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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2세기 최고의 유대 철학자는 자기 도시에서 책 한 권을 끝까지 쓴 적이 없다.
모셰 벤 마이몬, 우리가 마이모니데스라고 부르는 사람의 본명이다.
1148년, 그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그해 북아프리카에서 올라온 알모하드 왕조가 코르도바를 점령했다.
알모하드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운 왕조로,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는 개종 아니면 추방을 강요했다.
어린 모셰의 가족은 집을 버리고 도망쳤다.
모로코 페즈로, 그곳이 위험해지자 팔레스타인으로, 또 이집트로.
20년 가까이 짐을 꾸리고 다시 푸는 삶을 반복했다.
중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가족 전체가 매년 다른 나라로 쫓겨나야 했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여기다.
훗날 유대 철학 전체를 가장 견고하게 체계화한 사람이, 정작 한 도시에서 책상 하나를 3년 이상 붙잡은 적이 없었다.
도착하는 도시마다 낯선 언어와 낯선 위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코르도바에서 쫓아낸 무슬림 왕조의 후계자가, 30년 뒤 그의 손에 자기 맥을 맡겼다.
1170년대, 마이모니데스는 이집트 카이로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의술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결국 살라딘의 재상 알-파딜의 주치의 자리에 올랐다.
살라딘은 십자군 기독교 세력으로부터 예루살렘을 되찾은 이슬람의 술탄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 최고 지도자 비서실장의 주치의가 된 셈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기록이 남아 있다.
십자군 영국 왕 사자심왕 리처드가 마이모니데스에게 주치의로 와달라는 초청장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거절했다.
생각해보면 이 상황이 얼마나 기이한가.
십자군 기독교 왕이 유대인 의사를 스카우트하고, 그 유대인은 이슬람 술탄의 재상 곁에 남기로 선택했다.
그것도 어릴 적 가족을 난민으로 만든 이슬람 왕조의 후계 국가에서.
결국 마이모니데스는 유대 공동체의 수석 지도자이자 이슬람 궁정 의사였다.
두 세계의 경계에 동시에 발을 디딘 사람이었다.

그가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를 쓴 시간은, 마지막 환자가 돌아간 자정 이후뿐이었다.
이 책은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려 쓴 책이다.
오늘날로 치면, "과학을 공부할수록 종교가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체계와 유대 신앙이 사실은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낮에 그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소화했다.
궁정에서는 의사로서 줄 선 환자들을 진찰했다.
유대 공동체에서는 수석 랍비로서 율법 질문들에 답했다.
1199년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 그가 직접 썼다.
"환자가 너무 많아, 저녁이 되어야 겨우 책상 앞에 앉을 수 있다오."
그는 이 안내서와 함께 「미슈네 토라」도 썼다.
미슈네 토라는 수천 년에 걸친 유대 율법 전체를 14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한 사람이 혼자 수천 년치 판례를 체계화한 법전을 만들어낸 것과 같다.
하지만 가장 아이러니한 지점은 이것이다.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을 붙인 저자 본인이, 그 책을 쓰던 시간 내내 가장 방황하는 처지였다.
20년을 도망쳐 다녔다.
하루에 두 개의 정체성을 살았다.
잠을 줄여가며 책을 썼다.

1232년 몽펠리에 광장에서 마이모니데스의 책이 불에 던져졌다.
던진 손은 같은 유대인의 것이었다.
마이모니데스는 120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고 30여 년이 지났을 때, 프랑스 몽펠리에의 보수파 랍비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들의 주장은 이랬다.
마이모니데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로 신앙을 설명하려 한 것 자체가 불경하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과 논리의 대명사로, 신앙의 세계와는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방법이 충격적이다.
같은 유대인인 그들이 도미니코회 종교재판소에 마이모니데스의 책을 고발했다.
도미니코회는 당시 유럽에서 이단 심문을 전담하던 가톨릭 수도회였다.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와 「미슈네 토라」 일부가 광장에서 공개 소각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마이모니데스 논쟁'이다.
평생 유대 공동체의 율법을 정리하고 철학적 토대를 세운 사람의 책을, 같은 공동체가 외부 권력의 손을 빌려 불태운 사건이었다.
그가 죽기 직전 자기 묘비에 새기게 한 말이 전해진다.
"인간의 자랑이 여기 누웠다."
그 말이 자부심인지 예언인지,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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