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깊은 바다 한가운데,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섬을 한번 떠올려 볼까요. 그 섬에 갓난아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요. 가르쳐 줄 부모도, 펼쳐 볼 책도, 기도하러 갈 사원도 없습니다. 글자도 모르고, 누가 옳고 그름을 일러 준 적도 없어요. 이 아이가 혼자 자라난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나아가 신이 있는지까지 스스로 알아낼 수 있을까요? 황당한 상상 같지만, 약 900년 전 한 사상가가 바로 이 질문 하나로 책을 한 권 통째로 써냈어요. 그 사람이 이븐 투파일입니다.

이븐 투파일은 1105년 무렵에 태어나 1185년까지, 여든 해 가까이 살았던 사람이에요. 지금의 스페인 남부, 당시 이슬람 문명이 활짝 꽃피던 안달루스 지역에서 활동했어요. 그는 한 가지 일만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의사이자, 임금을 곁에서 모시는 신하였고, 세상의 이치를 따지는 철학자였어요. 요즘으로 치면 큰 병원 의사가 낮에는 환자를 보고 밤에는 철학책을 쓰는 셈이죠.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글이 '하이 이븐 야크잔'이에요. '깨어 있는 자의 아들, 살아 있는 하이'라는 뜻인데, 방금 말한 그 무인도 아이의 이름이 바로 하이랍니다.

이야기 속 하이는 아무도 없는 섬에서 홀로 자라요. 갓난아기인 그를 거두어 젖을 먹이고 품어 준 건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 암사슴이었어요. 늑대 소년 이야기와 비슷하게 들리죠? 하이는 그 사슴을 어미로 알고 자라다가, 어느 날 어미가 죽는 일을 겪어요. 조금 전까지 움직이던 것이 왜 갑자기 멈췄을까. 슬픔에 빠진 하이는 어미의 몸을 직접 열어 살펴보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들여다본 끝에, 몸은 그대로인데 '몸을 움직이게 하던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아요.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니라, 눈앞의 일을 보고 스스로 물음을 던진 거예요.

하이가 진리에 다가가는 방식은 우리가 어릴 때 세상을 배우던 방식과 똑같아요. 처음엔 우연히 불을 발견하고 따뜻함과 빛을 알게 돼요. 동물과 식물을 가만히 살피며 살아 있는 것들의 공통점을 찾고, 밤하늘의 별이 매일 규칙적으로 도는 걸 보며 '이 큰 질서를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해합니다. 중요한 건 한 단계가 다음 단계의 발판이 된다는 점이에요. 불을 알아야 따뜻함을 알고, 생명을 알아야 죽음을 묻고, 별의 질서를 봐야 그 너머를 상상하게 되죠. 마치 블록을 하나씩 쌓아 올리듯, 하이는 오직 관찰과 생각만으로 점점 더 큰 그림에 도달해요.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것을 있게 한 하나의 근원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스스로 닿습니다.

여기서 이븐 투파일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나와요. 하이는 경전도, 선생님도, 종교 모임도 없이 오직 이성과 자연 관찰만으로 가장 깊은 진리에 이르렀어요. 이야기 후반에는 옆 섬에서 종교를 배우며 자란 '아살'이라는 사람이 하이를 찾아와요. 한 사람은 책과 가르침을 통해, 다른 한 사람은 혼자만의 생각을 통해 진리에 닿았는데, 둘이 알아낸 핵심이 신기하게도 서로 맞아떨어졌어요. 출발한 길은 달랐지만 도착한 곳은 같았던 거죠. 스스로 깨우친 진리와 신앙이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는 것, 그게 이븐 투파일이 내놓은 답이었어요.

이 이야기는 안달루스의 작은 섬에만 머물지 않았어요. 세월이 흘러 1671년, 유럽에서 라틴어로 번역되며 '스스로 깨우친 철학자'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진리를 찾아낸 사람이라는 뜻이죠.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훗날 나온 '로빈슨 크루소' 같은 작품과 나란히 견주어지기도 해요. 사람은 누군가 떠먹여 주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으로 멀리까지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오래된 이야기 속에 담겨 있었거든요.

이븐 투파일은 '무인도에서 혼자 자란 아이가 스스로 진리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상상으로, 사람의 생각하는 힘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어요. 하이는 어미 사슴의 죽음 앞에서 던진 작은 물음에서 시작해, 관찰과 추론을 한 걸음씩 쌓아 마침내 신앙의 자리에까지 다다랐어요. 핵심은 이성과 신앙을 서로 맞세우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스스로 깨우친 진리와 믿음이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킬 수 있다는 것, 그게 900년 전 한 철학자가 작은 섬 이야기에 담아 우리에게 건넨 생각입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