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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누군가 "착하게 사는 게 뭐예요?", "돈은 어떻게 벌고 써야 해요?", "사랑은 또 뭐죠?" 하고 물으면, 보통은 책 여러 권을 뒤져야 해요. 그런데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그것도 아주 짧은 시 모음으로 한 권에 정리해 둔 사람이 있었어요. 인도 남쪽 타밀 지역에 살았던 티루발루바르예요. 그가 남긴 책은 칸이 셋으로 나뉜 서랍장 같아요. 첫째 칸엔 '착하게 사는 법', 둘째 칸엔 '세상 살아가는 법', 셋째 칸엔 '사랑하는 법'이 차곡차곡 들어 있죠. 궁금한 건, 왜 하필 이 세 칸이었을까 하는 거예요.

신기한 건, 이 유명한 책을 쓴 티루발루바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거의 안 알려져 있다는 거예요.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가족이 누구였는지 확실한 기록이 없어요. '티루발루바르'라는 이름조차 '존경받는 발루바르'라는 높임말에 가까워요. 책이 쓰인 시기도 학자마다 의견이 갈리는데, 대략 2천 년쯤 전으로 봐요. 사람은 안갯속인데 그가 남긴 글만 또렷이 남은 거예요.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모르는 오래된 속담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살아남는 것과 비슷해요.

그 책의 이름은 '티루쿠랄'이에요. '쿠랄'은 타밀어로 아주 짧은 시, 그러니까 딱 두 줄짜리 한 토막을 뜻해요. 한 편이 일곱 단어로 되어 있어서, 우리가 외우는 짧은 속담이나 한 줄짜리 글귀랑 비슷해요. 이런 짧은 시가 천삼백서른 편, 열 편씩 묶인 장이 백서른세 개 들어 있어요. 길게 풀어 설명하는 대신, 콕 찌르는 한 마디를 천 번 넘게 던지는 책인 셈이에요. 인도 남쪽 끝 칸야쿠마리에는 이 책을 기려 장의 개수인 백서른셋에 맞춰 약 41미터 높이로 세운 티루발루바르 석상도 있어요. 우리나라 아파트로 치면 열다섯 층쯤 되는 높이예요.

서랍장 첫째 칸은 '덕'이에요. 타밀어로 '아람'이라고 해요. 남을 해치지 않기, 거짓말하지 않기, 도움받으면 고마워하기, 찾아온 손님에게 친절하기 같은 사람 노릇의 기본을 담았어요. 짧은 시 삼백여든 편이 여기 들어 있죠. 어른들이 "착하게 살아라" 한마디로 끝내는 그 말을, 티루발루바르는 상황마다 잘게 쪼개서 하나하나 보여 줘요. 예를 들어 작은 도움이라도 받았을 때 잊지 않고 갚는 마음을, 세상 무엇보다 크다고 말하는 식이에요.

둘째 칸은 '부'예요. 타밀어로 '포룰'이라고 하는데, 돈만 뜻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실력 전체를 가리켜요. 일하고 돈 벌고, 사람을 이끌고, 옳게 다스리고, 좋은 친구를 사귀는 법까지 들어 있어요. 재미있는 건 세 칸 중에 이 칸이 제일 크다는 거예요. 짧은 시 칠백 편, 그러니까 책의 절반이 넘어요. 마음만 착해선 세상이 굴러가지 않으니, 현실을 똑똑하게 살아가는 법에 가장 넓은 자리를 내준 거죠. 착함과 현실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덕 위에 실력을 쌓으라는 뜻이에요.

셋째 칸은 '사랑'이에요. 타밀어로 '인밤'이라고 해요. 두 사람이 서로 끌리고, 보고 싶어 애태우고, 함께 있어 기뻐하는 마음을 담은 이백쉰 편의 시예요. 딱딱한 교훈만 늘어놓을 것 같던 책이, 마지막에는 마치 연애편지 같은 장면으로 끝나는 거예요. 떨어져 있는 동안 상대가 사무치게 그립다는 마음을, 옛날 시인이 지금 우리와 똑같이 적어 놨어요.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사랑을 빼면 어딘가 허전하다는 걸, 이 작가도 잘 알았던 모양이에요.

세 칸의 순서엔 분명한 생각이 담겨 있어요. 먼저 사람이 바르게 서고(덕), 그 위에서 세상을 똑똑하게 살아가고(부), 그렇게 다져진 삶에서 사랑의 기쁨을 누리라는(사랑) 거예요. 집을 지을 때 바닥부터 단단히 다지는 것과 같죠. 한 가지 더 눈여겨볼 점이 있어요. 비슷한 시대 인도의 다른 가르침들은 여기에 '세상을 벗어나는 깨달음'을 네 번째로 더하곤 했는데, 티루발루바르는 그걸 넣지 않았어요. 멀리 있는 해탈 대신, 누구나 매일 부딪치는 덕과 부와 사랑, 이 세 가지 안에서 좋은 삶의 답을 찾으려 한 거예요.

티루발루바르는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생의 큰 질문을 덕과 부와 사랑이라는 세 칸 서랍에 짧은 시 천삼백여 편으로 정리해 남겼어요. 바르게 서는 법이 먼저, 세상 살아가는 실력이 그다음, 함께하는 사랑이 그 위에 놓이죠. 멀고 어려운 깨달음 대신 오늘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것들로 좋은 삶을 그렸다는 점이, 2천 년 전 이 책을 지금도 가깝게 느끼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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