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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자유지상주의의 성서를 쓴 사람이 15년 뒤 자기 책을 부정했다.
자유지상주의란 "국가는 최소한만 개입하고,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침범하지 말라"는 사상이다.
그 사상의 경전으로 불리는 책을 직접 쓴 철학자가, 그 책이 "심각하게 부적절하다(seriously inadequate)"고 고백했다.
1989년, 로버트 노직은 『검토된 삶(The Examined Life)』이라는 새 책을 냈다.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의 대표작 『무정부·국가·유토피아』가 인간적 고려와 협력, 공동체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고 썼다.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출간 15년 후 "그 책은 틀렸어요"라고 인터뷰에서 선언한 것과 같은 사건이다.
철학자가 자기 이론을 수정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노직의 경우는 달랐다.
그가 쓴 책은 단순한 학술 저작이 아니라, 전 세계 자유지상주의 운동이 바이블처럼 읽던 텍스트였으니까.

노직이 자유지상주의로 돌아서기 전, 그는 캠퍼스의 사회주의자였다.
1950년대 후반, 컬럼비아대 학부생이던 노직은 노먼 토머스 사회주의자 학생 협회의 열성 회원이었다.
노먼 토머스 협회는 미국 사회당의 청년 조직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평등 분배를 요구하던 학생 운동 단체였다.
그는 자본주의가 불공정하다고 믿었고, 캠퍼스에서 적극적으로 평등주의를 외쳤다.
그런데 전환점이 찾아왔다.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자 머레이 로스버드와 토론을 거치면서, 노직은 조금씩 생각이 흔들렸다.
로스버드는 "국가 개입 자체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을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노직은 반박하려 했지만, 논리적으로 막혔다.
결국 그는 입장을 뒤집었고, 훗날 자유시장과 최소국가의 가장 강력한 철학적 옹호자가 됐다.
가장 보수적인 친척이 알고 보니 청년기에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반전과 비슷하다.
사상의 출발점이 정반대였다는 사실은, 노직이 자기 이론에 얼마나 치열하게 도달했는지를 보여준다.

노직의 반박은 단 한 명의 농구 선수에서 출발했다.
1974년 출간된 『무정부·국가·유토피아』는 3년 전 하버드 동료 존 롤스가 쓴 『정의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책이었다.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는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불평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일종의 복지국가 정당화 논리를 담은 책이다.
노직의 반격은 이렇게 시작된다.
NBA 스타 윌트 체임벌린의 농구 경기에 관중 100만 명이 모였다.
각자 자발적으로 1달러씩 냈고, 체임벌린은 100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누구도 속이거나 강요하지 않은 완전히 자발적인 거래였다.
그런데 국가가 그 돈을 다시 가져가 재분배한다면?
노직이 보기에, 그건 정의가 아니라 자유의 침해였다.
결론은 명확했다.
도덕적으로 정당한 국가는 오직 치안과 계약 집행만 맡는 '최소국가'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소국가란 오늘날로 치면 경찰과 법원만 있고, 복지·교육·의료는 모두 개인과 시장에 맡기는 국가 형태다.
이 책은 그해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아이러니한 건, 노직과 롤스가 하버드 철학과 동료였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존경하면서도, 정의에 대해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졌다.
노직은 자기를 유명하게 만든 그 주제로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출판사와 독자들이 후속작을 원했지만, 그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무정부·국가·유토피아의 아들』, 『무정부·국가·유토피아의 귀환』 같은 책을 쓰며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
대히트 앨범을 낸 뮤지션이 그 장르를 영원히 떠나는 것과 비슷한 결정이었다.
노직은 이후 인식론, 합리성, 삶의 의미로 관심을 옮겼다.
인식론이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따지는 철학 분야다.
그리고 1989년, 자기 책이 "심각하게 부적절했다"고 고백하는 책을 냈다.
자유지상주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작에는, 정작 저자 본인이 쓴 변호도 후속편도 없다는 이상한 공백이 남았다.
노직은 2002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지금도 그의 책을 인용한다.
하지만 그 저자 본인은 말년에 그 책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쳤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가 놓쳤다고 느낀 그 "뭔가"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노직은 끝내 완전한 답을 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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