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621년 3월 22일 새벽, 책 상자 하나가 감옥 문을 나섰어요.
그 안엔 종신수 휘호 흐로티위스가 접혀 있었습니다.
뢰베스테인 성은 네덜란드의 정치범 수용 요새예요.
그곳에서 종신형을 복역 중이던 38세 흐로티위스는 매주 성 안으로 드나들던 책 상자를 탈출로로 썼어요.
가로 약 1.5미터짜리 책 운반용 궤짝이었는데, 아내 마리아 판 레이어르스베르흐가 직접 짠 계획이에요.
여기서 잠깐 멈춰야 해요.
흐로티위스를 감옥에 가둔 것도 '책과 사상' 때문이었는데, 그를 감옥 밖으로 꺼낸 것도 '책 상자'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회사 서류 캐비닛에 몸을 숨겨 사무실을 빠져나간 셈이에요.
그리고 그 뒤가 더 중요해요.
이 망명자가 망명지에서 쓴 책이, 오늘날 우리 모두가 따르는 국제법의 뿌리가 됩니다.

그는 싸움의 가해자가 아니라 말리던 쪽이었어요.
그런데 종신형을 받은 것은 그였습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는 종교 전쟁에 휩싸여 있었어요.
칼뱅파와 아르미니우스파가 격돌했는데, 둘 다 같은 개신교예요.
"신이 인간의 구원을 처음부터 정해뒀는가, 아니면 인간의 선택에 달렸는가"를 두고 나라가 두 쪽으로 쪼개진 거예요.
지금 들으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시엔 이게 곧 정치 권력을 누가 쥐느냐의 문제였어요.
흐로티위스는 중간에서 "양쪽 다 대화하자"는 입장을 고수했어요.
하지만 1619년 강경 칼뱅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중재자는 적으로 분류됐습니다.
반역죄로 종신형이에요.
사내 두 파벌 사이를 조정하다 양쪽 모두에게 미운털이 박혀 쫓겨난 것과 똑같아요.
이 사람의 이력을 알면 더 황당해요.
라이덴 대학에 입학한 게 11세 때인데, 라이덴 대학은 당시 유럽 최고 명문이에요.
15세엔 외교 사절단원이 됐고, 28세엔 네덜란드 검찰총장까지 올랐어요.
평생 '전쟁과 평화의 법'을 쓰게 될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에요.
하지만 중재했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먼저 평화를 빼앗겼습니다.
결국 탈출 외엔 선택지가 없었어요.

국가가 그를 버렸을 때, 그는 모든 국가가 따라야 할 법을 쓰고 있었어요.
탈옥에 성공한 흐로티위스는 파리로 도망쳤어요.
무국적자 신분으로 이방인의 도시에서 버텼고, 1625년 라틴어 대작 '전쟁과 평화의 법(De Jure Belli ac Pacis)'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때는 30년 전쟁(1618~1648)이 한창이던 시절이에요.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이 전쟁 한 번에 목숨을 잃었어요.
전쟁, 기아, 전염병이 한꺼번에 덮친 시대예요.
흐로티위스의 주장은 그 시대엔 거의 황당하게 들렸을 거예요.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자연법이 있고, 전쟁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쉽게 말하면, "싸워도 되는데 이것만은 하지 마라"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국제인도법의 씨앗이에요.
국제인도법이란 전쟁 중에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이에요.
전쟁 포로를 고문하면 안 된다거나,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규칙들의 출발점이에요.
조국에서 쫓겨난 망명자가, 자기를 받아주지 않는 국가들의 행동 규칙을 직접 써버린 겁니다.
부당 해고당한 사람이 그 회사가 따라야 할 취업규칙을 써서 발표한 것과 같아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규칙이 실제로 받아들여졌어요.
오늘 부산항을 떠난 컨테이너선이 인도양을 가로지를 수 있는 법적 근거는, 한 네덜란드 망명자가 1609년에 쓴 짧은 책 한 권에 있어요.
그 책이 '자유해론(Mare Liberum)'이에요.
투옥되기 10년 전에 쓴 글인데, 핵심 주장은 딱 한 줄이에요.
"바다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그때까지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항로를 자기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어떤 나라가 "이 인터넷 회선은 우리 거니까 허락 없이 쓰지 마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흐로티위스는 그게 말이 안 된다고, 논리로 부수어버렸어요.
그 한 문장이 공해 자유 원칙이 됐어요.
공해란 어느 나라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바다예요.
우리가 "인터넷은 공공재"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듯, 그가 "바다는 공공재"라고 처음 못 박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마지막 반전이 있어요.
1645년, 흐로티위스는 스웨덴 외교관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던 중 발트해에서 배가 좌초해 세상을 떠났어요.
바다를 자유롭게 한 사람이, 바다 위에서 삶을 마쳤습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 그 한 줄 덕분에 부산항의 배가 인도양을 건너요.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택배 도착 알림을 기다립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