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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부엌 냉장고에 "오늘도 천천히" 같은 쪽지 한 장 붙여 본 적 있나요. 길게 쓰지 않아도, 짧은 한 줄이 하루를 잡아 줄 때가 있죠. 아주 먼 옛날 인도 남쪽에서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말을 이렇게 짧게 적어 둔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은 티루발루바르. 그는 인생의 지혜를 딱 두 줄짜리 시로 적었어요. 그것도 한두 편이 아니라 무려 1330편을요. 두 줄에 무슨 인생이 담기느냐 싶죠. 그런데 바로 그 짧음이 이 사람의 비밀이에요.

티루발루바르는 인도 남쪽, 지금의 타밀나두 지역에서 살았던 시인이에요. 타밀어라는, 지금도 7천만 명이 넘게 쓰는 아주 오래된 언어로 글을 썼죠. 그가 정확히 언제 사람인지는 사실 아무도 확실히 몰라요. 대략 2천 년쯤 전으로 짐작할 뿐, 학자들끼리도 몇백 년씩 의견이 갈려요. 그의 삶을 적은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우리가 그를 아는 건 거의 전부 그가 남긴 책 한 권을 통해서예요. 그 책 이름이 티루쿠랄이에요. 사람은 흐릿한데 책은 또렷하게 남은, 조금 신기한 경우죠.

'쿠랄'은 타밀어로 짧은 시 한 편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이 시는 규칙이 꽤 엄격해요. 딱 두 줄인데, 앞줄에 단어 네 마디, 뒷줄에 세 마디. 합쳐서 일곱 마디가 전부예요. 요즘 메시지 글자 수 제한처럼, 정해진 칸 안에 하고 싶은 말을 욱여넣어야 했죠.
답답해 보이지만, 거기에 이유가 있어요. 짧으면 외우기 쉽거든요. 옛날에는 책이 귀하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도 적어서, 좋은 말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어요. 우리 속담이 짧고 운율이 있어서 한 번 들으면 착 붙는 것과 똑같아요. 티루발루바르는 인생에 꼭 필요한 말을, 누구나 한 번 듣고 기억할 수 있는 크기로 깎아 낸 거예요.

티루쿠랄은 1330편의 시를 큰 주제 셋으로 묶었어요. 첫째는 덕, 곧 바르게 사는 법이에요. 정직하기, 친절 베풀기, 욕심 다스리기 같은 이야기죠. 둘째는 부, 곧 세상을 굴려 가는 법이에요. 돈을 어떻게 벌고 쓸지,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지, 친구를 어떻게 사귈지 같은 현실적인 내용이에요. 셋째는 사랑이에요. 두 사람이 만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다뤄요.
재밌는 건 이 순서예요. 먼저 바르게 살고, 그 위에서 먹고살 방법을 찾고, 그 안에서 사랑하라는 거죠. 사람 사는 일을 욕심내지 않고 딱 세 칸으로 정리한 셈이에요.

예를 들어 그는 이렇게 말해요. 남이 나에게 잘못했더라도, 그 사람에게 도리어 친절을 베푸는 것이 가장 좋은 갚음이라고요. 화를 되돌려주는 대신 잘해 줘서 부끄럽게 만들라는 거죠. 또 배움에 대해서는, 배움이야말로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재산이고 나머지는 진짜 재산이 아니라고 했어요.
신기하지 않나요. 2천 년 전 타밀어로 쓴 말인데, 오늘 우리 마음에도 그대로 박혀요. 잘 벼린 말은 시간과 나라를 가뿐히 넘는다는 걸 보여 주죠. 그래서 티루쿠랄은 지금까지 영어를 비롯해 수십 개 언어로 옮겨졌어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는 흔히 말이 길어야 깊어 보인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정말 잘 이해한 사람일수록 말이 짧아져요. 머릿속이 엉켜 있으면 자꾸 설명이 길어지고, 핵심이 또렷하면 한두 줄로 끝나거든요.
티루발루바르가 두 줄을 고른 건 게을러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가장 어려운 길을 고른 거예요. 군더더기를 다 덜어 내고 마지막에 남는 알맹이만 남기는 일이니까요. 두 줄짜리 시 1330편은, 그가 그만큼 오래 곱씹고 다듬었다는 증거인 셈이죠.

인도 남쪽 끝 칸야쿠마리라는 바닷가에는 티루발루바르의 거대한 석상이 서 있어요. 키가 약 40미터, 아파트로 치면 13층 높이쯤 돼요. 그런데 이 높이에는 숨은 뜻이 있어요. 티루쿠랄은 133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석상도 그 숫자에 맞춰 133피트 높이로 세웠거든요. 한 사람이 남긴 작은 시집이, 나라가 거대한 조각상으로 기릴 만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두 줄짜리 시가 모이고 모여 바다를 내려다보는 거인이 된 거죠.

티루발루바르는 인생에 꼭 필요한 지혜를, 누구나 외울 수 있는 두 줄짜리 시로 1330편 적은 타밀의 시인이에요. 그 시들을 덕과 부와 사랑이라는 세 칸에 담아 티루쿠랄이라는 한 권으로 묶었죠. 우리가 기억할 건 이거예요.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정말 잘 이해한 말은 도리어 짧아진다는 것. 냉장고 쪽지처럼 작지만 오래 남는 말의 힘을, 그는 2천 년 전에 이미 두 줄로 보여 준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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