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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원본 영상: 아예 떠먹여주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 5분 뚝딱 철학
칸트는 신의 존재나 우주의 유무한 같은 오래된 질문에 인간의 이성으로는 답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그는 인식의 방향 자체를 뒤집어, 대상이 우리에게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의 시간, 공간, 범주라는 틀이 감각자료를 능동적으로 구성해 대상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이 글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쉽게 풀어 설명한 강의 영상을 정리한 것으로, 흄이 던진 도전에서 시작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거쳐 물자체와 현상계에 이르는 논증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비유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왜 칸트 이전의 철학은 모두 그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이후의 철학은 모두 그로부터 흘러나왔다고 하는지 납득하게 된다.
강연자는 철학을 처음 공부할 때 아무 기초 지식 없이 순수이성비판을 혼자 읽어보겠다고 덤빈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때는 말 그대로 하얀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라는 것 말고는, 문장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 이해되리라 믿고 2년 동안 읽고 또 읽었다.
어느 순간 이해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내용을 정리해보려 했지만, 막상 정리는 되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은 것은 자신이 칸트를 이해한 게 아니라, 그저 칸트의 용어와 특유의 문체에 익숙해진 것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익숙해진 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했던 셈이다.
결국 혼자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후 칸트 전공자의 지도를 받으며 다시 몇 년을 더 읽고서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로 흘러들어가고, 이후의 모든 철학은 칸트로부터 흘러나온다는 말이 있을 만큼 칸트는 서양 철학을 이해하는 데 피해 갈 수 없는 지점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몇 년씩 걸리는 원전을 직접 읽을 필요는 없다. 이 글이 정리한 강의는 칸트를 알고는 싶지만 원전에 그만한 시간을 투자할 이유는 없는 사람들을 위해, 칸트 철학의 핵심을 간단하게 짚어준다.
신은 존재하는가,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시간에는 시작이 있는가, 인간에게 영혼과 자유의지는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애초에 헛소리, 즉 난센스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칸트의 대답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표현이 좀 더 점잖았을 뿐, 그는 인간의 이성은 애초에 이런 문제에 답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비판이라는 말은 바로 이 지점, 인간 이성의 능력에 한계선을 긋겠다는 뜻이다.
칸트가 보기에 신, 우주, 영혼, 자유 같은 문제에 이성이 답을 내놓으려 하는 것 자체가 이성의 월권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궁금함을 참지 못해 비밀의 커튼 뒤를 들추려 했고, 그 결과 고대 그리스부터 2500년 동안 철학자들이 이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두고 논쟁을 벌였지만 단 한 번도 해결에 이르지 못했다.
칸트는 인간이 이런 문제를 풀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회피할 수도 없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실제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칸트는 수학과 기하학, 물리학을 꼽았는데, 여기에 데이비드 흄이라는 철학자가 나타나 이 학문들이 사실은 진짜 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에 불을 지폈다.

