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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자본론은, 한 공장주가 매달 보낸 송금으로 쓰여졌어요.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맨체스터에 있는 면방직 공장의 경영자였어요.
아버지와 함께 공장을 소유하고, 직접 운영하며 돈을 벌었죠.
그리고 그 수입 일부를, 1850년대부터 마르크스에게 정기 송금했어요.
1869년 엥겔스는 공장 지분을 정리했어요.
그 뒤에도 연 350파운드를 마르크스가 죽을 때까지 매년 보냈어요.
350파운드면 당시 영국 중산층 가정이 1년을 버티는 생활비였거든요.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마르크스가 평생 쓴 책의 핵심은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이윤을 챙긴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책을 쓴 책상 위에는, 자본가 친구가 보낸 수표가 올려져 있었어요.
마치 매일 회사를 욕하는 SNS 글을, 회사 월급으로 낸 월세방에서 올리는 것처럼요.
모순처럼 보이지만, 마르크스 본인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자본주의의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는, 자본가의 지원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거예요.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책은, 자본주의의 가장 큰 도서관에서 쓰여졌어요.
1850년부터 마르크스는 런던 대영박물관 열람실에 거의 매일 출근했어요.
오전 9시에 들어가 저녁 7시에 나오는 일과였어요.
그리고 그 자리를, 30년 동안 지켰어요.
대영박물관 열람실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이었어요.
영국 제국이 전 세계에서 끌어모은 자료가 가득 들어 있었죠.
공장법 보고서, 의회 통계, 노동자 실태 조사까지요.
마르크스는 그 자료들을 전부 읽었어요.
그렇게 17년을 채운 뒤, 1867년 자본론 1권을 완성했어요.
영국 제국의 도서관에서, 영국 제국의 자료만으로, 제국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한 책이었어요.
묘한 장면이에요.
영국 왕실이 세금으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그 왕실의 자본주의 체제를 해부하는 남자가 30년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까요.
매일 같은 카페 같은 창가 자리에서 노트북을 여는 것처럼, 그 열람실은 마르크스에게 30년 동안 자기 책상이었어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는 동안, 그의 자녀 셋이 가난으로 차례로 죽었어요.
마르크스 부부는 런던 소호의 단칸방에서 살았어요.
딘 스트리트 28번지, 방 두 칸에 온 가족이 살았어요.
소호는 당시 런던에서 빈민이 밀집한 가장 불결한 동네 중 하나였어요.
1850년, 한 살배기 귀도가 폐결핵 합병증으로 죽었어요.
1852년, 한 살짜리 프란치스카가 기관지염으로 죽었어요.
1855년, 여덟 살 에드가가 결핵성 장염으로 죽었어요.
세 아이가 5년 사이에 차례로 떠났어요.
약값도, 관을 짜는 비용도, 마르크스 혼자 낼 수 없었어요.
그 돈도 엥겔스에게 빌려야 했거든요.
인류 전체의 해방을 설계하던 사람이, 자기 아이 약 한 봉지를 살 수 없었어요.
아이가 아픈데 통장에 잔액이 없어 친구에게 급하게 연락해야 하는 그 밤을, 마르크스는 세 번이나 버텼어요.
7명의 자녀 중 성인이 된 건 딸 셋뿐이었어요.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쓴 책이 아니에요.
절반은 자본가 엥겔스가 끝냈거든요.
마르크스는 1867년 자본론 1권을 낸 뒤 16년을 더 살았어요.
하지만 2권과 3권은 끝내지 못했어요.
1883년, 런던에서 그대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책상 위에는 뒤죽박죽 원고가 쌓여 있었어요.
메모 위에 메모, 수정 위에 수정, 어디서 끊기는지조차 알 수 없는 노트 더미였어요.
엥겔스가 그 노트를 받아들었어요.
11년을 매달려 정리했고, 1885년에 2권, 1894년에 3권을 출간했어요.
친구의 미완성 원고를 정리하는 데, 자기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통째로 쏟은 거예요.
결국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한 그 책은, 자본가인 엥겔스의 손에서 세상에 나왔어요.
마르크스가 비판한 바로 그 시스템에서 돈을 번 사람이, 그 비판을 완성한 거예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자본가와 혁명가, 후원자와 수혜자, 편집자와 저자.
어쩌면 그냥, 40년을 함께한 친구라는 말이 가장 정확한 것 같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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