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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수학 문제 하나가 도무지 안 풀릴 때가 있어요. 옆자리 친구들은 떠들고, 머릿속은 뿌예지죠. 그러다 조용한 곳에 혼자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아, 이거였구나!' 하고 환해지는 때가 와요. 마치 깜깜하던 방에 불이 탁 켜지는 것처럼요. 지금부터 약 900년 전, 바로 이 '아!' 하는 순간을 평생 골똘히 들여다본 철학자가 있었어요. 이름은 이븐 바자. 그는 사람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아!'의 순간에 '능동지성과의 합일'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말은 어렵지만, 끝까지 읽으면 생각보다 친근한 이야기랍니다.

이븐 바자는 지금의 스페인 남쪽, 그 무렵 이슬람 사람들이 다스리던 '안달루시아'라는 땅에서 살았어요. 사라고사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정확한 출생 연도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략 1080년대 무렵으로 봐요. 한 가지만 잘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철학은 물론이고 의학, 별을 살피는 천문학, 음악까지 손댔고, 한때는 지역을 다스리는 관직에도 있었죠. 무엇보다 그는 안달루시아 땅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첫 세대였어요. 그래서 '안달루시아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연 사람'이라고 불려요. 그의 생각은 뒷날 이븐 루시드 같은 더 유명한 철학자에게로 이어졌고요. 1138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누군가에게 독살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그를 시샘한 사람도 많았다고 해요.

이제 어려운 말을 풀어 볼게요. 먼저 '능동지성'이요. 캄캄한 방을 떠올려 보세요. 방 안엔 책상도 의자도 다 있지만, 불이 꺼져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죠. 우리 눈은 멀쩡한데도요. 그런데 불을 켜는 순간 모든 게 한꺼번에 보여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 머릿속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봤어요. 머리 한쪽엔 '배울 준비가 된 부분'이 있어요. 아직 불 꺼진 방처럼 가능성만 가득한 상태죠. 그리고 그 방에 불을 켜 주는 무언가가 따로 있어야 하는데, 그 '불'이 바로 능동지성이에요. 뒷날 철학자들은 이 불이 사람마다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저 위에서 모두를 비추는 하나의 커다란 등불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둘 더하기 둘은 넷'을 이해할 때 켜지는 불빛과, 다른 사람이 같은 걸 이해할 때 켜지는 불빛이 사실은 같은 등불인 셈이죠.

그럼 '합일'은 뭘까요. 합쳐서 하나가 된다는 뜻이에요. 라디오를 떠올리면 쉬워요. 노래는 늘 공중에 흐르고 있지만, 주파수를 정확히 맞춰야 비로소 또렷이 들리잖아요. 이븐 바자는 사람이 공부하고 깊이 생각할수록,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한 겹씩 벗겨 내고 사물 속에 숨은 '순수한 알맹이'에 가까워진다고 봤어요. 예를 들어 우리 집 강아지, 옆집 강아지, 책 속 강아지를 자꾸 보다 보면, 어느새 색깔이나 크기를 넘어서 '개'라는 생각 자체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게 되잖아요. 이렇게 겉을 벗기고 알맹이만 붙잡는 일을 한 계단씩 끝까지 밀고 올라가면, 마침내 내 생각이 저 커다란 등불과 주파수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와요. 내 머리와 우주의 빛이 하나로 이어지는 거죠. 이게 바로 능동지성과의 합일이에요. 그는 이 순간이야말로 사람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행복이자,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에 손을 대는 일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왜 '혼자'였을까요. 이븐 바자가 남긴 유명한 책 제목이 바로 '고독한 자의 다스림'이에요.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대체로 시끄럽고 어수선해서 깊은 생각을 방해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합일에 이르려는 사람을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 들판에 혼자 돋아난 풀 한 포기'에 빗댔어요.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따로 선 존재라는 뜻이죠. 그런 사람은 무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스스로를 다스리며 집중을 지켜야 한다고 했어요.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깊은 이해에는 조용함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시끄러운 교실을 빠져나와 혼자 문제를 들여다보던 그 아이처럼요.

이 생각은 이븐 바자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았어요. 그의 뒤를 이은 안달루시아 철학자들이 이 불씨를 키웠고, 그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중세 유럽에까지 흘러들어 갔어요. 게다가 그가 말한 그 느낌, 무언가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각하다 '아!' 하고 환해지는 경험은 오늘날 우리가 '몰입'이라 부르는 것과 꼭 닮았어요. 900년 전 사람이 붙잡으려던 순간을, 우리도 공부하다가 그림 그리다가 가끔 만나는 셈이죠. 그러면 한 가지 궁금해져요. 이븐 바자가 말한 합일은 그저 기분 좋은 한순간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순간에 우리 안의 무언가가 영원과 이어진다고 그는 정말로 믿었던 걸까요.

이븐 바자는 약 900년 전 안달루시아에서 살며, 사람이 깊이 생각할 때 켜지는 '이해의 불빛'을 평생 들여다본 철학자예요. 그는 그 불빛을 '능동지성'이라 불렀고, 우리 생각이 그 빛과 주파수가 맞아 하나로 이어지는 가장 높은 순간을 '능동지성과의 합일'이라 했어요. 그리고 그 순간에 닿으려면 시끄러운 무리에서 물러나 혼자 집중하는 고독이 필요하다고 보았죠. 다음에 무언가에 푹 빠져 '아!' 하고 환해지는 순간이 오면, 900년 전 한 철학자가 평생 좇던 그 불빛을 슬쩍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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