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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1969년 1월, 자기 제자들에게 경찰을 보냈습니다.
평생 권위를 의심하고 체제를 비판하라고 가르친 철학자가, 그 가르침을 가장 열심히 흡수한 제자들을 진압 병력에 넘긴 거예요.
그날 76명의 좌파 학생들이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를 점거했습니다.
사회연구소는 아도르노가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이끈 비판이론의 본거지였어요.
비판이론은 쉽게 말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의심하라"는 사상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평생 '제도를 거부하라'고 가르친 교수가 자기 강의실 점거 시위에 경찰을 부른 상황이에요.
학생들은 배신감에 떨었지만, 아도르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내 이론이 활동가들에게 전유되어 화염병으로 쓰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간극이 아도르노라는 인물의 핵심이에요.
누구보다 예리하게 세상을 비판했지만, 자기 비판이 물리적 행동으로 이어질 때는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것이 나약함인지 일관성인지는 지금도 논쟁 중입니다.

재즈를 가장 격렬하게 미워한 좌파 철학자가 바로 아도르노였습니다.
그는 원래 철학자이기 전에 음악가였어요.
빈에서 알반 베르크에게 작곡을 사사받았는데, 알반 베르크는 12음 기법의 창시자 쇤베르크의 제자이자 현대 음악사의 거장입니다.
12음 기법이란 도레미파솔라시 일곱 음을 계층 없이 모두 평등하게 쓰는 작곡법으로,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실험이었어요.
그런 배경을 가진 아도르노가 재즈를 들었을 때, 그의 결론은 단호했습니다.
"표준화된 환각이에요. 즉흥처럼 보이지만 전부 미리 짜인 공식의 반복입니다."
재즈는 흑인과 노동계급의 음악에서 출발했고, 억압에 맞선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 알려진 장르예요.
그런데 좌파 사상가가 오히려 그걸 '가짜 자유'라 비판했습니다.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K-pop을 "공장에서 찍어낸 감정"이라 무시하는 것과 비슷한 장면이에요.
아도르노에게는 자유처럼 보이는 것일수록 더 위험했어요.
통제가 눈에 보이면 저항할 수 있지만, 자유로 포장된 통제는 저항 자체를 무력화합니다.
그것이 그가 재즈를 싫어한 진짜 이유였어요.
나치를 피해 할리우드에 도착한 아도르노는 그곳에서 새로운 감옥을 발견했습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유대인 지식인을 탄압하자 아도르노는 미국으로 망명했어요.
1941년 캘리포니아 퍼시픽 팰리세이즈에 정착한 그는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계몽의 변증법』을 썼습니다.
이 책은 1944년에 출간됐어요.
『계몽의 변증법』은 한 가지 무서운 질문에서 출발해요.
"이성이 인류를 해방시킬 거라 믿었는데, 왜 나치 같은 야만이 나타났을까요?"
이성과 과학의 발전이 자유를 가져오는 대신 새로운 형태의 억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 라디오, 광고를 묶어 문화산업(Kulturindustrie)이라 명명했습니다.
문화산업은 오락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사람들을 순종적으로 만드는 시스템이라는 뜻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SNS 알고리즘이 취향을 학습해서 우리를 플랫폼에 계속 붙들어두는 것과 같습니다.
아도르노에게 노골적인 검열보다 더 무서운 건 할리우드의 미소 짓는 통제였어요.
강요 없이 스스로 원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저항할 이유 자체를 없애버리니까요.
그래서 그는 자유의 나라에서 더 깊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1969년 4월 22일, 아도르노는 강의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날 '변증법적 사유 입문' 강의 도중, 세 명의 여학생이 앞으로 걸어 나왔어요.
그들은 그의 앞에서 웃옷을 벗고 가슴을 드러낸 채 꽃잎과 시집을 뿌렸습니다.
독일 언론은 이 사건을 부젠아텐타트(Busenattentat, 가슴 습격)라 불렀어요.
아도르노는 말 한마디 없이 강의 노트를 챙겨 강의실을 나갔습니다.
이 장면이 잔인한 이유는 따로 있어요.
아도르노는 평생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이 말은 홀로코스트 같은 참혹한 비극 앞에서 예술과 철학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자기 회의예요.
그런데 그 회의를 가장 성실하게 흡수한 제자들이 시집을 무기로 그를 조롱했습니다.
아도르노의 언어로 아도르노를 공격한 거예요.
이 사건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었어요.
1월에 학생들을 경찰에 넘긴 것에 대한 복수였고, '혁명을 가르치면서 혁명을 막는 위선자'를 향한 고발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도르노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했어요.
가슴 습격으로부터 약 100일 뒤, 그는 스위스에서 휴양을 취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65세였어요.
자기 사상이 자기를 무너뜨린 사람.
그게 테오도어 아도르노입니다.
그의 비판이론이 오늘도 살아있다면, 알고리즘에 길든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진단할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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