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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주일에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다고 해볼게요. 그런데 멋진 건물도 없고, 앞에서 설교하는 목사님도 없어요. 그냥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헤어져요. "이게 무슨 예배야?" 싶을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 이렇게 믿은 사람이 있었어요. 함석헌이라는 분이에요. 1901년에 태어나 1989년에 세상을 떠난, 한국 현대의 종교 사상가이자 사회 운동가예요. 그는 평생 "믿음에 꼭 건물과 목사가 있어야 하나?" 하고 물었어요. 이 질문을 따라가면 그의 생각 전체가 보여요.

먼저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멀리 사는 할머니가 편지를 보냈어요. 그 편지를 내가 직접 뜯어 읽을 수도 있고, 옆집 아저씨한테 "대신 읽고 무슨 뜻인지 알려주세요" 할 수도 있어요. 무교회주의는 '편지를 내가 직접 읽겠다'는 쪽이에요.
함석헌은 스무 살 무렵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우치무라 간조라는 사람에게 이 생각을 배웠어요. 핵심은 단순해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교회라는 큰 조직이나 목사가 꼭 끼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화려한 건물을 짓고 조직을 키우는 대신, 친구 몇 명이 모여 성경을 직접 읽고 함께 생각하면 그게 믿음이라는 거죠. 가운데 있는 다리를 치우고 곧장 만나자는 태도예요.

나이가 들어 함석헌은 퀘이커라는 또 다른 모임을 만나요. 영어 이름이라 어렵게 들리지만, 하는 일은 의외로 소박해요.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아무도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요. 마음속에서 어떤 울림이 떠오르면 그때 한 사람이 천천히 입을 열어요.
퀘이커도 정해진 목사가 없어요. 누구나 자기 안에 빛 한 조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 빛이 말을 걸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무교회주의와 닮았죠? 둘 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덜어내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함석헌에게 무교회주의에서 퀘이커로 간 길은 갑작스러운 변신이 아니라,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한 줄기였어요.

함석헌 하면 빠지지 않는 말이 '씨알'이에요. 씨알은 곡식의 씨, 그러니까 작은 낟알을 뜻해요.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음 봄에 자라날 나무 한 그루가 통째로 들어 있어요.
함석헌은 평범한 사람들,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을 바로 이 씨알이라고 불렀어요. 높은 자리에 앉은 몇 사람이 아니라, 들에서 일하고 집에서 밥을 짓는 수많은 보통 사람이 역사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라는 거예요. 1970년에 그는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펴내며 이 생각을 널리 알렸어요. 가장 작아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큰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거죠.

그럼 그 작은 씨알들은 불의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함석헌의 답은 '비폭력'이었어요. 인도의 간디처럼, 주먹이나 무기로 맞서지 않고 버티고 말하면서 잘못을 바로잡으려 한 거예요.
이게 그의 믿음과 딱 이어져요. 사람마다 안에 빛 한 조각, 씨알 하나가 들어 있다면, 그 사람을 힘으로 짓밟는 건 그 빛을 짓밟는 일이 되니까요. 그래서 그는 일제강점기에도, 광복 뒤 독재 시절에도 감옥을 드나들면서 글과 말로 맞섰어요. 화를 내며 부수는 대신, 끈질기게 옳은 말을 이어가는 쪽을 택한 거예요.

함석헌의 생각은 사실 한 가지 마음에서 나왔어요. 사람과 진리 사이에 끼어드는 것들을 덜어내고, 가장 작은 사람을 가장 귀하게 보자는 마음이에요. 무교회주의와 퀘이커는 건물과 목사를 비우고 곧장 만나려 한 믿음의 모양이었고, 씨알은 그 마음으로 본 보통 사람의 이름이었어요. 비폭력은 그 사람들을 끝까지 짓밟지 않으려는 방법이었고요. 다음에 멋진 건물이나 높은 자리가 대단해 보일 때, 함석헌이라면 손바닥 위의 작은 씨알 하나를 먼저 들여다봤을 거라고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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