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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퍼트넘은 똑같이 생긴 행성 두 개를 머릿속에 그렸어요.
그 한 장의 그림이 '의미는 머릿속에 있다'는 2천 년의 상식을 무너뜨렸습니다.
1975년, 힐러리 퍼트넘은 「의미의 의미」라는 논문에서 이상한 행성을 하나 가정했어요.
지구와 모든 게 똑같은데, 딱 한 가지만 달라요.
강과 바다를 채우는 투명한 액체가 H₂O가 아니라, 화학적으로 전혀 다른 물질 XYZ라는 거예요.
그 행성 사람들도 그 액체를 '물'이라고 불러요.
지구 사람들과 머릿속 생각은 완전히 같아요.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가리키는 물질은 전혀 달라요.
그렇다면 지구의 '물'과 쌍둥이 행성의 '물'은 같은 의미일까요, 다른 의미일까요?
퍼트넘의 답은 '다르다'였어요.
카페에서 '커피'라고 주문했는데 그 카페만 커피콩이 아닌 다른 식물의 즙을 쓰고 있었다고 해봐요.
당신의 머릿속에 '커피'라는 단어는 분명히 있었지만, 실제로 가리킨 대상은 달랐던 거예요.
의미는 머릿속이 아니라 세계 속 대상에 붙어 있다는 결론이 바로 여기서 나왔어요.
이게 왜 충격이냐면, 소크라테스 이래로 철학자들은 단어의 의미란 그 단어를 쓰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믿었거든요.
퍼트넘은 사고실험 하나로 그 2천 년의 직관을 뒤집어버린 거예요.

퍼트넘이 만든 이 이론 하나로 한 세대의 인지과학자들이 박사논문을 썼어요.
1960년대, 퍼트넘은 기능주의라는 이론을 세상에 내놓았어요.
기능주의란 마음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는지'로 정의된다는 이론이에요.
자판기를 생각해보세요.
동전을 넣으면 음료가 나와요.
자판기 부품이 플라스틱이든 금속이든, 그 입력-처리-출력의 관계 패턴 자체가 자판기의 '기능'이에요.
퍼트넘은 인간의 마음도 이와 같다고 봤어요.
뇌가 탄소로 만들어졌든 실리콘으로 만들어졌든 상관없이, 자극을 받아 반응을 만들어내는 그 관계 패턴이 마음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 이론은 초기 인공지능(AI) 연구의 철학적 뼈대가 됐고, 퍼트넘을 20세기 심리철학의 거장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이름을 역사에 새겨준 바로 그 이론을, 얼마 뒤 자기 손으로 부수게 됩니다.

1988년, 퍼트넘은 자기 이름을 분석철학사에 새겨준 그 이론이 틀렸다고 쓴 책을 출판했어요.
책의 제목은 『표상과 실재』예요.
퍼트넘이 스스로 세운 기능주의를 정면으로 논박한 저서죠.
그리고 그 무기는 놀랍게도 그가 직접 만든 쌍둥이 지구 논증이었어요.
논리는 이래요.
의미가 머릿속이 아니라 세계 밖에 있다면, 머릿속 기능만으로 마음을 정의하는 기능주의는 처음부터 결정적인 무언가를 빠뜨린 거예요.
마음이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치명적 약점이 드러난 거죠.
20년 전 자기가 직접 발명한 제품을, 자기가 직접 리콜시키는 CEO의 기자회견 같은 장면이에요.
퍼트넘은 자기가 세운 건물을 자기가 만든 망치로 부쉈습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반증자가 된 거예요.
철학계는 적잖이 놀랐어요.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준 이론을 스스로 뒤집는 철학자는 흔치 않거든요.
그런데 퍼트넘은 그걸 했어요.

동료들은 퍼트넘이 자기 의견을 바꿀 때마다 농담거리로 삼았어요.
정작 본인은 그걸 자기 철학의 증거라고 답했습니다.
퍼트넘은 평생 다섯 차례 이상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완전히 뒤집었어요.
형이상학적 실재론에서 내재적 실재론으로, 다시 자연주의적 실재론으로.
동료 철학자들 사이에선 "퍼트넘이 이번엔 또 뭘 부정했어?"가 농담처럼 떠돌 정도였어요.
형이상학적 실재론이란 세계는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하고 단 하나의 참된 설명이 있다는 입장이에요.
내재적 실재론은 진리란 특정 개념 체계 안에서만 성립한다는 입장이고, 자연주의적 실재론은 과학적 탐구 방식을 철학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퍼트넘은 이 셋을 각각 옳다고 믿었다가, 틀렸다고 결론 내리고, 다음 입장으로 옮겨갔어요.
누군가 "당신은 왜 이렇게 입장을 자주 바꾸냐"고 물었을 때, 퍼트넘의 답은 이랬어요.
"철학자의 책임은 자기 일관성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것이에요."
자기 이론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를 반박하는 것이 더 철학적이라는 거였어요.
10년 전 SNS에 자신 있게 올린 글이 지금 보니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도 쉽지 않아요.
그걸 인용 트윗으로 직접 반박하는 건 더 어렵고요.
퍼트넘은 그 일을 책으로 출판하고,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설명하면서 살았습니다.
2016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퍼트넘은 마지막까지 자기 생각을 다듬고 수정했어요.
그는 완성된 체계를 남긴 철학자가 아니에요.
계속 틀리면서 계속 나아간 사람의 흔적을 남겼죠.
그 흔적이 어쩌면, 그가 진짜로 옳았다는 증거일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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