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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서른 살의 라몽 룰은 그날 밤도 유부녀에게 바칠 사랑시를 쓰고 있었어요.
9년 뒤 그는 신을 증명하는 기계를 만들어요.
1263년경, 룰은 마요르카 왕국의 궁정 시인이었어요.
마요르카는 오늘날 스페인 지중해 연안에 있는 섬으로, 당시에는 독립 왕국이었어요.
귀족 집안 출신에 아내와 자녀도 있었지만, 궁정에서 연애시를 쓰며 호색한으로 소문나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밤, 사랑시를 쓰던 그의 눈앞에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환영이 나타났어요.
한 번이 아니었어요.
같은 밤, 같은 환영이 네 번 반복됐어요.
룰은 이 환영을 신의 부름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시집을 불태우고, 재산을 정리하고, 가족과도 헤어졌어요.
서른 살의 궁정 시인은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됐어요.
하지만 단순히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만 하는 선택은 하지 않았어요.
룰의 목표는 더 컸어요.
이슬람과 유대교 지식인들을 무력이 아닌 논리로 개종시키겠다는 것이었어요.

룰의 책상 위에는 종이 원판 아홉 개가 있었어요.
그것을 돌리면 신의 모든 진리가 나온다고 그는 믿었어요.
1274년경, 룰은 마요르카의 란다 산에서 8일간 홀로 단식과 묵상을 이어갔어요.
그 끝에서 하나의 계시를 받았다고 기록해요.
신의 속성들을 기호로 바꾸고, 그 기호들을 조합하면 신학의 모든 진리를 자동으로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이것이 아르스 마그나(Ars Magna), 라틴어로 "위대한 기술"이에요.
신을 논리 연산으로 증명하는 시스템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신을 증명하는 앱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아요.
방법은 구체적이었어요.
A부터 K까지 아홉 글자를 각각 신의 속성에 대응시켜요.
B는 선함(Goodness), C는 위대함(Greatness), D는 영원(Eternity), E는 권능(Power) 같은 식으로요.
그리고 이 글자들이 새겨진 종이 원판 세 장을 한 축에 겹쳐 꽂아요.
각 원판을 따로 돌리면 "B-D-E" 같은 조합이 생겨요.
이 조합이 곧 하나의 신학 명제가 돼요.
이 원판을 볼벨(volvelle)이라고 해요.
항법사들이 별의 위치를 계산할 때 쓰던 회전식 도구예요.
룰은 그 원판을 항법이 아닌 신학에 갖다 댔어요.
당시 신학자들은 신의 진리를 외우고 믿는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하지만 룰은 믿음이 이성의 검증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아르스 마그나의 출발점이었어요.

여든이 넘은 룰은 칼 한 자루 없이 적지에 상륙했어요.
그의 무기는 종이 원판 한 묶음이었어요.
13세기 중반부터 유럽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 세계와 십자군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어요.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되찾으려는 시도였어요.
룰은 그 방법 대신 다른 길을 택했어요.
1293년, 1307년, 1314년. 세 차례에 걸쳐 북아프리카로 건너갔어요.
목적지는 오늘날 튀니지에 해당하는 튀니스와 알제리의 베자이아였어요.
당시 이 도시들은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였어요.
전쟁터에 무기 대신 스프레드시트를 들고 가는 것과 같았어요.
룰은 현지 무슬림 학자들 앞에 아르스 마그나 원판을 펼치고 논쟁을 벌였어요.
보편적인 논리로 진리에 함께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었어요.
결과는 기대와 달랐어요.
개종자를 거의 얻지 못했어요.
하지만 룰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마지막 세 번째 여행에서 룰은 베자이아의 군중에게 돌에 맞아 크게 부상을 입었어요.
배에 실려 귀환하다 숨을 거뒀다는 전승이 남아 있어요.
향년 80대 초반이었어요.
십자군이 칼로 해결하려 했던 일을, 룰은 평생 종이 원판으로 해결하려 했어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시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어졌어요.

오늘 당신이 검색창에 타이핑하는 순간, 700년 전 마요르카 노인의 종이 원판이 어딘가에서 한 칸 돌아가요.
1666년, 스무 살의 독일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첫 번째 저서를 출판했어요.
제목은 『결합술(De Arte Combinatoria)』, 직역하면 "조합의 기술에 대하여"예요.
그리고 그 책에서 라몽 룰을 직접 인용했어요.
라이프니츠의 핵심 아이디어는 룰의 것과 같은 자리에서 출발했어요.
모든 개념을 기호로 바꾸고, 그 기호들을 규칙에 따라 조합하면 어떤 진리든 계산으로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것이 보편기호학이에요.
생각을 수학처럼 계산하겠다는 발상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인간의 모든 논증을 프로그래밍 언어로 변환해서 컴퓨터에게 시키는 것과 같아요.
룰은 신학에만 적용했지만, 라이프니츠는 모든 인간 사유로 확장하려 했어요.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이런 말을 남겼어요.
"두 철학자 사이에 논쟁이 생기면, 말싸움 대신 펜을 꺼내들고 '계산해봅시다(Calculemus!)'라고 말하면 충분해요."
룰이 원판을 돌리던 바로 그 발상이 400년 뒤의 언어로 다시 등장한 거예요.
이 발상은 멈추지 않았어요.
19세기 수학자 조지 부울은 논리를 0과 1만으로 표현하는 대수 체계를 만들었어요.
오늘날 부울 대수라고 불리는 이 체계는 모든 디지털 기기의 작동 언어예요.
20세기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의 선구자인 앨런 튜링이 그 체계를 실제 기계로 구현했어요.
결국 스마트폰 안의 반도체 회로가 됐어요.
룰이 원판을 돌린 이유는 신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700년 뒤, 그 원판은 신이 아니라 고양이 사진과 쇼핑 목록을 처리하고 있어요.
라몽 룰이 이 결말을 알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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