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평생 권위로 삼은 디오니시우스는, 사실 그보다 700년 전 죽은 그리스 이교도의 가르침이었어요.
아퀴나스는 13세기 가톨릭 신학의 정점에 선 사람이에요.
그가 쓴 『신학대전』은 기독교 교리를 총정리한 책으로, 지금도 신학 공부의 기준점이에요.
그 책에는 '디오니시우스'라는 이름이 거듭 등장해요.
디오니시우스는 사도 바울의 제자로 알려진 초대 교회의 성인이에요.
당시 사람들은 이 인물이 예수 시대 직후를 살았다고 믿었어요.
그러니 그 권위는 거의 성경에 버금갔겠죠.
그런데 19세기 학자들이 디오니시우스의 글을 분석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해요.
논리 구조, 심지어 문장까지도 훨씬 이전에 쓰인 다른 책과 거의 똑같았거든요.
그 책의 저자가 바로 프로클로스(Proclus), 5세기 아테네를 살다 간 그리스 이교도 철학자예요.
결국 진실이 드러났어요.
이른바 '디오니시우스'는 가명이었어요.
누군가가 프로클로스의 논리를 가져다가 기독교 용어로 갈아입히고, 권위를 빌리기 위해 사도 시대 인물의 이름을 붙인 거예요.
학자들은 이 익명의 저자를 위-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라고 불러요.
'위(僞, Pseudo)'는 '가짜'라는 뜻이에요.
중세 가톨릭 신학의 기둥 하나가 사실은 이교도 철학의 복사판이었던 셈이에요.

프로클로스가 법학 공부를 그만둔 이유는 단 하나, 꿈에서 아테나 여신이 아테네로 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어요.
412년경 소아시아 남부 리키아 지방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프로클로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수사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있었어요.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늘날의 이스탄불, 당시 동로마 제국의 수도예요.
법관은 오늘날로 치면 검사나 판사 같은 안정된 직업이었고, 집안도 좋았으니 미래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런데 꿈을 꿔요.
꿈속에서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나타나 아테네로 오라고 해요.
프로클로스는 다음 날 짐을 쌌어요.
문제는 시대였어요.
그가 아테네로 향하던 무렵, 기독교는 이미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상태였어요.
그리스 신들을 섬기는 것은 시대착오를 넘어,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프로클로스는 아테네에 도착해 플라톤 아카데미에 들어가요.
플라톤 아카데미는 기원전 4세기에 철학자 플라톤이 세운 학교로, 그 시대까지 800년 넘게 이어져 온 곳이에요.
그리고 28세에 프로클로스는 그 아카데미의 수장이 돼요.
모두가 주류 종교와 새 세계질서로 몰리는 시대에, 혼자서 사라져가는 학파의 도제로 들어간 청년이에요.
꿈 하나 믿고서요.

485년 아테네에서, 그는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그리스 신들의 사제였어요.
프로클로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채식과 금욕을 지키며 살았어요.
매일 새벽, 정오, 일몰에 태양을 향해 기도했어요.
그리스 신들뿐 아니라 이집트의 신들, 칼데아(오늘날 이라크 지역)의 신들에게도 각각의 의례를 올렸어요.
그가 직접 한 말이 전해져요.
"나는 한 도시의 사제가 아니라 온 세계의 사제다."
이 말이 나온 배경을 알면 더 인상적이에요.
그가 살던 시기, 황제의 명령으로 이교 신전들은 하나둘 문을 닫거나 교회로 바뀌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프로클로스는 아테네 아카데미에서 버티며 모든 신들의 축일을 챙겼어요.
그가 중시한 수행이 테우르기아(theurgia)예요.
논리와 명상만으로 신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의례를 통해 신과 직접 합일하는 실천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신학 논문을 쓰는 것과 실제로 신의 임재를 온몸으로 체험하려는 것의 차이예요.
프로클로스는 철학을 머리로만 하지 않았어요.
모두가 새 시스템으로 갈아탄 뒤에도, 혼자만 옛 시스템을 매일 정성껏 가동시키는 마지막 관리자였어요.

485년에 죽은 프로클로스의 책은, 그를 몰아내려 한 종교를 천 년 동안 조용히 떠받쳤어요.
프로클로스가 남긴 가장 중요한 책이 『신학요강(Elementatio Theologica)』이에요.
핵심 논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래요. "하나(一者)에서 만물이 흘러나오고, 만물은 다시 그 하나로 돌아간다."
태양에서 빛이 퍼져나가듯, 우주의 근원인 '하나'에서 모든 존재가 생겨나고 결국 그리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이것을 211개의 명제로, 수학 증명처럼 체계화한 책이에요.
그런데 이 구조가 기독교 신학에 딱 맞았어요.
하나님에서 만물이 창조되고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기독교의 이야기와 형식이 너무 닮았거든요.
그래서 위-디오니시우스가 프로클로스의 논리를 가져다가 기독교 버전으로 바꿔썼어요.
아퀴나스는 그 책을 읽으며 성인 디오니시우스의 지혜라고 믿었어요.
결국 프로클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중세 신학의 뼈대를 제공한 셈이에요.
영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15세기 피렌체에서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이 계보를 다시 발굴해요.
피치노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플라톤 전집을 라틴어로 번역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로, 그의 작업이 르네상스 사상의 출발점이 됐어요.
그리스 신들을 위해 쓴 이교도의 논리가, 그 신들을 지워버린 종교를 천 년 동안 지탱하고, 마침내 새 시대를 여는 씨앗까지 됐어요.
프로클로스는 그 사실을 영원히 몰랐겠지만, 그의 생각은 자신을 지워버리려 한 세계를 수백 년 동안 조용히 지탱하고 있었어요.
어쩌면 생각이라는 건, 그것을 만든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는 거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