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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의사가 이제 다시 식사해도 좋다고 말한 날, 클레안테스는 거꾸로 죽기로 결심했어요.
나이 거의 백 살에, 잇몸에 종양이 생겼어요. 의사는 이틀만 굶으면 낫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굶었고, 종양은 가라앉았어요.
의사가 이제 드셔도 된다고 하자, 클레안테스는 조용히 말했어요. "이미 길의 절반을 왔는데 왜 돌아가요?" 그리고 단식을 이어갔어요.
결국 그렇게 스스로 굶어 죽었어요. 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일화를 모아 기록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책에 남아 있어요.
치료가 끝났다는 통보가 오히려 죽음의 출발선이 된 거예요. 이 장면이 이해가 안 된다면, 클레안테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알아야 해요.

법정은 그가 돈도 없이 어떻게 사는지 의심했어요. 진실은 그가 매일 밤 물을 긷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클레안테스는 원래 권투선수였어요. 지방에서 격투기 하다가 철학 공부 하러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손에 쥔 돈은 4드라크마, 오늘날로 치면 며칠치 식비 정도였어요.
아테네에 도착한 그는 제논의 학당을 찾아갔어요. 제논은 스토아 철학을 창시한 사람으로, 채색된 주랑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어요.
스토아 철학이란 간단히 말하면 이거예요.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이성으로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라. 클레안테스는 그 가르침에 반해 제자가 되었어요.
문제는 돈이었어요. 학비도, 밥값도 없었어요. 그래서 낮에는 강의를 듣고, 밤에는 정원에 물을 긷거나 곡식을 빻는 일을 했어요.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어요. 낮에는 강의실에 앉아 있는데, 일하는 모습은 아무도 못 봤으니까요. 결국 아레오파고스에 소환됐어요.
아레오파고스는 아테네의 최고 법정으로, 오늘날로 치면 대법원 같은 곳이에요. 죄목은 단순했어요. "직업도 없이 어떻게 먹고사냐."
법정에 증인이 나타났어요. 클레안테스가 밤마다 물을 길어준 정원 주인이었어요. 그가 직접 증언하자 법정은 무죄를 선고했어요. 오히려 법관들이 상금을 주려 했는데, 제논이 먼저 그에게 은화를 건넸다는 기록도 있어요.

제논이 죽었을 때, 누구도 가장 느리다고 놀림받던 제자가 학교를 물려받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동료들은 클레안테스를 "나귀"라고 불렀어요. 머리가 굼뜨고 이해가 느려서, 제논의 강의를 수첩에 빽빽이 받아 적어야 겨우 따라갔어요. 당시 제논의 주변에는 말이 빠르고 재치 있는 제자들이 훨씬 많았어요.
그런 놀림에 클레안테스는 이렇게 대꾸했어요. "나귀라서 다행이에요. 제논의 짐을 질 수 있는 건 나귀니까요."
기원전 262년 무렵 제논이 세상을 떠났어요. 화려했던 동문들 중 누구도 아닌 클레안테스가 스토아 학파의 2대 수장이 되었어요. 이후 약 32년 동안 학파를 이끌었어요.
회사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입사 동기 중 가장 말 잘하고 눈에 띄던 사람들이 다 나간 뒤, 묵묵히 야근하던 평사원이 대표가 된 거예요. 빠른 머리가 아니라, 무거운 짐을 오래 질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자리를 지켰어요.

스토아는 차가운 이성의 학문으로 불려요. 그러나 그 신학의 한복판에는 한 편의 찬가가 놓여 있었어요.
클레안테스가 남긴 가장 중요한 글은 「제우스 찬가」예요. 약 39행짜리 시로, 스토아 신학의 핵심을 담고 있어요.
이 시의 핵심 개념은 로고스예요. 로고스란 우주를 움직이는 이성적 법칙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중력처럼 온 세상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원리인데, 스토아는 그것을 신과 동일시했어요.
이 찬가에서 클레안테스는 제우스를 신화 속 신이 아니라 우주의 이성 그 자체로 노래했어요. "당신의 보편 법칙으로 모든 것을 인도하소서"라는 구절이 핵심이에요. 자연과 이성과 신이 결국 하나라는 선언이었어요.
재미있는 건, 차갑고 논리적인 학문으로 알려진 스토아가 정작 자기 신학의 핵심을 논증이 아닌 노래로 남겼다는 거예요. 수학 교수가 교과서 대신 찬송가로 이론을 정리한 셈이에요. 그리고 그 노래는 수백 년 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닿았어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2세기 로마를 통치한 황제로, 스토아 철학을 삶의 지침으로 삼아 황제의 자리에서도 철학 일기를 썼어요. 그 사상의 뿌리 중 하나가 클레안테스의 찬가였어요.
물통을 지고 밤길을 걸었던 권투선수의 노래가, 결국 제국의 황제가 읽는 기도문이 되었어요.
나귀라 불렸던 사람이 가장 오래 살아남은 거예요. 그러니 아직 느리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클레안테스의 마지막 선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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