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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하버드가 17살짜리에게 강의를 맡기겠다고 편지를 보냈을 때, 답장은 한 줄이었어요.
"우리 엄마가 일단 고등학교는 마치라셨어요."
1958년경, 솔 크립키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하버드 수학과로부터 강사 자리 제안을 받아요.
학계에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크립키는 어머니가 먼저 고등학교를 마치라고 하셨다는 이유로 그 제안을 사양했다고 해요.
명문대가 직접 검증한 천재가, 학위 대신 '엄마 말씀'을 내세운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고2 학생이 대기업에서 정직원 제안을 받았는데 부모님이 "졸업은 하고 가"라고 말린 셈이에요.
그런데 이 일화가 더 인상적인 건 따로 있어요.
하버드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열일곱 살짜리가 이미 어느 경지에 있었는지를 보여줘요.

학자는 보통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야 자신의 이름이 붙은 정리를 가져요.
크립키는 박사학위 없이 그 일을 18살에 끝냈어요.
1959년, 크립키는 양상논리의 완전성 정리를 권위 있는 학술지 《Journal of Symbolic Logic》에 발표해요.
양상논리는 "반드시 그렇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처럼 가능성과 필연성을 수학적으로 따지는 논리학 분야예요.
쉽게 말해, 세상이 지금과 달랐더라면 어떤 것들이 달라졌을지를 엄밀하게 분석하는 학문이에요.
크립키는 이 분야의 핵심 난제를 18살에 풀어냈고, 이후 프린스턴 대학교 종신교수가 됐어요.
박사학위는 평생 받지 않았어요.
운전면허도 따기 전에 자동차 산업 표준을 다시 쓴 학생이라고 생각하면 감이 올 거예요.

크립키는 사흘간 강연을 했고, 손에는 종이가 없었어요.
그 사흘이 책이 되었고, 이름에 대한 철학계의 모든 합의를 뒤집었어요.
1970년 1월, 프린스턴 대학교 강의실에서 크립키는 사흘에 걸쳐 강의를 펼쳤어요.
원고도 없었고, 메모지도 없었어요.
강의실 한편에 녹음기만 놓여 있었어요.
그 녹음이 문자로 옮겨져 책이 됐어요.
《이름과 필연성(Naming and Necessity)》이에요.
분석철학, 그러니까 언어와 논리를 도구 삼아 세계를 분석하는 20세기 철학의 흐름에서 후반부 표준 교과서가 된 책이에요.
이 강의가 정면으로 겨냥한 건 프레게-러셀의 기술구 이론이었어요.
20세기 초 철학자 고틀로프 프레게와 버트런드 러셀이 다듬어온 이 이론은, "이름은 사실 기술구의 줄임말"이라고 말해요.
기술구란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처럼, 어떤 인물을 설명하는 서술 묶음이에요.
러셀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부를 때 우리는 사실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의 스승이며 논리학을 창시한 그 사람"이라는 묶음을 부르는 거예요.
크립키는 이 생각이 틀렸다고 했어요.
그리고 노트 한 장 없이 사흘 동안 그 이유를 설명했어요.

만약 손흥민이 축구를 한 번도 차지 않았어도 그는 손흥민일까요.
크립키의 답은 단호해요.
그렇다.
크립키가 내놓은 핵심 개념이 바로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예요.
고정 지시어란,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더라도 항상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표현이에요.
비유하면, 어떤 평행 우주에 가더라도 바뀌지 않는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이에요.
여기서 크립키가 즐겨 쓰는 개념이 가능세계예요.
가능세계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을 수도 있었던 세상"이에요.
손흥민이 의사가 된 세계, 아리스토텔레스가 생선 장수가 된 세계, 이런 것들이 모두 가능세계예요.
러셀의 이론대로라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포기하고 생선 장수가 된 가능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은 그를 가리키지 못해요.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의 스승"이라는 기술구가 그에게 더 이상 맞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크립키는 그 세계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전히 같은 인물을 가리킨다고 말해요.
이름은 그 사람의 직업이나 업적에 묶인 게 아니에요.
이름은 그 사람 자체에 묶여 있어요.
크립키는 이 연결이 처음 이름이 붙는 그 순간에 생겨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연결은 이후 어떤 사실이 달라져도 끊어지지 않아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든, 어떤 가능세계에 있든, 그 사람을 향한 화살표예요.
우리가 매일 무심히 부르는 이름이, 사실은 가능세계를 가로지르는 가장 단단한 끈이었던 거예요.
17살의 크립키가 하버드 제안을 사양하던 그날, 그는 자신의 이름 '크립키'가 언젠가 이 논쟁의 한가운데 놓이게 될 거라는 걸 알았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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