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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는 사형 선고를 받은 도망자였어요.
그런데 그가 다락방에서 종이에 적어 내려간 것은 인류가 영원히 진보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1793년 7월, 콩도르세의 이름이 프랑스 국민공회의 체포 명령서에 올랐어요.
국민공회는 프랑스혁명 이후 나라를 통치하던 의회예요.
그 의회가 그를 처형 대상으로 지목한 거죠.
파리 전체가 그를 잡으려 혈안이었어요.
그런데 콩도르세는 파리의 베르네 부인 집 다락방에 숨어 책을 써 내려갔어요.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그날 밤, 그 회사의 10년 후 비전을 혼자 종이에 적어 내려가는 사람처럼요.
그렇게 9개월 만에 완성한 책이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관'이에요.
인류는 무한히 발전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목에 현상금이 걸린 사람이 인류의 빛나는 미래를 쓴다는 이 모순이, 콩도르세라는 인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콩도르세는 어떤 투표 방식이 가장 공정한지를 수학으로 풀려고 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진보도 측정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26세에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된 그는 투표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어요.
A가 B를 이기고 B가 C를 이겼는데, 정작 C가 A를 이기는 경우가 생긴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걸 콩도르세 역설이라고 불러요.
다수결이 항상 옳지 않다는 걸 수학으로 증명한 발견이었어요.
그런데 콩도르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1790년, 그는 "여성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글을 발표했어요.
당시 유럽에서 여성 참정권을 공개 주장한 첫 번째 사람이었죠.
노예제 폐지도 외쳤어요.
오늘날로 치면 데이터로 사회 정책을 평가하는 통계학자이면서, 동시에 "이 정책이 도덕적으로 옳은가"를 숫자로 따지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도덕조차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진보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증명 가능한 방향이라고요.

콩도르세를 사형에 처한 것은 왕정주의자가 아니었어요.
그가 함께 혁명을 일으킨 동지들이었습니다.
콩도르세는 프랑스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어요.
프랑스혁명은 1789년 왕과 귀족이 지배하던 낡은 체제를 시민이 뒤집은 사건이에요.
그는 입법의원으로 혁명의 한복판에 있었죠.
하지만 그는 루이 16세 처형에 반대표를 던졌어요.
"왕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어요.
그리고 혁명 정부 안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세력이었던 자코뱅, 그들이 만든 1793년 헌법안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어요.
결과는 즉각적이었어요.
글이 나온 직후 국민공회가 체포 명령을 내렸어요.
자기가 창업한 회사의 이사회가 다음 안건으로 자기 해고를 표결에 부치는 상황이랄까요.
평생 헌신한 혁명이 그를 처형 명단에 올렸어요.
그래서 콩도르세는 베르네 부인의 다락방으로 숨었고, 거기서 인류의 진보를 써 내려갔어요.
자기를 배신한 세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낙관론으로요.
콩도르세가 죽고 1년 뒤, 그의 아내 소피가 그 다락방의 원고를 세상에 내놓았어요.
그 책은 100년 동안 진보주의자들의 성경이 되었습니다.
1794년 3월 25일, 콩도르세는 변장한 채 파리를 빠져나갔어요.
자신을 숨겨준 베르네 부인이 위험해질까 봐 스스로 나선 거예요.
사흘 뒤, 파리 근처 클라마르 마을의 여인숙에서 체포되었어요.
다음 날 아침, 그는 부르 라 렌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어요.
독살인지, 탈진인지, 뇌졸중인지 사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어요.
아내 소피 드 그루시가 1년 뒤 원고를 출판했어요.
그 책은 19세기와 20세기 진보 사상의 토대가 되었죠.
콩도르세는 자기가 그린 미래를 단 하루도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미래는 왔어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예컨대 여성의 투표권이나 노예제 폐지 같은 것들은 처음에 어떤 다락방에서 나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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