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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부르고뉴의 폰테네 가문은 한 청년의 결심 한 번에 통째로 사라졌다.
1112년, 스물둘의 베르나르 드 폰테네는 형제 네 명과 삼촌, 친구들까지 총 30여 명을 데리고 시토 수도원에 단체 입회했어요.
시토는 당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 막 세워진, 문 닫기 직전의 작은 신생 공동체였어요.
명절에 모인 친척들에게 "내일부터 다 같이 땅 파고 빵 먹는 가난한 수도사로 살자"고 설득해서 정말로 다 따라간 격이에요.
그것도 부르고뉴 귀족 가문의 남자들이요.
부르고뉴는 지금의 프랑스 동부, 중세 유럽 최고 귀족 문화의 본고장인데, 그 집안이 검과 영지를 버린다는 건 오늘날로 치면 재벌가 아들들이 전부 스마트폰을 끄고 산속 절에 들어간 거나 다름없었어요.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막내 동생이 합류했고, 그다음엔 아버지도 들어왔어요.
하나 남은 누이마저 결국 수녀가 됐어요.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폰테네 가문의 남자들은 한 명씩 세속에서 지워졌어요.
단 한 사람의 설득 때문에요.

베르나르가 부임한 곳은 이름부터 '쓴 골짜기(Vallée d'Absinthe)'라는 황무지였어요.
1115년, 스물다섯 살의 베르나르는 열두 명을 데리고 그 황무지로 보내졌어요.
그는 그곳에 수도원을 짓고 이름을 클레르보(Clairvaux), 뜻으로는 '맑은 골짜기'라 고쳐 불렀어요.
당시 베르나르의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어요.
입회 직후부터 극단적인 금식과 노동을 고집한 탓에 영양실조로 거의 죽기 직전이었고, 소화기관이 망가져 평생 고통을 달고 살아야 했어요.
그런데 그 몸으로 38년 동안 시토회 수도원을 유럽 전역에 68개 이상 새로 세웠어요.
25살 신입이 망해가던 스타트업에 자원 입사해서 유럽 1위 프랜차이즈를 일군 거예요.
베르나르가 클레르보에 부임했을 때 시토회 수도원은 유럽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그가 죽을 무렵엔 유럽 구석구석에 흰 수도복의 시토회 수사들이 없는 곳이 없었어요.
베르나르가 죽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못한 책은 성경에서 가장 관능적인 본문이었어요.
구약성경의 아가서(Song of Songs)는 신랑과 신부 사이의 사랑과 욕망을 노래하는 시집이에요.
"당신의 입술로 내게 입 맞추어요"로 시작하는, 성경 안에서 가장 낯 뜨거운 책이에요.
베르나르는 인생 마지막 18년 동안 아가서 단 두 장(章)을 붙잡고 설교를 86편 남겼어요.
평생 빵과 물로 버티며 금욕을 실천한 가장 엄격한 수도사가 하필 연애시를 죽을 때까지 강독한 거예요.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는 수도사가 사랑 시집 한 권을 평생의 주제로 삼은 격이에요.
그에겐 이유가 있었어요.
베르나르에게 아가서의 신랑과 신부는 신과 인간 영혼 사이의 관계였어요.
그는 신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신랑이 신부에게 입 맞추는 것"이라고 썼고, 그것이야말로 수도 생활 전체의 목적이라고 믿었어요.
결국 수도 생활이란 욕망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욕망의 방향을 신에게 향하게 하는 것이라는 얘기예요.
금욕주의자가 관능적인 시를 택한 게 아니라, 그 비유만이 그가 전달하려는 것을 담을 수 있었던 거예요.

수도원 골방의 한 수도사가 입을 열자 유럽의 왕들이 칼을 들었어요.
1146년, 베르나르는 프랑스 베즐레(Vézelay) 언덕에서 설교 한 번을 했어요.
베즐레는 지금도 순례지로 남아 있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언덕 위 마을이에요.
그날 설교 한 번에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독일 황제 콘라트 3세가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받았어요.
군중이 얼마나 몰렸냐 하면, 베르나르가 준비한 십자가 표식이 모자라서 자신이 입던 수도복을 찢어 나눠줬다고 전해져요.
산속에서 명상하던 수도사가 연설 한 번으로 유럽 전체를 전쟁터로 끌어낸 거예요.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어요.
2차 십자군은 1148년 다마스쿠스 공방전에서 단 4일 만에 무너졌어요.
다마스쿠스는 지금의 시리아 수도인데, 그곳 공략이 실패하면서 이미 이슬람 세력과 협상 중이던 유일한 동맹 세력까지 적으로 돌려버렸어요.
베르나르는 남은 생애 동안 이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자신이 일으킨 원정이 이렇게 끝났을 때, 그는 교황에게 편지를 썼어요.
"이 모든 것이 우리 죄 때문입니다"라고요.
아가서를 86번 강독하고 가문 전체를 수도원으로 이끈 사람의 마지막 말치고는, 너무 단출했어요.
하지만 어쩌면 그게 이 사람의 진짜 모습이었을 거예요.
자신이 켠 불 앞에서, 신학 대신 자백을 선택한 사람.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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