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의 본명은 보나벤투라가 아니었어요.
어른이 되어 스스로 고른 이름도 아니었고요.
그 이름은 죽음의 문턱에서 한 수도사가 즉흥적으로 던진 한마디였습니다.
1217년경, 이탈리아 중부 바뇨레지오의 한 아이가 중병에 걸렸어요.
어머니는 그 시대에 기적을 일으킨다고 소문난 프란치스코에게 아이를 데려갔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지금의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세운 이탈리아 수도사로, 당시 민중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성인으로 불리던 인물이에요.
아이가 회복했을 때, 프란치스코가 이탈리아어로 외쳤어요.
"O buona ventura! 좋은 운명이여!"
그 외침이 아이의 이름이 됐습니다.
아이의 본명은 조반니 디 피단차였어요.
하지만 그날 이후 세상은 그를 보나벤투라라 불렀고, 그는 그 이름대로 살아갔습니다.
이름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과, 이름에 선택된 사람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기 삶을 바라보게 되죠.

프란치스코가 손과 발에 성흔을 받은 그 산에, 35년 뒤 보나벤투라가 올랐어요.
성흔이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생긴 상처와 똑같은 자국이 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중세 사람들은 이것을 신의 선택의 증표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내려온 것은 환영이 아니라 한 장의 지도였어요.
1259년의 보나벤투라는 이미 프란치스코 수도회 총장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수만 명이 소속된 국제기구의 수장이에요.
그런데 수도회는 둘로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프란치스코의 극단적 청빈을 그대로 따르자는 '영성파'였고, 다른 쪽은 대학에서 가르치고 도시에서 활동하는 것도 괜찮다는 '공회파'였어요.
보나벤투라는 스승이 신을 만났다는 바로 그 산, 알베르나산에 올랐습니다.
알베르나산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1224년 프란치스코가 그 정상에서 성흔을 받은 곳이에요.
그는 환영을 받지 못했어요.
상흔도 나타나지 않았고요.
그 대신 그는 신비에 이르는 '구조'를 떠올렸습니다.

그가 산에서 가져온 것은 환영도 기적도 아니었어요.
책 한 권이었습니다.
제목은 「신을 향한 영혼의 여정」, 라틴어로 Itinerarium Mentis in Deum, 그리고 차례는 더 놀라웠어요.
트레킹 코스를 생각해보세요.
1번 깃발에서 출발해 6번 깃발 정상까지 오르는 안내서.
그게 바로 이 책의 구조예요.
1단계는 자연에서 신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에요.
발밑의 풀, 하늘의 별, 흐르는 물 속에 이미 신의 손길이 있다는 거죠.
2단계는 그 자연 안에서 신의 모습을 직접 읽어내는 단계입니다.
3단계부터는 방향이 바뀌어요.
바깥 세계에서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영혼 안에 새겨진 신의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4단계는 그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마주하는 것이에요.
5단계는 이성의 바깥, 생각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의식을 끌어올리는 단계예요.
그리고 마지막 6단계는 황홀경(ecstasy), 자아가 완전히 신 안으로 녹아드는 순간입니다.
황홀경이란 내가 나인 것을 잊고 신 안에 완전히 잠기는 상태로, 말로 설명하려는 순간 이미 틀린 설명이 되어버리는 경험이에요.
아이러니는 여기서 나와요.
말로 옮길 수 없다는 그 체험을, 그는 6단계 매뉴얼로 옮겼거든요.
사랑에 빠지는 법을 레시피로 적은 것처럼, 그는 신비를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300년이 지나 교회는 그에게 단 하나의 칭호를 붙였어요.
세라핌 박사(Doctor Seraphicus).
가장 높은 천사의 이름이었습니다.
1274년 보나벤투라는 리옹 공의회 도중 세상을 떠났어요.
리옹 공의회는 당시 유럽 전체 교회의 방향을 결정짓는 대규모 회의로, 오늘날로 치면 수십 개국이 모이는 국제 정상회담 같은 자리였습니다.
회의 중간에 죽었다는 것은 그가 마지막까지 현장에 있었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리고 1482년 시성됐고, 1588년 교황 식스토 5세가 그에게 '교회 박사' 칭호를 주면서 한 단어를 더했습니다.
'세라피쿠스(Seraphicus)', 즉 세라핌의.
세라핌은 기독교 천사 계급 중 가장 높은 존재로, 신을 직접 바라보며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천사예요.
신비 체험을 단계별 매뉴얼로 정리한 사람이, 결국 '가장 신비롭게 사랑하는 천사'의 이름을 받은 거예요.
사랑을 데이터로 측정한 과학자가 '가장 낭만적인 사람'으로 추대된 것처럼요.
구조를 만든 자와 불꽃이 된 자 중, 어느 쪽이 진짜 보나벤투라였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