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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책을 펼치면 거의 왕, 장군, 영웅 이야기예요. 누가 전쟁에서 이겼고, 누가 나라를 세웠는지가 줄줄이 나오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해요.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아낸 사람은 대부분 이름 없는 농부, 장사꾼, 어머니였잖아요. 밭을 갈고, 아이를 키우고, 세금을 내며 나라를 떠받친 건 그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었어요.
함석헌이라는 한국 사상가는 바로 이 점을 평생 붙잡았어요. 1901년부터 1989년까지 88년을 살면서, 그는 역사의 진짜 주인공은 왕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죠. 그리고 그 보통 사람을 '씨알'이라고 불렀어요.

'씨알'은 어려운 한자어가 아니라 순우리말이에요. '씨'는 씨앗, '알'은 알갱이를 뜻하죠. 그러니까 씨알은 곡식의 낟알, 작은 씨앗 한 알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이 말은 함석헌의 스승인 유영모 선생이 평범한 백성을 부를 때 쓴 표현이었어요.
왜 하필 씨앗일까요? 사과 씨 하나를 손에 올려놓고 보면 정말 보잘것없어요. 작고, 단단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죠. 그런데 그 작은 씨앗 안에는 나중에 자랄 커다란 사과나무가 통째로 들어 있어요. 가지도, 잎도, 해마다 맺힐 수백 개의 열매도 전부 그 한 알 속에 숨어 있는 거예요.
함석헌은 사람이 꼭 이 씨앗 같다고 봤어요. 겉보기엔 평범하고 힘없어 보여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는 세상을 바꿀 생명과 가능성이 통째로 담겨 있다는 거죠.

씨앗을 땅에 심으면 어떻게 되나요. 비를 맞고 햇볕을 받으며 스스로 싹을 틔워요. 누가 억지로 잡아당겨 키우는 게 아니에요. 씨앗 안에 이미 자랄 힘이 들어 있으니까요.
함석헌이 본 보통 사람도 똑같아요.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부속품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일어설 힘을 가진 존재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역사를 왕들의 싸움이 아니라, 씨알들이 고난을 견디며 천천히 자라는 이야기로 다시 썼어요. 그 생각을 담은 책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예요. 우리 역사를 패배와 슬픔의 기록이 아니라, 씨알이 거듭 짓밟혀도 다시 싹트는 이야기로 읽어낸 거죠.

그런데 씨알이 힘없이 당하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함석헌은 한국이 일제강점기와 독재를 거치는 동안, 잘못된 권력에 맞서야 한다고 믿었어요. 다만 그 방법이 특별했어요. 주먹이나 총이 아니라 '비폭력 저항'이었죠.
비폭력 저항은 인도의 간디가 보여준 방식과 닮았어요. 때리는 사람을 똑같이 때리는 대신, 옳지 않은 일에는 따르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티는 거예요. 마치 길에 난 잡초가 발에 밟혀도 뽑히지 않고 다시 고개를 드는 것처럼요. 함석헌은 1970년에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펴내, 글로써 사람들에게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용기를 불어넣었어요. 그는 종교의 벽도 넘어 퀘이커라는 기독교 모임에 속했고, 동양과 서양의 생각을 두루 품으며 사람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길을 찾았어요. 이런 활동으로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죠.

씨알 사상이 멋진 이유는, 누구나 자기를 다시 보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저 평범한 학생,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하지만 함석헌의 눈으로 보면, 그 평범함 속에 이미 세상을 조금씩 바꿀 씨앗이 들어 있는 거예요. 투표를 하고, 옳은 말을 하고, 약한 사람 편에 서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싹을 틔우는 일이니까요.

함석헌은 역사의 주인공을 왕과 영웅에서 보통 사람으로 옮겨 놓은 사상가예요. 그는 평범한 사람을 작은 씨앗에 빗대 '씨알'이라 부르며, 그 안에 세상을 바꿀 생명이 통째로 들어 있다고 봤어요. 그리고 잘못된 힘 앞에서는 폭력 대신, 따르지 않고 버티는 비폭력 저항으로 맞섰죠. 그러니 씨알 사상은 결국 이런 말이에요. 당신은 작아 보여도 씨앗이고, 씨앗 안에는 이미 나무 한 그루가 들어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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