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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가난의 철학자로 역사에 남은 그의 첫 직업은, 사실 '연설 가르치는 선생'이었어요.
안티스테네스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고르기아스의 제자로 출발해요.
고르기아스는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예요.
소피스트란 연설 기술을 팔아 돈을 버는 선생들로, 오늘날로 치면 수능 스타 강사처럼 수강료가 어마어마했어요.
그 문하에서 기술을 익힌 안티스테네스는 자기 학교를 차리고 부유한 집 자제들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아이러니가 여기서 시작돼요.
"욕심을 버려라"를 평생 설교하게 될 사내의 출발점이, 정작 말솜씨로 돈을 버는 학원이었으니까요.
마치 훗날 "몸은 짐이다"라고 외치는 철학자가 사실 가장 비싼 퍼스널 트레이닝 센터를 운영하던 트레이너였던 셈이에요.
그런데 그 시절 아테네 광장에는 이상한 노인이 하나 있었어요.
신발도 안 신고, 돈도 안 받고, 그냥 사람들과 토론만 하는 사람. 소크라테스였어요.

명성과 학생을 다 가진 사내가 매일 새벽 7킬로미터를 걸어간 곳에는, 신발도 안 신은 노인이 앉아 있었어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일생을 기록으로 남긴 전기 작가예요.
그의 기록에 따르면, 안티스테네스는 아테네 외항 도시 페이라이오스에 살면서 매일 소크라테스를 만나러 도심까지 걸어다녔어요.
7킬로미터. 지금으로 치면 강남에 학원을 둔 강사가 매일 새벽 광화문 벤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한테 걸어가서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소크라테스는 강의료를 받지 않았어요.
체계적인 커리큘럼도 없었어요.
그냥 사람 옆에 앉아서 "그게 진짜 맞아? 다시 생각해봐"를 반복할 뿐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안티스테네스는 자기가 가르쳐온 연설 기술, 그 대가로 받아온 돈, 그 돈으로 쌓은 명성이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기 시작해요.
이미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가 아무도 모르는 노작가한테 매주 새벽 기차를 타고 글쓰기를 다시 배우러 가는 장면과 같아요.
안티스테네스에게 소크라테스는 더 잘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었어요.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어요.
스승의 죽음에 대한 그의 응답은 슬픔이 아니라 소유의 청산이었어요.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독배를 마셔요.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는 죄목이었어요.
그 직후, 안티스테네스는 자신의 학생들을 다른 소크라테스 제자들에게 넘기고 살림을 정리했어요.
남긴 건 망토 한 벌, 지팡이 하나, 자루 하나.
그가 가르쳐온 수사학, 그 대가로 받아온 돈, 그 돈으로 키운 학교.
바로 소크라테스가 평생 비판해온 것들이었는데, 결국 그걸 자기 손으로 인정한 셈이에요.
멘토를 잃은 사람이 장례식 다음 날 사무실을 정리하고 명함을 다 찢어버리는 장면 같죠.
하지만 그는 슬픔 때문이 아니라 확신 때문에 그랬어요.
"이제는 그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사람처럼요.
견유학파의 첫 수업은 강의가 아니라 막대기였어요.
안티스테네스는 살림을 정리한 뒤 키노사르게스라는 아테네 외곽 체육관으로 거처를 옮겨요.
키노사르게스는 아테네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사회 가장자리에 있던 이들이 드나들던 공간이었어요.
견유학파를 뜻하는 그리스어 '키니코스'의 어원이 이 키노사르게스에서 왔다는 설이 있어요.
그곳에서 가르치기 시작할 무렵, 한 청년이 찾아왔어요.
훗날 통 속에서 살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햇빛이나 가리지 마라"고 말하는 디오게네스예요.
제자로 받아달라는 청년에게 안티스테네스의 반응은 단호했어요. 막대기로 쫓아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디오게네스는 피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네 막대기로는 나를 떼어낼 수 없다"고 버텼어요.
안티스테네스는 결국 그를 받아들였고, 디오게네스는 이후 견유학파를 세상에 가장 극적으로 알린 인물이 됐어요.
명성과 학교를 자발적으로 버린 사내가 세운 학파는, 정작 자기 제자조차 거부하는 방식으로 시작됐어요.
견유학파는 사회의 관습, 체면, 소유에 구애받지 않고 솔직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사상이에요.
그 학파의 첫 입학 시험은 막대기를 버티는 것이었어요.
안티스테네스는 매일 7킬로미터를 걸었고, 스승이 죽자 전부를 버렸어요.
그 선택이 결국 어떤 제자를 불러들였는지 생각해보면, 어쩌면 막대기도 가르침의 일부였을지 모를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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