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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도의 어떤 절에 들어가면, 가운데에 신상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둘이 나란히 서 있는 걸 보게 돼요. 한 명은 피리를 든 파란 피부의 크리슈나, 그 옆에는 그를 깊이 사랑하는 소녀 라다예요. 크리슈나는 인도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신으로 모셔 온 인물이에요. 그런데 그 옆에 연인을 함께 세워 두고, 두 사람을 한 쌍으로 절하는 모습은 처음 보면 좀 신기해요. 신을 모시는 건 알겠는데, 신의 여자친구까지 함께 모신다니요.
이걸 '라다 숭배'라고 불러요. 그리고 이 흐름을 앞장서서 만든 사람으로 자주 이름이 나오는 인물이 바로 님바르카예요.

님바르카는 인도의 힌두 철학자예요. 정확히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지금도 학자마다 의견이 갈려요. 대체로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800년에서 1000년쯤 전 사람으로 봐요. 크리슈나 이야기의 무대가 된 인도 북부 브린다반 근처에서 활동했다고 전해져요.
옛날 인도에는 '신과 나는 어떤 사이일까'를 깊이 따지는 학문 전통이 있었어요. 이걸 베단타라고 불러요. 신과 사람과 세상이 서로 같은 건지 다른 건지를 두고 학자들이 몇백 년 동안 논쟁했죠. 님바르카도 그 논쟁에 뛰어든 한 사람이었어요.

그 논쟁에서 님바르카가 내놓은 답은 좀 독특했어요. 한쪽 학자들은 '신과 사람은 결국 똑같은 하나'라고 했고, 다른 쪽은 '신과 사람은 완전히 다른 둘'이라고 했어요. 님바르카는 둘 다 반쪽짜리라고 봤어요. 그의 답은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다'였어요.
말이 좀 어렵죠? 바다와 파도를 떠올려 보세요. 파도는 분명히 바다와 달라요. 하나하나 모양도 다르고 따로 일렁이니까요. 그런데 파도를 손으로 떠 보면 그냥 바닷물이에요. 바다와 다른 물질이 아니에요. 파도는 바다와 다르면서도, 바다를 떠나서는 한순간도 있을 수 없어요. 님바르카는 사람과 신의 사이가 딱 이렇다고 봤어요. 우리는 신과 다른 존재처럼 느끼지만, 사실 신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한 몸이라는 거예요. 이 생각에는 '다름과 같음을 함께 본다'는 뜻의 어려운 이름이 붙어 있는데, 핵심은 방금 본 파도 이야기 그대로예요.

이제 라다 이야기로 돌아와요. 님바르카에게는 이 '다르면서도 하나'인 관계를 보여 줄 가장 좋은 그림이 필요했어요. 그가 고른 건 바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었어요.
사랑하는 사이를 생각해 보세요. 두 사람은 분명 서로 다른 사람이에요. 그런데 마음으로는 떨어질 수 없는 하나처럼 붙어 있죠. 둘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 님바르카가 말한 신과 사람의 관계랑 똑같아요. 그래서 그는 크리슈나만 외따로 모시지 않고, 크리슈나와 그를 사랑하는 라다를 늘 한 쌍으로 모셨어요. 라다는 그저 크리슈나의 연인이 아니라, 사람이 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다 바쳐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가 된 거예요. 신을 향한 사랑은 이래야 한다는 걸, 라다라는 한 사람으로 그려 보인 셈이죠.

이게 왜 중요할까요? 님바르카 이전에도 크리슈나를 모시는 사람은 많았지만, 라다를 신처럼 나란히 모시는 일은 흔치 않았어요. 님바르카가 두 사람을 한 쌍으로 세우면서, 라다를 받드는 신앙이 하나의 큰 전통으로 자라났어요. 오늘날 인도 곳곳의 절에서 크리슈나 옆에 라다가 함께 서 있는 풍경은, 따지고 보면 이 흐름과 이어져 있어요. 한 철학자가 '신과 나는 다르면서도 하나'라고 생각한 데서, 신상 옆에 소녀가 함께 서는 풍경이 나온 거예요.

님바르카는 800년에서 1000년쯤 전 인도의 철학자로, 신과 사람은 파도와 바다처럼 다르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고 봤어요. 그는 이 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그림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을 골랐고, 그래서 크리슈나와 라다를 늘 한 쌍으로 모셨어요. 절에서 신 옆에 소녀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다시 본다면, 그건 '다르면서도 하나'라는 한 생각이 만들어 낸 풍경이라고 기억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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