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에리우게나는 신이 텅 빈 허공 같은 '무'에서 세상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가 말한 '무'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 아니라 모든 것을 넘어서는 신 자신이었고, 세상은 그 신에게서 빛처럼 흘러나온 거예요.

"무에서의 창조"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아마 마술사가 텅 빈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장면을 떠올릴지도 몰라요.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무언가가 뿅 하고 생겨나는 그림이죠.
기독교에는 오래전부터 "신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만들었다"는 가르침이 있었어요.
세상이 생기기 전에는 텅 빈 허공조차 없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9세기 아일랜드 출신 철학자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는 바로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했어요.
오늘은 그가 이 '무'를 어떻게 다시 봤는지 세 걸음으로 따라가 볼게요.
에리우게나는 프랑스 왕 대머리왕 카롤루스의 궁정에서 일하며 『자연의 구분에 관하여』라는 책을 썼어요.
그는 "무에서의 창조"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면 이상하거든요.
'무'가 정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허공이라면, 그 허공은 신이 세상을 만들기 전부터 신 바깥에 따로 놓여 있던 셈이잖아요.
하지만 신보다 먼저, 신과 따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에리우게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무'는 텅 빈 허공이 아니라 바로 신 자신이라고요.
신은 우리가 아는 어떤 '것'도 아니에요.
나무나 돌처럼 셀 수 있는 물건이 아니죠.
그래서 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 곧 '무'라고 부를 수 있어요.
비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넘어설 만큼 가득해서요.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이 하나 떠오르는 순간을 상상해 보세요.
그 생각은 나무나 흙 같은 재료로 만든 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마음에서 나왔죠.
마음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어떤 의미에서 생각은 '아무 물건도 아닌 곳'에서 나온 셈이에요.
에리우게나가 말한 '무에서의 창조'도 이런 거예요.
텅 빈 곳에서 뿅 하고 나온 게 아니라, 물건이 아닌 신에게서 나왔다는 뜻이죠.
그러니 여기서 '무'는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라 '어떤 물건도 아님'에 가까워요.

그렇다면 세상은 신 바깥의 빈 곳이 아니라 신 자신에게서 나온 거예요.
에리우게나는 이것을 '신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로 봤어요.
태양을 떠올려 보세요.
태양은 빛을 어디 밖에서 가져와 뿌리지 않아요.
빛은 태양 자신에게서 뿜어져 나오죠.
세상도 신이 어딘가에서 재료를 구해 조립한 게 아니라, 신 자신에게서 빛처럼 뿜어져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에게 창조는 무언가를 '조립하는 일'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가까웠어요.
두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달라요.
| 구분 | 흔히 말하는 '무에서의 창조' | 에리우게나의 생각 |
|---|---|---|
| '무'의 뜻 |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허공 | 모든 것을 넘어서는 신 자신 |
| 창조의 모습 | 장인이 재료로 물건을 만들 듯 | 태양에서 빛이 뿜어 나오듯 |
| 세상과 신 사이 | 만든 이와 만들어진 것으로 뚜렷이 나뉨 | 세상은 신이 스스로를 드러낸 모습 |

에리우게나는 "무에서의 창조"라는 말 자체를 버리지는 않았어요.
대신 그 '무'가 텅 빈 허공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무'란 모든 것을 넘어서는 신 자신이라고 다시 풀었죠.
그래서 세상은 빈 곳에서 뿅 하고 튀어나온 게 아니라, 태양에서 빛이 나오듯 신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됩니다.
이렇게 세상과 신을 아주 가깝게 붙여 놓은 탓에, 훗날 그의 생각은 "세상과 신을 같은 것으로 본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어요.
그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기로 해요.
오늘은 딱 하나만 기억하면 돼요.
에리우게나에게 창조란 텅 빈 곳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넘치도록 가득한 신이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었다는 것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