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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266년, 파리에서 열린 프란치스코회 총회는 전례 없는 명령을 내린다.
성 프란치스코에 관한 모든 이전 기록을 수거해 폐기하라.
그 기록들은 프란치스코의 제자이자 동시대인이었던 토마스 첼라노가 쓴 전기들이다.
첼라노는 프란치스코를 직접 알았던 사람이다.
그가 쓴 두 권의 전기는 당시로서는 가장 생생한 1차 자료였다.
하지만 총회는 보나벤투라가 직접 집필한 「대전기」, 즉 성 프란치스코의 공식 생애 기록을 유일한 정본으로 확정하고, 나머지를 지웠다.
수도사들은 자기 수도원에 보관하던 사본까지 직접 제출해야 했다.
결국 13세기 후반, 라틴 세계에서 첼라노의 전기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학자들이 그 잃어버린 기록을 다시 찾아낸 건 무려 19세기다.
변방 도서관의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발견됐다.
한 사람이 역사를 다시 썼고, 600년 동안 아무도 원본을 볼 수 없었다.

1257년 10월 23일, 파리 대학교는 같은 자리에서 두 명의 신학 박사를 인준한다.
한 명은 도미니코회의 토마스 아퀴나스, 다른 한 명은 프란치스코회의 보나벤투라다.
후세에 중세 신학을 둘로 나눠 가질 두 거인이, 이날 사실상 한 줄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 인준이 그렇게 쉽게 이뤄진 게 아니다.
둘 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탁발수도회 출신이었다.
탁발수도회란 재산을 갖지 않고 걸식하며 떠도는 수도사들의 조직인데, 기존 대학 교수단 입장에서는 영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래서 기존 교수단은 수년간 이 둘의 학위 인준을 막아왔다.
결국 교황 알렉산데르 4세가 직접 개입해 명령을 내려야 했다.
같은 거부, 같은 개입, 같은 인준. 이 두 사람의 출발점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프란치스코회 총장이 된 직후인 1259년, 보나벤투라는 산을 올랐다.
목적지는 라 베르나 산이다.
성 프란치스코가 1224년 손발과 옆구리에 예수의 상처가 그대로 새겨지는 성흔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토스카나의 산이다.
거기서 그는 환상을 보고 단숨에 책 한 권을 써 내려간다.
제목은 「영혼이 신에게 가는 길」(Itinerarium Mentis in Deum).
영혼이 외부 세계에서 출발해 자기 내면을 거쳐 신의 본질에 다가가는 여정을 6단계로 서술하고, 마지막 7단계에서는 사유 자체를 멈추고 사랑 속으로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이걸 단순한 신학 교과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논리로 신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다가 논리가 끊어지는 지점에서 비로소 신을 만난다고 말한다.
그가 이 책에서 요구하는 건 "이해"가 아니라 "불꽃"이다.
수천 명의 수도사를 관할하는 행정가가, 산 위에서 보낸 일주일로 평생의 대표작을 완성했다.
그것도 총장 취임 직후에.
1273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가 보나벤투라를 알바노 추기경으로 임명한다.
당시 추기경은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급이다.
교황 바로 아래, 가톨릭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 중 하나였다.
사절단이 붉은 추기경 모자를 들고 무젤로 인근 수도원으로 찾아갔다.
그때 보나벤투라는 부엌에서 그릇을 닦고 있었다.
그는 일손을 놓지 않았다.
"모자를 저 나무에 걸어두시오."
설거지가 끝난 뒤에야 그는 모자를 받았다.
교황의 사절이 부엌 밖에서 기다린 것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미덕 일화가 아니다.
당시 프란치스코회는 청빈을 둘러싸고 심각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영성파는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재산을 일절 거부해야 한다고 했고, 관습파는 수도회 규모가 커진 만큼 현실적인 운영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보나벤투라는 이 분열을 봉합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초기 기록들을 없애고 자신이 쓴 단일 서사로 수도회를 하나로 묶으려 했다.
다툼의 빌미가 될 다양한 기록보다 일관된 하나의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듬해 리옹 공의회 한복판에서 갑작스럽게 죽는다.
리옹 공의회는 동서 교회의 재통합을 논하던 역사적인 종교회의였는데, 그 자리에서 삶이 끊겼다.
폐기된 기록들, 부엌에서 받은 모자, 완성하지 못한 회의.
그가 지운 것은 첼라노의 전기였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그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한 사람이 역사를 통일하기 위해 다른 역사를 지울 때, 우리는 무엇을 잃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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