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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말브랑슈에 따르면 당신이 컵을 든 순간 컵을 움직인 건 당신이 아니다.
1674년, 파리 오라토리오회의 수도사 니콜라 말브랑슈는 『진리 탐구』에서 이 황당해 보이는 주장을 수백 페이지에 걸쳐 논증한다. 당구공 A가 B와 부딪힌다. B가 굴러간다.
우리는 A가 B를 움직였다고 말하지만, 말브랑슈는 그 연결 자체를 부정한다. A의 충돌은 신이 B를 움직이기 위한 '기회(occasion)' 에 불과하다. 진짜 원인은 항상 신 하나뿐이다.
이것이 우인론(偶因論, occasionalism)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2천 년 가까이 형상인·질료인·작용인·목적인으로 세계의 인과를 설명해왔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 체계 위에 가톨릭 신학 전체를 쌓았다.
말브랑슈는 한 줄로 그것을 무너뜨린다. 피조물에게는 진정한 인과력이 없다.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지는 것은 손가락이 전류를 흐르게 해서가 아니라, 신이 그 순간을 계기로 삼아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다.

말브랑슈는 인간의 눈이 본래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했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는 사물을 직접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신의 정신 안에 있는 사물의 '관념(idée)' 이며, 그것을 통해 세계를 간접적으로 볼 뿐이다. 이것이 '신 안의 시각(vision en Dieu)'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 우리는 픽셀을 보는가, 그 너머의 데이터를 보는가. 말브랑슈는 픽셀조차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접하는 것은 신이 우리 앞에 펼쳐놓은 원형(archetype), 즉 관념뿐이다.
데카르트는 코기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자아를 인식의 기반에 놓았다. 말브랑슈는 그 기반을 빼앗아 신에게 돌려준다. "오직 신만이 빛이며, 오직 신만이 우리 영혼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충실한 제자임을 자처하면서, 스승의 핵심을 정반대로 뒤집은 셈이다. 그 결과는 직접실재론의 붕괴다. 인식의 보증인은 이제 자아가 아니라 신이다.

아르노는 말브랑슈가 신을 모독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안토니 아르노는 『포르 루아얄 논리학』의 공저자이자 얀센주의 신학의 핵심 논객이다. 얀센주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17세기 가톨릭 개혁 계파다. 그 아르노가 1683년, 『참된 관념과 거짓 관념에 대하여』로 말브랑슈를 직접 겨냥한다.
아르노의 논점은 날카롭다. 관념은 신의 정신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있다. 신을 인식의 모든 매개체로 만드는 것은 피조물의 자율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월권이다.
"당신의 체계에서 신이 우리 안에서 직접 인식한다면, 우리의 지성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말브랑슈는 물러서지 않았다. "관념이 마음 안에 있다면, 우리는 신 없이도 인식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진짜 불경이다."
두 사람은 아르노가 죽는 1694년까지 11년간, 100편이 넘는 논박문을 주고받는다. 같은 신을 섬기는 두 성직자가, 신에 대한 경건함을 각자의 무기로 삼아, 평생 서로를 불경죄로 고발했다. 논쟁은 무승부로 끝났다.
그러나 그 잔해 위에서 근대 인식론이 자라난다.

말브랑슈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곳은 그가 가장 싫어했을 무신론자들의 책이었다.
한 세기 뒤,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흄은 인과를 완전히 해체한다. 불이 열을 만드는 것을 아무리 관찰해도, 그 둘 사이의 필연적 연결을 우리는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단지 '항상적 연접(constant conjunction)', 자주 붙어 다니는 현상들뿐이다.
이 논증의 뿌리는 말브랑슈가 깔아놓은 길 위에 있다. 우인론의 핵심은 이것이다. 피조물에게는 진정한 인과력이 없으며, 우리는 원인을 직접 보지 못한다.
거기서 신을 제거하면, 남는 것은 흄의 회의주의다. 말브랑슈는 그 공백을 신으로 채웠다. 흄은 공백 그 자체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는 우인론에 답하며 나왔고, 버클리의 관념론도 그 자장 안에서 자란다. "상관관계는 인과가 아니다." 이것은 현대 통계학과 과학철학의 상식이다.
1674년에 수도사 한 명이 던진 질문의 메아리가 여기까지 울린다. 패배한 듯 보인 신학자가 다음 한 세기의 인식론 의제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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