흄은 모든 명제를 선험적 명제와 후험적 명제로 나눈다. 3 더하기 2는 5라는 명제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세어보지 않아도 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경험하기 전부터 참인지 알 수 있는 명제가 선험적 명제다. 반대로 창밖에 비가 온다는 명제는 직접 창문을 열고 내다봐야 참인지 알 수 있는데, 이런 명제가 후험적 명제다.
명제를 나누는 또 다른 기준은 분석적 명제와 종합적 명제다. 총각은 남자다라는 명제는 총각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남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어 아무런 새 지식도 주지 않는데, 이런 명제가 분석적 명제다. 반면 철수는 총각이다라는 명제는 철수라는 이름을 아무리 뜯어봐도 알 수 없는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는데, 이런 명제가 종합적 명제다.
흄은 3 더하기 2는 5,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다 같은 수학과 기하학의 명제들이 선험적이면서 동시에 분석적이라고 보았다. 필연적으로 참이긴 하지만, 결국 정의를 풀어쓴 것에 지나지 않아 새로운 지식은 하나도 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물체를 허공에 놓으면 중력가속도로 떨어진다 같은 물리학의 명제는 후험적이면서 종합적이라고 보았다. 새로운 지식을 담고 있긴 하지만, 그 낙하를 수백만 번 관찰했다 해도 그것이 필연적으로 그렇다는 사실 자체는 경험할 수 없으므로 그저 우연히 참인 지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흄은 수학과 기하학은 아무 정보도 없는 명제, 물리학은 우연히 참일 뿐인 명제이니 셋 다 진짜 학문이라 부를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칸트는 흄의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아, 스스로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결론에는 동의할 수 없었는데, 칸트가 보기에 수학과 기하학, 물리학은 진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 세 학문이 선험적이면서 동시에 종합적이라고 생각했다. 즉 필연적으로 참이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넓혀가는 명제라는 것인데, 문제는 그런 명제가 대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칸트는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쓰기 시작한다. 이 물음을 풀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인식이 이루어지는 방향 자체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같은 장면도 일반 카메라로 찍으면 이렇게 보이고, 열화상 카메라로 찍으면 전혀 다르게 보이며, 홀로그램이나 엑스레이로 찍으면 또 다른 모습이 된다. 이 중 어느 카메라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느냐고 물으면 답이 없다. 모든 카메라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물을 재현할 뿐, 거기에 우열은 없다.
인식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보고 듣는 방식으로, 박쥐는 초음파로, 뱀은 열을 감지해서, 개와 고양이는 흑백으로, 오징어와 문어는 음파로 사물을 인식한다. 어느 동물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느냐는 질문에도 답은 없으며, 모든 동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식할 뿐이다.
지금 내 눈앞의 둥글고 빨갛고 매끄러운 사과도 사실은 두뇌가 시각 정보를 받아 그렇게 해석해낸 이미지일 뿐이다. 내가 사과를 경험하고 그 성질을 알아챈 것이 아니라, 내 인식의 구조가 감각자료를 능동적으로 구성해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사물이라는 말 대신, 나와 마주 서 있는 상태라는 뜻의 대상이라는 말을 쓴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지구를 중심에 놓았던 천동설을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중심의 지동설로 뒤집었듯, 칸트는 인식의 방향을 뒤집었다. 대상에서 감각자료가 흘러들어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우리의 인식이 대상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부른다.
이 전환은 선험적 종합판단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준다. 내가 구성한 것을 내가 인식하는 것이므로 나의 인식과 대상은 어긋날 수 없어 필연적으로 참이 되고, 그런데 나는 아무렇게나 구성하는 게 아니라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방식으로 대상을 구성하기 때문에 그 지식은 저절로 확장된다. 감각자료라는 재료 없이 구성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 지식은 텅 빈 정의가 아니라 실제로 늘어나는 지식이 된다.
이제 관심의 대상은 사물이 아니라 나 자신, 즉 내가 어떻게 대상을 그런 식으로 인식하는가로 옮겨간다. 카메라가 자기 내부 구조를 스스로 찍을 수 없듯 나도 나를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카메라가 찍은 사진을 분석해 카메라의 특성을 알아내듯 내가 구성해낸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명제들을 분석하면 내가 대상을 구성하는 방식을 알아낼 수 있다. 칸트는 이런 접근을 초월철학이라 불렀는데, 브레인사이언스가 없던 시대에 대상을 연구하는 방식을 빌려 인간의 인식 구조를 탐구한 셈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식은 감성, 구상력, 지성이라는 세 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인 감성은 감정이나 감수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보고 듣는 감각자료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뜻한다. 그런데 이 감각자료는 아무렇게나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에 정리된 채로 들어온다.

