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밤길을 걷다가 바닥에 떨어진 끈을 보고 "뱀이다!" 하며 펄쩍 뛴 적 있나요? 다가가 보면 그냥 노끈인데 말이죠. 인도 철학자들이 천 년 넘게 즐겨 든 예가 하나 더 있어요. 바닷가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조개껍데기를 보고 "어, 은이다!" 하며 주우러 달려가는 장면이에요. 막상 손에 쥐어 보면 그냥 껍데기죠.
여기서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그 순간 내 눈은 분명히 무언가를 봤어요. 마음속에는 '은'이라는 게 또렷이 떠올랐고요. 그런데 거기 은은 없었어요. 그럼 그 '은'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내 마음이 없는 것을 슬쩍 지어낸 걸까요?

이 사소해 보이는 착각이 철학자들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였어요. 생각해 보세요. 만약 마음이 없는 은을 진짜처럼 만들어 보여 줄 수 있다면, 지금 내가 보는 이 책상도, 이 손도 진짜라고 어떻게 믿죠? 착각 하나를 똑 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하면 '안다는 것' 전체가 흔들려요. 그래서 착각은 작아 보여도 아주 큰 문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천 년쯤 전, 인도의 여러 철학 학파는 "착각하는 그 순간, 마음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두고 오래 다퉜어요. 답이 학파마다 달랐어요. 어떤 쪽은 "마음이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진짜 은을 엉뚱하게 여기로 끌어다 붙인 것"이라 했고, 어떤 쪽은 "그 은은 진짜도 가짜도 아닌, 잠깐 떠올랐다 사라지는 묘한 것"이라 했죠. 거의 한 학파가 한 가지씩 답을 들고 나온 셈이에요.
바차스파티 미슈라는 그 다툼의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에요. 그는 9세기에서 10세기 무렵 인도에서 활동했는데, 가장 놀라운 점은 한 우물만 파지 않았다는 거예요. 논리를 따지는 학파, 요가를 다루는 학파, 베단타라 불리는 학파까지, 입장이 서로 다른 여러 학파의 어려운 경전에 두루 깊은 주석을 달았어요. 말하자면 '학파를 넘나드는 해설가'였죠. 후대 사람들은 원전이 어려우면 그가 단 해설을 길잡이 삼아 읽었어요.
그가 이 착각 문제를 풀며 또렷하게 정리한 답 하나가 바로 '아키아티'예요.

'아키아티'를 우리말로 풀면 '알아채지 못함'에 가까워요. 이름이 좀 뜻밖이죠? 착각이라면 '잘못 봤다'여야 할 것 같은데, 왜 '못 알아챘다'일까요.
이 설명은 이렇게 말해요. 조개껍데기를 봤을 때, 사실 내 마음에는 틀린 조각이 하나도 없었다고요. 그 순간 마음에는 두 조각이 들어와 있었어요. 하나는 눈앞의 '저기 반짝이는 무언가'예요. 이건 진짜로 거기 있으니 맞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은'이라는 기억이에요. 예전에 본 진짜 은이 머릿속에서 떠오른 거죠. 이것도 그 자체로는 틀리지 않았어요.
문제는 딱 하나예요. 이 두 조각이 서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그 순간 알아채지 못한 거예요. '저기 있는 것'과 '내가 떠올린 은'이 마치 한 덩어리인 양 슬며시 붙어 버린 거죠. 그러니까 마음이 가짜 은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진짜인 두 조각 사이의 '틈'을 놓친 거예요. 착각은 무언가를 더해서가 아니라, 빠뜨려서 생긴다는 뜻이에요.

앞에서 본 다른 답들은 어떻게든 "마음이 없는 은을 보여 줬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어요. 마음이 진짜처럼 가짜를 빚어낸다면, 우리가 보는 것 어느 하나도 마음 놓고 믿기 어려워지죠. 아키아티는 그 부담을 영리하게 피해요. 마음 안의 재료는 전부 진짜다, 다만 둘을 갈라보는 데 실패했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니까요.
비유하면 이래요. 전화로 친구 목소리를 듣는데 옆에 켜 둔 라디오 소리가 겹쳐서, 라디오에서 나온 말을 친구가 한 말로 들은 거예요. 두 소리 다 진짜였어요. 그저 어느 게 어느 것인지 그 순간 못 갈랐을 뿐이죠. 그래서 착각을 푸는 길도 분명해져요. 없애야 할 헛것을 찾는 게 아니라, 붙어 버린 두 조각을 "아, 이건 따로였구나" 하고 떼어 내면 끝이에요. 조개껍데기에 다가가 만져 보는 순간 착각이 스르르 풀리는 게 바로 그거예요.

전해지는 이야기 하나가 그를 잘 보여 줘요. 그가 베단타 주석을 쓰는 데 어찌나 빠져 있었는지, 곁을 지킨 아내에게 말 한마디 건넬 새 없이 평생 글만 썼대요. 그러다 책을 다 끝낸 뒤, 묵묵히 자기를 도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그 책에 아내 이름 '바마티'를 붙였다고 해요. 사실인지 전설인지는 가리기 어렵지만, 그가 얼마나 글에 파묻혀 산 사람인지 짐작하게 하죠. 그렇게 한 자 한 자 쌓은 해설들이 여러 학파를 잇는 다리가 됐어요.

조개껍데기를 은으로 착각하는 짧은 순간 하나가, 사실은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는 게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이었어요. 아키아티의 답은 뜻밖에 차분해요. 마음은 가짜를 지어내지 않았고, 다만 진짜인 두 조각이 서로 다르다는 걸 그 순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라는 거죠. 착각은 더해져서가 아니라 빠뜨려져서 생긴다, 바차스파티 미슈라가 여러 학파를 넘나들며 다듬은 이 한 문장만 기억해도, 다음에 헛것을 봤을 때 마음속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될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