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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772년, 베를린 아카데미는 "신은 인간에게 언어를 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논문에 1등 상을 줬어요.
그 논문을 쓴 사람은 현직 루터교 목사,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였습니다.
베를린 아카데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 기관 중 하나예요.
그해 공모 주제는 단순했어요. "언어는 어디서 왔나?"
당시 교회의 공식 답변은 창세기에 있었어요.
신이 아담에게 사물의 이름을 짓게 했고, 그렇게 언어가 시작됐다는 거예요.
그런데 헤르더는 정반대로 썼어요. "인간이 스스로 발명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신학대 교수가 "신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책으로 종교 단체에서 대상을 받은 격이에요.
더 놀라운 건, 헤르더가 그 논문을 쓰면서도 목사직을 계속 유지했다는 거예요.
그가 살던 시대는 그런 긴장을 품고 있어도 될 만큼 복잡했습니다.

헤르더는 "독일"이라는 단일한 나라가 존재하지 않던 18세기에 "독일 민족의 정신"을 먼저 정의해 버렸어요.
당시 독일은 지도 위에서 300여 개의 작은 영방으로 쪼개져 있었어요.
영방이란 각자의 영주가 다스리는 미니 왕국 같은 거예요.
"독일 민족"이라는 말은 오늘날로 치면 유럽연합 27개국을 묶어 "유럽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헤르더는 1770년대부터 Volksgeist(민족정신)라는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기 시작했어요.
민족정신이란 한 집단이 공유하는 언어, 노래, 이야기 속에 새겨진 고유한 사고방식을 뜻해요.
오늘날로 치면, 사투리 한 마디에 그 지역 사람의 세계관이 통째로 들어있다는 주장이에요.
하지만 그가 말하려던 건 "독일이 최고"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슬라브족도, 라트비아인도, 모든 민족이 각자의 고유 가치를 갖는다"는 게 그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단위의 정신을 먼저 정의했지만, 그 정신을 위계에 세우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헤르더는 프랑스어로 시를 쓰는 것이 교양이던 시대에, 농민 할머니의 노래를 한 줄씩 받아 적었어요.
18세기 유럽 지식인 사회는 프랑스 궁정 문화를 모범으로 삼았어요.
라틴어 고전이나 프랑스 시가 "진짜 문학"이었고, 시골 농민의 구전 노래는 교양 없는 야만으로 취급됐습니다.
그런데 헤르더는 선언했어요. "진짜 인간의 정신이 거기 있어."
1778년부터 1779년 사이, 그는 Volkslieder(민중가요집)를 펴냈어요.
독일, 스코틀랜드, 세르비아, 라트비아 농민에게서 직접 구전 노래를 수집하고 번역한 책이에요.
그가 시골 노파에게 직접 앉아 노래를 받아 적은 일도 있었어요.
당시로선 SNS 게시물이 셰익스피어 전집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도발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지식인들은 그를 의아하게 봤어요.
하지만 결국 그의 민중가요집은 전 유럽의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어요.
이후 그림 형제가 독일 민화를 수집한 것도, 핀란드가 자국의 구전 서사시 칼레발라를 민족의 정전으로 세운 것도 헤르더가 먼저 열어놓은 길이었습니다.
처음엔 비웃음을 받은 그 작업이, 결국 근대 유럽 각국이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어요.

헤르더가 죽고 130년 뒤, 그의 "민족정신"은 그가 가장 끔찍하게 여겼을 방식으로 쓰였어요.
헤르더는 1803년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자신이 만든 개념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독일 통일 운동이 달아오르면서 Volksgeist는 점점 다른 얼굴을 드러냈어요.
"우리 민족에게 고유한 정신이 있다"는 주장이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우월하다"로 조금씩 미끄러진 거예요.
그리고 20세기 나치 이데올로기는 "민족 고유의 정신"을 인종 우열의 근거로 공식 무기화했습니다.
헤르더 본인은 평화주의자였고 문화 다원주의자였어요.
그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는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했고, "어떤 민족도 다른 민족의 기준으로 판단받아서는 안 된다"고 썼습니다.
다양성을 보호하려고 만든 개념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장으로 쓰이게 된 거예요.
아이디어는 발명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발명자의 의도와 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헤르더는 그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에요.
당신이 오늘 어떤 개념을 내놓는다면, 100년 뒤 그 개념은 어디에 서 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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