그림 속 사과와 책, 자동차, 곰 인형, 액자를 하나씩 지워나가도 마지막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간이다. 음악에서 드럼 소리와 베이스 소리, 기타 소리를 차례로 지워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시간이다. 상상 속에서조차 시간과 공간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이 둘이 내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식체계 안에 내재된, 감각자료를 정리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인 구상력은 순차적으로 들어온 감각자료의 조각들을 기억해두었다가 하나의 전체 이미지로 동시에 떠올리는 능력이다. 이 능력 덕분에 우리는 빨갛다, 동그랗다, 단단하다, 시큼하다처럼 서로 다른 감각들을 흩어진 채로 두지 않고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인식으로 동시에 모을 수 있다.
세 번째 단계인 지성은 구상력이 종합해놓은 이미지에서 색깔 같은 표상을 뽑아내고, 여기에 사과나 빨갛다 같은 개념을 붙여 결합한다. 이 결합을 판단이라 부르는데, 판단은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수, 성질, 관계, 양상이라는 네 갈래의 범주에 따라 규칙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모든 사과는 빨갛다라는 판단 하나가 만들어진다.
서양 근대 인식론은 흔히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로 이어지는 합리론과 로크, 버클리, 흄으로 이어지는 경험론의 대립으로 설명된다. 합리론자는 지식의 원천을 인간의 이성에서 찾고, 경험론자는 그 원천을 경험에서 찾는다. 칸트의 인식론은 이 둘을 모두 받아들이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칸트는 이를 붕어빵 만드는 과정에 비유한다. 밀가루 반죽이 붕어빵 틀 속에 들어가면 그 틀 모양 그대로 붕어빵이 나오듯, 감각자료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 그리고 열두 범주라는 인식의 틀 속에 들어가면 그 틀 모양대로 지식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밀가루 반죽에 해당하는 감각자료는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경험이고, 붕어빵 틀에 해당하는 인식의 틀은 합리론자들이 말하는 이성이다.
그래서 칸트는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고 말한다. 경험이라는 내용 없이 이성만으로 사고하는 것은 밀가루 반죽 없이 붕어빵 틀만 구워내는 것과 같아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공갈빵이 되고, 반대로 개념이라는 이성 없이 경험만으로 직관하는 것은 반죽을 틀에 넣지 않고 그냥 구워 떡처럼 되어버리는 것과 같아서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비둘기가 공기의 저항만 없으면 더 잘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공기가 없으면 아예 날 수조차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공기는 경험을, 난다는 것은 지식을 얻는다는 것을 뜻한다. 경험 없이 생각의 힘만으로 화려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경험 없이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신, 우주, 영혼, 자유처럼 2500년 동안 풀리지 않은 형이상학의 질문들이 바로 이런 경험 없는 공갈빵이었기에, 단 한 번도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이 칸트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감각자료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칸트는 그 출처 자체는 인간이 알 수 없다고 본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감각자료를 가지고 내가 구성해낸 현상의 세계뿐이고,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그 출처 자체를 칸트는 물자체라고 부른다. 이렇게 보면 물자체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 두 개의 세계가 나뉘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물자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도 따져보면 이상하다. 지금 여기라는 말 자체가 시간과 공간 속에 있다는 뜻인데, 시간과 공간은 내 머릿속의 형식일 뿐이므로 물자체가 그 안에 존재한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는 초월적인 차원에서는 관념론자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 속의 현상 세계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실재하는 세계이므로, 경험적인 차원에서는 실재론자라고 말할 수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진짜, 눈앞의 현실 세계를 가짜로 보았지만, 칸트는 물자체를 알 수 없고 현상계를 벗어날 수도 없는 인간에게는 오히려 현상계야말로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진짜 세계라고 본다. 플라톤의 이원론을 뒤집은 셈이다.

