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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약혼반지를 돌려보낸 1841년 10월, 그는 한 여자를 평생 잊지 않기 위해 결별을 택했어요.
1840년 9월, 쇠렌 키르케고르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레기네 올센에게 청혼했어요.
레기네는 그보다 아홉 살 어린, 열여덟 살의 여성이었어요.
둘은 약혼했고, 결혼식은 시간문제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정확히 1년 뒤인 1841년 10월, 레기네 손에 편지 한 통과 되돌아온 반지가 쥐어졌어요.
키르케고르가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한 거예요.
결혼식 날짜를 잡아두었던 상대에게서 "나를 잊어요"라는 편지 한 장만 받은 셈이에요.
반전은 여기서부터예요.
그는 죽을 때까지 일기와 저작 곳곳에 레기네 이야기를 써 넣었어요.
유언장에는 전 재산을 그녀에게 남기겠다고 적었어요.
훗날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어요.
"내게 믿음이 있었다면, 나는 레기네 곁에 남았을 거야."
그에게 결별은 도피가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마주한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이었어요.

그가 펴낸 책들에는 서로 다른 이름이 찍혀 있었어요. 그 이름들은 전부 그가 만든 것이었어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저자 이름은 빅토르 에레미타예요.
『불안의 개념』은 비길리우스 하우프니엔시스, 『철학적 단편』은 요하네스 클리마쿠스가 썼어요.
이름이 달라도 저자는 한 명이었어요. 쇠렌 키르케고르요.
그뿐만 아니라 그는 신문 지면에서 자기가 만든 가명들과 직접 논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SNS에 여러 개의 부계정을 만들어 본계정과 서로 싸우는 작가를 상상하면 딱 맞아요.
그는 이걸 '간접 전달'이라고 불렀어요.
독자에게 진실을 직접 설교하면, 독자는 그 진실을 귀로 듣고 끝내요.
하지만 독자가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게 만들면, 그 진실은 독자의 것이 돼요.
그에게 글쓰기는 답을 주는 일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질문을 찾게 만드는 일이었어요.
자기 이름을 지운 건, 저자가 아닌 독자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어요.

1855년 봄, 그는 코펜하겐의 모든 교회를 향해 선언했어요. "이 나라에는 기독교가 없다"고.
키르케고르는 평생 신앙 속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죽기 직전 1년간, 그는 『순간』이라는 소책자를 자비 출판해 거리에 뿌렸어요.
9호까지 발간된 이 팸플릿에서 그는 덴마크 국교회 목사들을 정면으로 공격했어요.
그가 그들을 가리킨 말은 "기독교의 사기꾼들"이었어요.
하지만 무신론자가 한 말이 아니에요.
가장 독실한 신앙인이 한 말이에요.
그의 논리는 이랬어요.
제도화된 교회는 신자들을 안락하게 만들고, 그 안락함 속에서 진짜 신앙은 죽어버린다는 거예요.
평생 한 회사에 충성했던 사람이 은퇴 직전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장면과 비슷해요.
결국 그는 교회를 증오해서 공격한 게 아니었어요.
신앙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신앙을 망가뜨리는 것들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가 1855년 10월 거리에서 쓰러졌을 때, 통장에는 자기 장례비만 남아 있었어요.
1855년 10월 2일, 키르케고르는 코펜하겐 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졌어요.
그대로 병원에 입원했고, 그해 11월 11일 4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어요.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이었어요.
키르케고르는 꽤 큰 유산을 물려받았어요.
그런데 그 돈이 다 어디 갔냐면, 자기 책을 자비 출판하는 데 썼어요.
당시 출판사들은 팔리지 않을 철학책을 맡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자기 돈으로 책을 찍고 직접 배포했어요.
전 재산으로 자기 글을 세상에 내보내고, 빈 지갑으로 쓰러진 거예요.
그가 묘비에 새기길 원했던 말은 딱 한 단어였어요.
덴마크어로 'hin Enkelte', 우리말로는 '그 개인'이에요.
왕도, 철학자도, 신앙인도 아닌, 그냥 '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실존주의는 바로 여기서 시작됐어요.
실존주의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역할이나 본질을 가진 게 아니라, 살면서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에요.
키르케고르가 평생 몸으로 실천한 것이기도 해요.
레기네도, 가명도, 팸플릿도, 빈 통장도 모두 같은 질문을 향해 있었어요.
"당신은 지금 진짜로 살고 있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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