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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에티엔 보노 드 콩디약은 가톨릭 사제였는데, 1754년 교회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영혼'이라는 개념을 텅 빈 대리석 덩어리로 만들어버렸어요.
사제복을 입은 사람이 쓴 『감각론』(Traité des sensations)의 핵심 주장은 이랬어요.
인간의 정신은 신이 불어넣은 것이 아니라, 감각이 쌓이고 변형되면서 만들어진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의식 전체가 경험이 굳어진 결과물이라는 거예요.
당시 신학의 답은 명확했어요.
영혼은 신이 직접 부여한 것이고, 인간의 고귀함은 바로 거기서 온다.
그런데 사제 콩디약은 이 전제 자체를 실험대에 올렸어요.
그래서 그는 완전히 비어 있는 존재를 가정했어요.
기억도 없고, 감정도 없고, 생각도 없는 대리석 동상 하나.
그리고 물었어요. "이 동상에 감각 하나를 열어준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장미향 한 줄기로 자아 전체가 태어난다는 것, 이게 콩디약의 가장 대담한 주장이에요.
동상에게 처음으로 후각 하나만 열어줘요.
냄새 말고는 세상이 없는 존재에게, 장미향이 곧 자기 자신이 돼요.
"나는 이 향기야." 처음으로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콩디약의 연쇄 반응이 시작돼요.
향기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 주의가 반복될 때 기억이 생겨요.
기억이 생기면 다른 냄새와 비교할 수 있게 되고, 그 비교에서 욕망이 태어나요.
결국 콩디약의 논리에 따르면 주의, 기억, 욕망, 비교, 판단, 이 모든 것이 감각의 변형이에요.
정신의 모든 기능이 감각 하나에서 피어나는 거예요.
갓 태어난 아기가 처음으로 빛을 본 순간, 그 한 점에서 모든 의식이 열리는 것처럼요.
콩디약은 스승을 더 완벽하게 만들려다가 스승의 절반을 지워버렸어요.
그 스승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예요.
1689년 『인간지성론』을 써서 "인간은 빈 종이로 태어난다"고 주장한 사람이에요.
우리가 아는 모든 건 보고 듣고 느낀 경험에서 온다는 거죠.
하지만 로크에게는 예외가 하나 있었어요.
'반성(reflection)'이에요.
내 생각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내면의 눈 같은 것인데, 로크는 이걸 감각과 나란히 서는 두 번째 인식 원천으로 인정했어요.
콩디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그 반성마저도 감각이 변형된 것에 불과해."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행위도, 결국 과거 감각들이 기억 속에서 다시 작동하는 것일 뿐이라는 거예요.
선생님 풀이를 보고 "더 짧게 풀 수 있는데요"라고 말한 학생이 교과서를 다시 쓰는 장면이에요.
로크를 평생 존경하면서도, 그 체계를 더 철저하게 만들려다 기둥 하나를 통째로 뽑아버린 셈이에요.
영혼을 감각의 산물로 환원한 가장 급진적인 사제가, 유럽 최강 왕실의 후계자를 9년 동안 직접 가르쳤어요.
1758년, 콩디약은 이탈리아 파르마 공국으로 건너갔어요.
부르봉 왕가는 당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뻗어 있는 유럽 왕실 네트워크의 중심이었어요.
그 왕가의 어린 공작 페르디난도가 콩디약의 학생이 됐어요.
9년 동안 콩디약은 파르마에 머물렀어요.
그리고 파리로 돌아왔을 때 손에는 16권짜리 교재 『학습과정』이 들려 있었어요.
감각에서 자아가 탄생한다는 그 철학을, 실제 왕자의 두뇌에 직접 심어보는 9년짜리 실험이기도 했어요.
대리석 동상에게 장미향을 맡게 해 의식을 깨우겠다던 사람이, 실제 왕자에게 9년을 쏟아부으며 그 이론을 시험했어요.
콩디약의 동상은 향기를 맡고 깨어났어요.
페르디난도는 과연 어떤 향기를 맡으며 자아를 찾았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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