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이 성리학을 그림으로 그린 이유, 입학도설의 탄생
권근은 명 태조 앞에서 시 24편으로 살아 돌아왔다
권근이 명나라로 떠난 그날, 동료들은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1396년, 조선과 명나라 사이에 외교 사건이 터졌다.
조선이 명에 보낸 공식 외교 문서인 표전문(表箋文)의 표현이 무례하다며, 명 태조 주원장이 "작성자를 직접 보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진짜 작성자는 조선 건국의 설계자 정도전이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가지 않았다.
그때 권근이 자청해서 그 사신길에 올랐다.
"죽으러 가는 길"임을 알면서도.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다.
회사가 클라이언트에 보낸 메일이 화근이 됐고, 클라이언트가 "그 메일 쓴 사람 당장 데려와"라고 요구했는데, 실제 작성자는 도망가고 다른 부서 직원이 자청해서 클라이언트 회의실로 들어간 거다.
그런데 권근은 죽지 않았다.
명 태조가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시제(詩題)를 내리면 신하가 바로 시를 지어 바치는 응제시(應製詩) 시험이 시작됐다.
권근은 그 자리에서 시 24편을 지어 황제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살아 돌아왔을 뿐 아니라 황제에게 책까지 하사받았다.
즉흥 발표 한 번으로 회의실을 뒤집어놓고 선물까지 챙겨 나온 셈이다.
이 사람이 권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