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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누가 나를 부당하게 괴롭히면, 우리는 보통 둘 중 하나를 떠올려요. 똑같이 주먹을 쥐고 맞서거나, 무서워서 그냥 꾹 참거나요. 그런데 100년쯤 전 한국에, "그 둘 다 아니다, 세 번째 길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요. 때리지도 말고, 도망치지도 말고,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그건 틀렸어요"라고 끝까지 말하라는 거예요. 얼핏 이상하게 들리죠. 안 때리면 어떻게 싸운다는 걸까요? 이 묘한 길을 평생 걸어간 사람이 바로 함석헌이에요.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함석헌은 1901년에 태어나 1989년까지, 88년을 살았어요. 그가 산 시대는 한마디로 험했어요. 어릴 때는 나라가 일본에 통째로 빼앗긴 식민지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한국전쟁이 터졌고, 그다음엔 국민의 입을 막는 독재 정권이 이어졌죠. 이런 시대에 가장 안전한 삶은 힘센 편에 붙거나,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는 거예요. 그런데 함석헌은 반대로 갔어요. 일본에도, 그다음 들어선 독재 정권에도 "아니요"라고 말하다가 여러 번 감옥에 갇혔어요. 무기를 든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가 가진 건 글과 말뿐이었어요. 그를 참지 못하게 한 건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힘없는 보통 사람을 함부로 짓밟는 일이었어요.

함석헌의 생각을 딱 한 단어로 줄이면 '씨알'이에요. 씨알은 어려운 말이 아니라 그냥 씨앗이라는 뜻이에요. 이 말은 그의 스승이던 유영모에게서 물려받았어요. 함석헌은 이름도 안 알려진 평범한 보통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을 씨앗에 빗댔어요. 왜 하필 씨앗일까요? 씨앗은 작고 볼품없어요. 발에 밟히고 흙에 묻히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아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밟힌다고 죽지 않아요. 오히려 흙 속에서 싹을 틔우고 다시 자라요. 함석헌은 역사를 진짜로 움직이는 힘이 왕이나 영웅이 아니라, 이렇게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수많은 씨알들이라고 봤어요. 그러니 보통 사람은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면 안 된다고요. 너 자신이 바로 역사의 씨앗이라고요.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풀어야 해요. '비폭력'이라고 하면 그냥 참고 당하기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함석헌이 말한 비폭력은 정반대예요. 운동장에서 누가 내 친구를 괴롭히는 장면을 떠올려 봐요. 내가 같이 주먹을 쓰면, 나도 결국 괴롭히는 사람과 똑같아져요. 그렇다고 무서워서 못 본 척하면 친구가 다치죠. 비폭력은 그 사이의 세 번째 길이에요. 주먹은 쓰지 않지만, 친구 앞을 막아서서 "그만해, 이건 틀렸어"라고 또렷이 말하는 거예요. 도망치지 않으니까 '저항'이고, 때리지 않으니까 '비폭력'이에요. 그래서 비폭력 저항은 약하고 겁이 많아서 택하는 길이 아니에요. 오히려 맞을 걸 알면서도 자리를 안 뜨는, 더 큰 용기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길이에요.

때리는 게 빠르고 시원한데, 왜 굳이 안 때릴까요? 함석헌의 대답은 이래요. 폭력으로 상대를 이기면, 이긴 사람이 다시 새로운 폭력이 되기 쉬워요. 미워하던 상대를 그대로 닮아 버리는 거죠. 그러면 세상은 별로 안 바뀌어요. 위에 앉은 힘센 사람만 바뀔 뿐이에요. 진짜로 바꾸려면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고리 자체를 끊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누군가는 맞으면서도 되갚지 않고 견뎌야 해요. 함석헌은 그 견딤이 결국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믿었어요. 비슷한 시기에 인도의 간디도 같은 생각으로 총 대신 맨몸으로 영국에 맞섰죠. 느리고 손해 보는 것처럼 보여도, 미움을 미움으로 갚지 않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면 세상의 공기가 천천히 바뀐다는 거예요.

함석헌은 1970년에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만들었어요. 힘없는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는 자리였죠. 독재 정권은 이 잡지를 몇 번이나 강제로 막았지만, 그는 굽히지 않고 계속 글을 썼어요. 이런 삶 덕분에 그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가 남긴 가장 큰 것은 상이나 잡지가 아니에요. 힘으로 누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씨알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 그리고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맞설 수 있다는 본보기예요.

함석헌은 험한 시대를 살면서, 때리지도 도망치지도 않는 세 번째 길을 택한 사람이에요. 그 바탕에는 평범한 사람을 밟혀도 다시 자라는 씨앗으로 본 씨알 생각이 있었어요. 그가 말한 비폭력은 참고 당하는 게 아니라, 주먹 없이도 끝까지 틀렸다고 말하는 더 단단한 용기였고요. 다음에 부당한 일 앞에서 화부터 울컥 날 때, 함석헌이 던진 질문을 한번 떠올려 봐도 좋아요. 미워하는 상대를 닮지 않으면서,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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