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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780년 여름, 죽음을 7개월 앞둔 레싱이 야코비에게 입을 열었다.
평생 숨겨온 단 한 문장이었다.
레싱은 당시 독일 계몽주의의 최고 권위자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전국민이 인정하는 지식인 1호, 국민 멘토 같은 존재였죠.
그런데 그가 젊은 야코비에게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나는 스피노자주의자야."
스피노자주의란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상을 따르는 것인데, 당시에는 "스피노자 = 범신론 = 무신론"이라는 등식이 통용됐어요.
범신론이란 신이 우주 전체에 퍼져 있다는 생각으로, 기독교의 인격 신을 부정하는 셈이라 사실상 무신론 취급을 받았습니다.
야코비는 이 고백을 품고 있다가, 레싱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인 1785년에 책으로 공개했어요.
제목은 '스피노자 학설에 관한 편지'.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어요.
레싱의 절친이었던 모제스 멘델스존, 즉 평생 레싱을 변호하고 지지해 온 철학자가 충격을 받고 몇 달 뒤 사망했습니다.
한 사람의 임종 고백이 한 시대의 지적 권위 구조를 통째로 무너뜨린 거예요.

야코비는 새로운 단어를 발명했어요.
Nihilismus(니힐리즘), 한 세기 뒤 니체가 이어받게 될 바로 그 단어였습니다.
1799년, 야코비는 당시 독일 관념론의 두 번째 거장이었던 피히테에게 공개 편지를 씁니다.
관념론이란 세상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나 이성에 있다는 철학의 흐름이에요.
야코비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이성으로 끝까지 따라가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모든 선택지를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따져본 끝에 "계산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
그 지점이 바로 니힐리즘, 즉 허무주의예요.
그래서 야코비가 내놓은 해법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성을 건너뛰어야 한다."
그는 이것을 '죽음의 도약(salto mortale)'이라고 불렀어요.
죽음의 도약이란, 이성의 논리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신앙의 세계로 그냥 뛰어드는 것을 말해요.
이성이 막다른 곳에 서면, 눈을 감고 도약하는 거죠.
하지만 반전이 있었습니다.
야코비가 적을 공격하려고 만든 단어 '니힐리즘'은 한 세기 뒤 니체의 손으로 넘어갔어요.
니체는 그 단어를 야코비와 정반대 방향으로, 신앙이 아니라 가치의 재창조를 위한 진단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야코비는 자기 무기를 후대에 빼앗긴 셈이었죠.

야코비는 같은 시대 독일 철학의 거인 네 명,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 모두를 적으로 돌렸어요.
칸트는 '물자체(Ding an sich)'라는 개념을 썼는데, 이건 우리가 절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사물의 본질을 말해요.
야코비는 여기에 날카로운 한 마디를 꽂았습니다.
"그것 없이는 칸트 체계로 들어갈 수 없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 안에 머물 수 없다."
즉, 칸트의 논리가 처음부터 자기 모순을 품고 있다는 공격이었어요.
피히테에게는 더 직접적이었습니다.
야코비는 그를 공개적으로 무신론자라고 비판해 '무신론 논쟁(Atheismusstreit)'을 일으켰어요.
이 논쟁은 피히테의 철학이 신을 부정한다는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고, 결국 피히테는 예나 대학에서 사임해야 했습니다.
야코비는 셸링과 헤겔과도 평생 대립했어요.
그런데 이 모든 논쟁에도 불구하고, 야코비는 끝내 강단에 서지 못했습니다.
거장들은 그를 "체계 없는 감정주의자"라고 일축했어요.
학회에서 매번 손을 들어 "그런데 이게 맞나요?"라고 묻는 사람이 정작 강단에는 오르지 못한 거예요.
그러나 거장들의 답변은 조금씩, 그 질문 때문에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야코비는 평생 졌어요.
그러나 그가 남긴 두 단어인 니힐리즘과 죽음의 도약은 19세기 이후 철학 전체의 문법이 됐습니다.
1819년 야코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철학계는 헤겔주의 전성기였어요.
헤겔주의란 이성으로 역사와 세계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거대한 체계인데, 그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야코비의 책들은 "낡은 감정주의"로 취급됐습니다.
하지만 30년 뒤, 키르케고르가 등장했어요.
키르케고르는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로, 이성으로는 신에게 닿을 수 없고 두려움과 떨림을 감수하며 그냥 뛰어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바로 야코비의 '죽음의 도약'이 '신앙의 도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었어요.
그리고 80년 뒤, 니체가 '니힐리즘'을 20세기 철학의 중심 문제로 올려놨습니다.
야코비가 이성 철학을 공격하려고 만든 단어들이 결국 이성 철학 이후를 사유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된 거예요.
회의에서 혼자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가 그 자리에서 묵살됐는데, 10년 뒤 회사 전체가 그 질문 하나에 매달리게 된 상황이랄까요.
야코비는 당대의 모든 논쟁에서 졌지만, 패배한 자가 다음 한 세기의 의제를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패배한 건 누구였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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