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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단테가 천국 묘사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옆자리에 앉힌 사람은, 그 아퀴나스에게 평생 학설을 반박당한 이단자였어요.
「신곡」 천국편 제10곡에서 단테는 시제 드 브라방을 아퀴나스 바로 곁에서 빛나게 해요.
아퀴나스는 13세기 가톨릭 신학의 완성자로, 시제를 반박하기 위해 『지성단일성에 관하여』라는 책을 직접 써낸 인물이에요.
그런데 단테는 그 아퀴나스의 입으로 시제를 소개하게 해요.
"이쪽은 시제, 영원한 진리를 끊임없이 탐구한 사람이오"라고요.
영화로 치면 이런 캐스팅이에요.
감독이 주인공의 평생 라이벌을 마지막 장면에서 영웅 옆자리에 앉히는 것.
그것도 주인공 자신의 입으로 소개하게 만드는 것.
문제는 시제가 1277년 파리 주교에게 이단으로 단죄된 인물이었다는 거예요.
독실한 가톨릭 시인이었던 단테가 왜 그를 천국에 넣었을까요.
그 답을 이해하려면 시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알아야 해요.

시제는 신학자가 아니었어요.
철학 교수가 가르쳐서는 안 될 결론을 너무 정연하게 가르치는 것, 그게 문제였어요.
1260년대 파리 대학교 예술학부는 오늘날로 치면 교양학부에 해당해요.
신학이 아니라 철학 강의를 담당하는 곳이었죠.
시제는 거기서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을 강의했어요.
아베로에스는 12세기 안달루시아의 이슬람 철학자로, 고대 그리스 철학을 중세 유럽에 체계적으로 소개한 인물이에요.
그런데 그 해석이 기독교 교리와 곳곳에서 충돌했어요.
시제의 강의실에는 학생이 몰렸어요.
수식처럼 정연한 논증으로, 영혼불멸이나 세계의 영원성 같은 신학적 핵심 주제를 철학적으로 분해해 보였거든요.
수학 교수가 강의실에서 신을 부정하는 결론을 방정식으로 증명해 보이는 광경과 비슷한 거예요.
그가 신학 영역을 침범한 게 아니었어요.
철학이라는 자기 영역에서 걸어가다 보니 신학이 독점하던 결론에 다른 길로 도착한 거예요.
그게 오히려 더 위험했어요.
철학으로 증명되는 진리와 신앙이 주는 진리가 충돌할 때, 시제는 둘 다 옳다고 답했어요.
후대가 '이중 진리설'이라 부른 이 입장은, 오늘날 우리가 매주 경험하는 어떤 분열과 닮아 있어요.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면서 평일에는 빅뱅 우주론을 가르치는 과학자처럼요.
이성의 논리와 신앙의 확신이 각자의 영역에서 모두 진리일 수 있다는 거예요.
시제는 신을 부정한 적이 없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에요.
"철학이 이 결론에 닿는다. 하지만 나는 신앙인으로서 다른 결론을 믿는다.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진리야."
하지만 교회는 이 말을 신학에 대한 가장 정교한 위협으로 읽었어요.
신앙의 결론이 '진리들 중 하나'가 된다면, 교회의 권위는 설 자리를 잃으니까요.
단순히 신을 부정한 불신자보다 훨씬 위험한 적이었어요.
아퀴나스는 시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을 썼어요.
"지성은 하나가 아니다. 영혼은 각자의 것이다. 이성과 신앙은 결국 같은 결론에 닿는다."
두 사람은 살아생전 한 번도 같은 답에 도달한 적이 없었어요.
시제는 한 자루 칼로 죽었지만, 단테의 펜이 그를 천국으로 돌려보냈어요.
1277년, 파리 주교 에티엔 탕피에가 219개 명제를 이단으로 단죄했어요.
시제의 학설이 그 목록 안에 들어있었어요.
결국 시제는 교황청에 직접 호소하러 이탈리아로 향했어요.
그리고 1284년 무렵, 오르비에토에서 생을 마쳤어요.
오르비에토는 이탈리아 중부, 당시 교황청이 임시로 머물던 도시예요.
그를 죽인 건 종교재판도 처형도 아니었어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자기 비서가 칼로 찌른 거예요.
두 개의 진리를 붙들고 살았던 사람이, 한 자루 칼에 끝났어요.
그로부터 약 30년 뒤, 단테가 「신곡」을 썼어요.
단테는 시제가 옳았다고 선언하지 않았어요.
그를 변호하는 각주도, 사면을 주장하는 문장도 없어요.
다만 그를 천국에 두었어요.
그것도 가장 위대한 신학자의 옆자리에.
그 캐스팅 자체가 단테의 답이에요.
이단으로 단죄된 자를 천국에 앉히는 것, 말 없이 하는 가장 강력한 말이었어요.
이성과 신앙 사이에서 끝내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사람이, 결국 어느 쪽 세계에 속했는지를.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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