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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에우클레이데스는 지혜와 신, 이성처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좋은 것들이 사실은 '하나의 좋음(선)'이라고 봤어요. 그 하나의 좋음만이 참으로 있는 것이고, 우리가 아는 여러 좋은 것은 그 하나를 부르는 여러 이름일 뿐이라고 생각했지요.

한 사람을 떠올려 볼까요?
집에서는 "엄마", 학교에서는 "선생님", 할머니 앞에서는 "우리 딸"이라고 불려요.
이름은 셋이지만 사람은 한 명이지요.
에우클레이데스가 말한 '일자선(一者善)'도 이와 닮았어요.
그리스말로는 '타가톤(τἀγαθόν)', 우리말로 옮기면 '그 좋음' 또는 '좋음 그 자체'예요.
우리는 보통 좋은 것이 아주 많다고 생각해요.
맛있는 밥도 좋고, 착한 마음도 좋고, 똑똑한 것도 좋지요.
그런데 에우클레이데스는 이렇게 물어요.
"그 많은 것을 우리가 하나같이 '좋다'고 부르는 까닭은, 그 안에 똑같은 하나의 좋음이 들어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러니까 좋음은 여러 개가 아니라 딱 하나예요.
우리는 그 하나를 상황마다 지혜, 정의, 용기처럼 다른 이름으로 부를 뿐이지요.
마치 한 사람이 자리에 따라 엄마도 되고 선생님도 되듯이요.
이름표만 바꿔 달았을 뿐, 그 밑에 있는 좋음은 언제나 같은 하나라는 거예요.

에우클레이데스는 기원전 400년 무렵 그리스의 메가라라는 도시에서 활동한 철학자예요.
소크라테스를 무척 따르던 제자였고,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고향에 '메가라학파'라는 배움터를 세웠어요.
그의 일자선은 여기서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두 스승의 생각을 겹쳐서 나온 거예요.
하나는 소크라테스예요.
소크라테스는 "무엇이 진짜 좋은 것인지 알면 사람은 바르게 산다"며 평생 '좋음'을 물고 늘어졌어요.
다른 하나는 그보다 앞선 파르메니데스라는 철학자예요.
파르메니데스는 "참으로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것은 변하지도 쪼개지지도 않는다"고 했지요.
에우클레이데스는 이 두 생각을 포갰어요.
소크라테스의 '좋음'과 파르메니데스의 '하나'를 겹쳐서, "참으로 있는 그 하나가 바로 좋음이다"라고 말한 거예요.
서로 멀어 보이던 두 물음이 그의 손에서 하나로 합쳐진 셈이지요.
| 철학자 | 붙잡은 물음 | 남긴 생각 |
|---|---|---|
| 소크라테스 | 좋음(선)이란 | 좋음을 알면 바르게 산다 |
| 파르메니데스 | 있음(존재)이란 | 참으로 있는 것은 하나다 |
| 에우클레이데스 | 좋음과 있음을 겹치면 | 참으로 있는 그 하나가 곧 좋음이다 |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요.
에우클레이데스에게 좋음은 그냥 여럿 중 하나가 아니라, '참으로 있는 유일한 것'이었어요.
밤하늘에 해가 하나뿐이듯, 진짜로 굳건히 존재하는 것은 좋음 하나라는 거지요.
이 말은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어요.
쉽게 풀면 이래요.
우리가 "이건 나쁘다"고 말할 때, 그 나쁨은 사실 좋음이 빠지거나 모자란 자리일 뿐, 좋음처럼 단단하게 '있는' 무언가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늘을 떠올려 보세요.
그늘은 빛이 가려진 자리이지, 그늘이라는 물질이 따로 창고에 쌓여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에우클레이데스가 보기에 나쁨도 그래요.
좋음이라는 빛이 덜 든 자리일 뿐, 그 자체로 버티고 선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그의 세상 한복판에는 늘 흔들림 없는 하나의 좋음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일자선은 2400년쯤 전 이야기지만, 오늘도 곱씹어 볼 만해요.
우리는 돈, 성적, 인기, 건강처럼 좋아 보이는 것을 따로따로 좇느라 자주 지치잖아요.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놓치기 싫어서 마음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지요.
그런데 에우클레이데스라면 이렇게 물을 거예요.
"그 많은 것을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진짜 하나는 무엇일까?"
이 물음은 답을 딱 정해 주지는 않아요.
대신 흩어진 욕심 뒤에 놓인 한 가지를 돌아보게 해요.
여러 좋은 것을 손에 쥐려 하기 전에, 그 모두가 결국 가리키는 하나의 좋음이 내게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보게 하는 거지요.

에우클레이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좋음'과 파르메니데스의 '하나'를 겹쳐,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이 결국 하나의 좋음, 곧 일자선이라고 봤어요.
그 좋음은 지혜와 정의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은 하나이고, 참으로 있는 것은 그 하나뿐이라고 여겼지요.
좋은 것을 낱낱이 세는 대신 그 밑에 놓인 하나를 보려 했다는 점, 이것만 기억해도 일자선의 핵심을 손에 쥔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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