파이자 공포정치의 주체 가 1793년 페인을 뤽상부르 감옥에 가뒀어요.
매일 밤 간수들이 처형 대상 감방 문에 분필로 X 표시를 했는데, 페인의 감방 문은 열린 채로 있어서 표시가 '안쪽 면'에 그어졌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문이 닫히자 표시가 보이지 않았어요.
간수는 그냥 지나쳤고, 페인은 살았어요.
두 혁명 중 하나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다른 하나가 그를 죽이려 했는데, 우연히 열려 있던 문 하나가 그 사이에 있었던 거예요.
미국이라는 이름의 나라를 처음 외친 사람의 무덤은, 지금 어디에도 없어요.
감옥에서 풀려난 페인은 옥중에서 쓴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를 세상에 내놨어요.
교회와 성경을 정면으로 비판한 이 책 때문에, 그는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무신론자 페인"으로 추락했어요.
1802년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았어요.
독립을 촉구한 팸플릿을 쓴 것도, 인세를 군대에 기부한 것도 이미 잊혔어요.
그리고 1809년 뉴욕에서 숨을 거뒀을 때, 장례식에 모인 사람은 단 6명이었어요.
그중 2명은 흑인 자유민이었어요.
노예해방을 평생 주장했던 페인을, 그가 해방시키려 했던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기억했던 거예요.
하지만 그것도 끝이 아니었어요.
10년 뒤 영국 언론인 윌리엄 코빗이 페인의 유해를 영국으로 가져가 제대로 된 묘를 만들어주겠다며 무덤을 파헤쳤어요.
하지만 유골은 이후 행방불명됐고, 오늘날까지 발견되지 않았어요.
자기 인세로 사 신겼던 그 군인들의 후손들은 그를 잊었고, 그의 뼈는 지금도 어딘가를 떠돌고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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