이 물자체와 현상계의 구도는 이후 철학사 전체로 흘러들어갔다. 쇼펜하우어는 물자체를 의지로, 현상계를 표상으로 바꿔 읽었고, 이는 니체와 프로이트를 거쳐 푸코, 들뢰즈, 데리다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피히테가 주관적 관념론을 내놓았고, 셸링이 이에 반발해 객관적 관념론을 제시했으며, 헤겔이 이 둘을 종합해 절대적 관념론을 완성했고, 마르크스가 다시 이를 뒤집어 유물론을 세웠다. 칸트 이전의 철학은 모두 그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이후의 철학은 모두 그로부터 흘러나왔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쯤 되면 납득할 수 있다.
칸트는 참과 거짓을 다루는 순수이성비판, 선과 악을 다루는 실천이성비판, 아름다움을 다루는 판단력비판까지 세 권의 책을 남겼다. 그런데 참과 거짓을 따지는 방식과 선과 악을 따지는 방식은 서로 달라 두 책 사이에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문제가 생겼고, 칸트는 그 간극을 미학으로 메우기 위해 판단력비판을 썼다. 칸트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세 권을 모두 읽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중 순수이성비판의 핵심만 간추려 정리했다.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년
네 행동이 모두의 법칙이 될 수 있게 하라, 의무의 윤리학.

데이비드 흄
David Hume
1711년
인과도 습관일 뿐, 경험을 끝까지 의심한 회의주의자.

플라톤
Plato
기원전 428년
현실 너머에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본 사람.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근대 철학의 출발점.

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
1632년
신과 자연은 하나이고 모든 것은 필연이라 본 사람.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Gottfried Leibniz
1646년
세상은 무수한 모나드로 되어 있고 최선의 세계라 본 사람.

존 로크
John Locke
1632년
마음은 백지, 경험이 지식을 만든다 한 경험론과 자유주의의 아버지.

조지 버클리
George Berkeley
1685년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 물질은 없다고 본 관념론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1762년
자아가 세계를 세운다고 본 독일 관념론자.

프리드리히 셸링
Friedrich Schelling
1775년
자연과 정신을 하나로 본 독일 관념론자.

게오르크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년
역사는 정반합으로 나아간다고 본 변증법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년
세상의 본질은 맹목적 의지, 삶은 고통이라 본 염세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
1818년
역사는 계급투쟁, 자본주의를 비판한 사상가.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년
신은 죽었다, 기존 가치를 부수고 자기 삶을 긍정하라 한 사람.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1889년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 언어의 한계를 파고든 사람.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1926년
권력과 지식이 어떻게 우리를 만드는지 파헤친 사람.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
1930년
고정된 의미를 해체한 포스트구조주의자.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년
차이와 생성을 긍정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년
네 행동이 모두의 법칙이 될 수 있게 하라, 의무의 윤리학.

데이비드 흄
David Hume
1711년
인과도 습관일 뿐, 경험을 끝까지 의심한 회의주의자.

플라톤
Plato
기원전 428년
현실 너머에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본 사람.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근대 철학의 출발점.

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
1632년
신과 자연은 하나이고 모든 것은 필연이라 본 사람.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Gottfried Leibniz
1646년
세상은 무수한 모나드로 되어 있고 최선의 세계라 본 사람.

존 로크
John Locke
1632년
마음은 백지, 경험이 지식을 만든다 한 경험론과 자유주의의 아버지.

조지 버클리
George Berkeley
1685년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 물질은 없다고 본 관념론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1762년
자아가 세계를 세운다고 본 독일 관념론자.

프리드리히 셸링
Friedrich Schelling
1775년
자연과 정신을 하나로 본 독일 관념론자.

게오르크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년
역사는 정반합으로 나아간다고 본 변증법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년
세상의 본질은 맹목적 의지, 삶은 고통이라 본 염세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
1818년
역사는 계급투쟁, 자본주의를 비판한 사상가.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년
신은 죽었다, 기존 가치를 부수고 자기 삶을 긍정하라 한 사람.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1889년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 언어의 한계를 파고든 사람.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1926년
권력과 지식이 어떻게 우리를 만드는지 파헤친 사람.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
1930년
고정된 의미를 해체한 포스트구조주의자.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년
차이와 생성을 긍정한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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