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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교실에서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고 해봐요. 자리 문제로 싸우고, 청소 당번으로 싸우고, 급식 줄로 싸워요. 그런데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해요. "이 약 하나면 다 해결돼. 이름은 행복주의야. 이것만 믿으면 모든 게 좋아져." 솔깃하죠. 문제 하나하나 따지는 건 귀찮으니까요.
후스라는 중국 학자는 딱 이 장면을 걱정했어요. 지금으로부터 백 년쯤 전, 한 나라가 통째로 이런 만병통치약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는 좀 김새는 말을 꺼냈어요. "그 약부터 의심해 봅시다."

후스는 1891년 중국에서 태어났어요. 스무 살 무렵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처음엔 농사를 공부하는 농학과에 들어갔다가 철학으로 길을 바꿨어요. 거기서 존 듀이라는 선생님을 만난 게 컸어요. 듀이는 실용주의라는 생각을 가르쳤는데, 쉽게 말하면 "멋진 말이 아니라, 실제로 해보고 효과가 있는 게 진짜다"라는 태도예요. 머릿속 이론보다 직접 해본 결과를 믿자는 거죠.
후스는 1917년에 중국으로 돌아와요. 그리고 큰일을 하나 해요. 그때까지 중국에서 글이라고 하면 옛날 한문, 그러니까 일상 대화와는 완전히 다른 어려운 문어였어요.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 글은 전혀 다르게 써야 했던 거예요. 후스는 "말하는 대로 글을 쓰자"고 주장했어요. 이게 백화문 운동이에요. 덕분에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길이 열렸어요.

그러던 1919년, 후스가 스물여덟 살 때 짧은 글을 한 편 써요.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문제를 더 연구하고, 주의를 덜 말하자"쯤 돼요. 여기서 주의는 행복주의처럼 이름이 주의로 끝나는 거창한 사상 전체를 가리켜요.
당시 중국은 가난하고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멋진 사상들에 열광했어요. "이 주의만 따르면 나라가 단번에 좋아진다." 거리에도 잡지에도 온통 이런 말이 넘쳤어요. 후스는 그 한가운데에 찬물을 끼얹은 거예요.

후스의 걱정은 이랬어요. 주의는 너무 편리해서 오히려 위험하다는 거예요.
다시 행복주의를 떠올려 봐요. 듣기엔 좋은데, 막상 "그래서 급식 줄 문제는 어떻게 풀 건데?" 하고 물으면 답이 없어요. 그냥 "행복주의를 믿어!"만 반복하죠. 거창한 구호는 아무나 입에 올릴 수 있어요. 외치기만 하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정작 진짜 문제는 하나도 안 풀렸는데도요.
게다가 약 하나로 모든 병을 고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배가 아픈 사람과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같은 약을 줄 순 없잖아요. 그런데 주의는 자꾸 "나 하나면 다 된다"고 말해요. 후스는 그게 게으른 생각이고, 잘못하면 위험하다고 봤어요. 생각하기를 멈추게 만드니까요.

후스가 하자고 한 건 정반대였어요. 큰 약 이야기 대신, 눈앞의 작은 문제를 하나씩 붙잡고 진짜로 풀자는 거예요.
인력거 끄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살게 할까. 여자아이도 학교에 다니게 하려면 뭘 바꿔야 할까. 이런 구체적인 질문 하나하나를 조사하고, 방법을 시험해 보고, 안 되면 고치는 거죠. 듀이에게 배운 그 태도 그대로예요. 실제로 해보고 효과로 증명하는 것.
비유하자면, "건강주의를 믿어!"라고 외치는 대신 오늘 물 한 잔 더 마시고 한 정거장 걸어 보는 거예요. 작아 보여도 이게 진짜로 몸을 바꾸죠. 후스에게 나라를 고치는 일도 똑같았어요.

이 글에 곧바로 반박한 사람이 있었어요. 리다자오라는 학자예요. 그는 이렇게 맞섰어요. "문제를 하나씩 푸는 것도 좋지만, 그 문제들이 사실 뿌리에서 다 연결돼 있다면? 그렇다면 뿌리째 바꾸는 큰 그림, 그러니까 주의도 필요하지 않나요?"
리다자오는 나중에 중국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이끈 사람이에요. 그러니 이 논쟁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라, 중국이 앞으로 어느 길로 갈지를 두고 벌어진 갈림길이었던 셈이에요. 후스는 작은 문제부터 차근차근, 리다자오는 근본을 바꾸는 큰 사상으로. 두 사람 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어요.

후스의 문제냐 주의냐 논쟁은 결국 이 한 가지를 묻습니다. 거창한 구호 하나에 기댈 것인가, 눈앞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 갈 것인가. 후스는 아무나 외칠 수 있는 주의보다, 직접 해보고 효과로 증명하는 문제 풀이를 믿었어요. 그게 미국에서 배운 실용주의이고, 말하는 대로 쓰자던 백화문 운동과도 같은 마음이었죠.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려워요. 다만 다음에 누군가 "이것 하나면 다 해결된다"고 말할 때, 후스처럼 한 번쯤 "그래서 이 문제는 어떻게 푸는데?"라고 되물어 볼 수는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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