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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려운 문제를 풀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요? 시끄러운 곳을 떠나 조용한 방에 혼자 앉으면 엉킨 생각이 스르르 풀릴 때가 있죠.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 지금의 스페인 땅에 살던 한 철학자는 바로 그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높은 곳까지 데려간다고 믿었어요.
이름은 이븐 바자예요. 서양에서는 아벰파케라고도 불렀죠. 지금의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1085년 무렵 태어나, 쉰 살을 조금 넘긴 1138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마지막은 모로코의 페스라는 도시였는데, 누군가에게 독살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그는 음악에도 밝고 천문학도 공부했으며, 한동안은 지방을 다스리는 신하로 일하기도 한 바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도 평생 그를 놓아주지 않은 질문은 딱 하나였죠.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가장 참된 앎에 닿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이미 아주 유명한 대답이 있었어요. 이븐 바자보다 한 세대 앞서 살았던 가잘리라는 큰 학자의 대답이죠. 가잘리는 한때 바그다드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선생이었는데, 어느 날 책으로 쌓은 지식만으로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그 자리를 모두 내려놨어요. 그리고 신비주의, 곧 수피의 길로 들어섰죠.
가잘리의 생각은 이런 거였어요. 꿀이 달다는 걸 진짜로 아는 방법은 꿀의 성분을 줄줄 외우는 게 아니라, 혀에 한 방울 올려 직접 맛보는 거예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맛본 사람을 따라갈 수는 없죠. 마찬가지로 가장 높은 진리, 곧 신은 머리로 따져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직접 '맛볼' 때에만 알 수 있다고 본 거예요. 이성과 논리는 거기까지밖에 데려다주지 못하고, 그 너머는 오직 황홀한 체험으로만 건넌다는 거죠.
이븐 바자는 바로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했어요. 정말 그 너머는 느낌으로만 건널 수 있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이븐 바자도 사람이 가장 높은 곳에 닿을 수 있다는 건 똑같이 믿었어요. 다만 거기에 오르는 사다리가 다르다고 봤죠. 가잘리가 '말로 다 못 할 특별한 느낌'을 사다리로 내밀었다면, 이븐 바자는 '차근차근 생각하는 힘', 곧 이성을 사다리로 내밀었어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어떤 사람이 산 정상에 다녀와서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황홀한 풍경이었어'라고만 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같은 곳에 갈 길이 없어요. 부럽기만 할 뿐이죠. 하지만 어느 바위를 밟고 어느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꺾었는지 또박또박 일러 주면, 누구든 그 길을 그대로 밟아 같은 정상에 설 수 있어요.
이븐 바자에게 이성이란 바로 그 또박또박한 길이었어요. 누구나 한 걸음씩 생각을 쌓아 올리면 가장 높은 앎에 닿을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황홀한 체험에만 기대는 신비주의를 미덥지 않게 봤어요. 그건 길을 일러 주지 않은 채 '나는 정상을 봤다'고 우기는 일에 가까웠으니까요. 본 사람만 알고 끝나는 앎은, 그에게는 충분한 앎이 아니었던 거예요.

여기서 맨 처음의 '혼자 있는 시간'이 다시 나와요. 이븐 바자가 쓴 가장 유명한 책의 제목은 '혼자인 사람을 위한 다스림'이라는 뜻이에요. 다스림이라고 하면 보통 나라를 다스리는 걸 떠올리지만, 그가 말한 건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법이었죠.
그는 세상을 둘러보며 이렇게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사회는 어딘가 어긋나 있어서, 바르게 생각하려는 사람을 오히려 방해한다고요. 그는 그런 사회 속에서 홀로 곧게 자라는 사람을,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 들판에 저절로 돋아난 건강한 풀 한 포기에 빗댔어요. 둘레가 다 시들고 메말라도 혼자 푸르게 선 풀이요.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븐 바자의 답은 분명했어요. 어긋난 무리에 억지로 섞여 물들기보다, 한 발 물러나 조용히 자기 생각을 끝까지 갈고닦으라는 거예요. 그 고독한 갈고닦음의 끝에서 사람은 비로소 완성된다고 봤죠. 언뜻 보면 신비주의자가 동굴에 들어가 황홀경을 기다리는 모습과 비슷해 보여요. 하지만 속은 정반대였어요. 한쪽은 가만히 느낌이 찾아오기를 기다렸고, 이븐 바자는 끝까지 스스로 생각했으니까요. 같은 고독이라도 안에서 하는 일이 전혀 달랐던 거죠.

이븐 바자가 특별히 기억될 이유가 있어요. 그는 스페인 남부, 곧 안달루시아 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옛 그리스 철학자의 '따지고 증명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되살린 첫 사람이었거든요. 그전까지 그 땅에서 흐릿하던 이 방식을, 그가 또렷하게 열어젖힌 셈이에요.
그가 낸 이 길은 곧바로 더 큰 사람들에게 이어졌어요. 사람 없는 섬에서 홀로 자란 아이가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스스로 생각만으로 세상의 이치와 진리에 닿는 이야기를 쓴 이븐 투파일, 그리고 훗날 멀리 유럽의 대학들까지 뒤흔든 이븐 루시드가 그 뒤를 이었죠. 우리가 아는 넓은 강도 처음엔 누군가 땅에 낸 작은 물길 하나에서 시작하잖아요. 이븐 바자는 바로 그 첫 물길을 낸 사람이었어요.

이븐 바자는 약 900년 전 스페인에서, 가장 참된 앎에 닿는 길을 두고 가잘리와 다른 답을 내놓은 철학자예요. 가잘리가 머리 너머의 황홀한 체험을 그 길로 보았다면, 이븐 바자는 누구나 한 걸음씩 또박또박 밟을 수 있는 이성을 길로 보았죠. 그래서 그는 신비주의를 미덥지 않게 여겼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홀로 생각을 끝까지 갈고닦는 사람의 완성을 이야기했어요. 혼자라는 말이 외로움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공부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낸 작은 물길 하나가 훗날 안달루시아 철학이라는 큰 강으로 이어졌다는 것. 이 두 가지만 마음에 담아도 이븐 바자를 충분히 만난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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