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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를 떠올려 볼게요. 누구나 몇 번은 넘어져요.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이 쓰라리죠. 그때 우리는 보통 "넘어진 건 그냥 나쁜 일"이라고만 생각해요. 안 넘어지고 한 번에 잘 탔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요.
그런데 가만 보면 좀 이상해요. 넘어져 본 사람만 결국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거든요. 한 번도 안 넘어지고 배운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아픈 일이 그냥 손해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배움이 살짝 들어 있던 거예요.
함석헌이라는 분이 평생 붙잡고 씨름한 질문이 바로 이거였어요. "아프고 힘든 일에도 뜻이 있을까?" 오늘은 그 답을 같이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함석헌은 1901년에 태어나 1989년까지, 여든여덟 해를 산 우리나라 사람이에요. 일제강점기, 6.25 전쟁, 그리고 오랜 독재 시절을 다 겪었어요. 한마디로 우리 나라가 가장 힘들던 시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살아 낸 사람이에요.
그는 종교와 역사를 깊이 파고든 사람이었고, 글도 아주 많이 썼어요. 그런데 책상에만 앉아 있던 사람은 아니에요. 옳지 않은 권력 앞에서는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다가 여러 번 잡혀가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어요.
평생 그를 따라다닌 한 가지 생각이 있어요. 바로 '고난의 의미', 즉 힘든 일이 품고 있는 뜻이에요. 자기 인생도, 자기가 사랑한 나라도 고생의 연속이었으니, 그 고생이 헛된 것인지 아닌지가 그에게는 가장 절실한 물음이었던 거죠.

함석헌의 생각을 알려면 '씨알'이라는 말부터 알아야 해요. 씨알은 쉽게 말하면 씨앗이에요. 사과 속에 든 작은 씨, 땅에 심는 볍씨 한 톨 같은 거요.
씨앗은 작고 볼품없어 보여요. 흙 속에 묻히면 아무도 안 쳐다보죠. 그런데 그 작은 씨 하나가 자라서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어요. 세상을 먹이고 키우는 진짜 힘이 사실은 거기 들어 있는 거예요.
함석헌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이 씨알이라고 불렀어요. 이름난 임금이나 영웅이 아니라, 밭을 갈고 밥을 짓고 묵묵히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요. 역사를 진짜로 굴려 가는 건 몇몇 위인이 아니라 그 수많은 보통 사람이라고 본 거예요. 그리고 그 씨알이 살면서 가장 많이 겪는 게 바로 고난이었어요.

여기서 꼭 조심할 게 있어요. 함석헌은 "그러니까 아픈 게 좋은 거야, 그냥 참아"라고 말한 게 아니에요. 고통을 좋아하라거나 억지로 견디라는 말이 아니었어요.
그가 한 말은 이런 쪽이에요. 씨앗이 단단한 껍질을 깨고 흙을 뚫어야 비로소 싹이 트듯이, 사람도 힘든 일을 지나면서 속이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다는 거예요. 운동을 하면 다음 날 근육이 아프지만 그만큼 힘이 붙잖아요. 고난도 그렇게 사람을 한 뼘 자라게 하는 면이 있다고 본 거죠.
그래서 그는 고난을 그냥 피하고 빨리 잊어버릴 불행으로만 두지 않았어요. "이 아픔이 나에게,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걸까"를 물었어요. 같은 고생을 해도 그 뜻을 찾아낸 사람은 거기서 더 깊은 사람이 되어 걸어 나온다고 믿은 거예요. 반대로 뜻을 못 찾으면, 아픔은 그냥 아픔으로 끝나 버리고요.

함석헌은 이 생각을 한 사람한테만 쓰지 않고, 우리나라 전체 역사에 그대로 적용했어요. 우리 역사는 둘레 나라들한테 침략도 많이 받고 가난도 오래 겪은, 고생이 참 많은 역사잖아요.
보통은 그걸 부끄럽게 여기거나 "운 없는 역사"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함석헌은 그 고난마저 뜻이 있다고 보았어요. 가장 많이 아파 본 사람이 남의 아픔도 가장 잘 알아본다는 거예요. 친구 중에 크게 아파 본 적 있는 친구가, 다른 친구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알아채고 곁에 있어 주잖아요. 그래서 그는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을 부끄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깊이로 바꿔 읽으려 했어요. 같은 상처라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거죠.

이 이야기는 옛날 사람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아요. 시험을 망쳐 속상한 날, 친구와 크게 다툰 날, 우리도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럴 때 함석헌의 질문을 한번 빌려 볼 수 있어요. "이 일이 나에게 무얼 가르치려는 걸까?"
물론 모든 아픔에 곧장 멋진 답이 있는 건 아니에요. 함석헌도 그렇게 쉽게 말하지 않았어요. 다만 아픔을 만났을 때 그냥 운이 없다고 덮어 버리는 것과, 거기서 한 가지라도 배우려고 들여다보는 건 시간이 지나면 꽤 큰 차이를 만들어요. 넘어진 자리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듯이요.

고난을 견디라고 하면, 부당한 일을 그냥 꾹 참으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함석헌은 정반대였어요. 잘못된 권력에는 분명하게 "아니다"라고 맞섰어요.
다만 그 방법이 비폭력이었어요. 주먹이나 무기가 아니라 말과 글, 그리고 좀처럼 굽히지 않는 마음으로 싸운 거예요. 누군가 때린다고 나도 똑같이 때리면 결국 둘 다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고 봤거든요.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 옳음으로 버티고 끝내 이기는 길을 택한 거예요. 씨앗이 흙을 부수지 않고도 조용히 뚫고 올라오듯이요.

함석헌은 힘든 일을 그냥 나쁜 일로만 보지 않은 사람이에요. 넘어져 본 사람이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듯, 고난을 지나면서 사람도 역사도 더 깊어진다고 믿었어요.
그 생각의 한가운데에는 '씨알', 곧 작지만 세상을 키우는 보통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는 보통 사람들이 겪는 고난에서 뜻을 찾았고, 부당한 힘에는 똑같이 때리지 않는 방식으로 맞섰어요. 그래서 그가 말한 '고난의 의미'는 아픔을 그냥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이 아픔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묻는 말이라고 기억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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