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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힐데가르트는 자기가 본 환상을 잠결의 꿈이나 정신을 잃은 황홀경이 아니라, 두 눈 뜨고 깨어 있는 채로 '마음의 눈'으로 봤다고 했어요. 그 모든 환상이 흘러나오는 빛의 근원을 그녀는 '살아있는 빛'이라 불렀고, 그 빛이 보여준 것을 옮긴 책이 바로 『쉬비아스』예요.

1141년 어느 날, 마흔둘이던 독일의 수녀원장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하늘이 열리며 불같은 빛이 쏟아져 머릿속으로 흘러드는 걸 느꼈어요.
동시에 목소리가 들렸죠.
"네가 보고 들은 것을 적어라."
그때부터 그녀는 어릴 적부터 평생 봐 온 환상의 근원에 이름을 붙입니다.
바로 '살아있는 빛'이에요.
밤에 방이 환한 건 전등 때문인데, 우리는 보통 전등은 안 쳐다보고 밝아진 책상이나 벽만 봐요.
힐데가르트에게 환상 속 장면들은 '밝아진 물건'이고, 살아있는 빛은 그 모든 걸 비추는 '빛 자체'였어요.
그녀에게 이 빛은 그냥 밝기가 아니라, 살아서 말을 걸어오는 신의 현존이었죠.
그래서 '살아있는' 빛이라고 부른 거예요.

여기가 힐데가르트 환시 신학에서 가장 특이한 지점이에요.
보통 '환상을 봤다'고 하면 우리는 잠들어 꾼 꿈이나, 정신을 잃고 쓰러진 무아지경을 떠올려요.
그런데 힐데가르트는 딱 잘라 말합니다.
나는 잠들지도, 넋이 나가지도 않았다고요.
그녀는 두 눈을 뜨고 멀쩡히 깨어서, 밥 먹고 기도하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동안 '마음의 눈'으로 환상을 봤다고 했어요.
앞을 보면서 동시에 마음속 화면에 다른 장면이 겹쳐 떠오르는 것과 비슷해요.
그래서 그녀의 환상은 몽롱한 헛것이 아니라, 또렷하게 보고 기억해 그대로 받아 적을 수 있는 것이었죠.
이 '깨어서 본다'는 태도가 그녀의 환상을 개인의 착각이 아니라 진지한 기록으로 만들어 줬어요.

힐데가르트가 본 건 그림만이 아니었어요.
장면과 함께 그 뜻을 풀어 주는 목소리가 같이 들렸거든요.
화면만 흐르는 무성영화가 아니라, 옆에서 "저건 이런 뜻이야" 하고 설명해 주는 해설이 붙은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했어요.
그래서 그녀는 어려운 신학을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닌데도, 본 것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우주의 창조나 인간과 신의 관계 같은 커다란 이야기가 풀려 나왔다고 했어요.
본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이 환상 안에서 한꺼번에 일어난 셈이죠.
살아있는 빛은 보여 주는 동시에 가르치는 빛이었어요.

힐데가르트는 자기가 늘 보는 빛과, 아주 드물게만 보는 빛을 구분했어요.
평소에 보는 건 '살아있는 빛의 그림자(반영)'였고, 진짜 '살아있는 빛 자체'는 좀처럼 만나지 못했죠.
| 구분 | 살아있는 빛의 그림자 | 살아있는 빛 자체 |
|---|---|---|
| 얼마나 자주 | 거의 늘, 낮이든 밤이든 | 아주 드물게 |
| 어떤 경험 | 환상과 목소리가 여기 담겨 보임 | 슬픔과 무거움이 씻겨 나가는 듯함 |
| 비유 | 창으로 들어온 햇빛 | 창밖의 해 그 자체 |
늘 곁에 있는 건 방으로 들어온 햇빛(그림자·반영)이지만, 해 자체(살아있는 빛)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은 드물었다는 뜻이에요.
이 구분 덕분에 그녀는 자기가 신을 다 봤다고 뽐내지 않고, 그저 빛의 한 자락을 봤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할 수 있었죠.

힐데가르트는 이 환상들을 약 10년에 걸쳐 글과 그림으로 정리해 『쉬비아스』라는 책을 완성했어요(1141년부터 1151년까지).
제목은 '주님의 길을 알라'라는 뜻이고, 스물여섯 개의 환상에 우주의 창조부터 마지막 날까지가 담겨 있죠.
흥미로운 건, 그녀가 처음엔 적기를 두려워하며 미뤘고 그럴 때마다 몸이 앓아누웠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마음을 다잡고 받아 적기 시작하자 다시 기운이 돌아왔다고 해요.
또 그녀는 스스로를 "신의 숨결에 실린 한 개의 깃털"이라고 불렀어요.
깃털은 혼자 날지 못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실려 갈 뿐이죠.
대단한 건 깃털인 자기가 아니라 깃털을 띄운 바람, 곧 살아있는 빛이라는 뜻이에요.
이 비유 덕에 그녀는 '내 생각'이 아니라 '받아 적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어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환시 신학은 딱 한 문장으로 기억하면 돼요.
잠이나 황홀경이 아니라 깨어서 눈 뜬 채 마음의 눈으로 본 환상, 그리고 그 모든 환상이 흘러나오는 근원인 '살아있는 빛'.
그녀는 그 빛을 정면으로 본 게 아니라 대개 그 '그림자'를 봤다고 겸손하게 나눴고, 자기는 바람에 실린 깃털일 뿐이라며 본 것을 『쉬비아스』에 옮겼어요.
환상을 신비한 자랑거리가 아니라 또렷이 적어 남길 기록으로 대한 태도, 그게 힐데가르트 환시 신학의 핵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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