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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통치"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왕이 떠올라요. 넓은 땅이 있고, 그 위에 사는 백성이 있고, 높은 자리에서 명령을 내리는 한 사람이 있죠. 그런데 다스릴 나라도 없고, 따르는 백성도 없는 사람이 "통치"를 한다면 어떨까요? 좀 이상하게 들리죠. 약 900년 전, 지금의 스페인 땅에 살던 한 철학자가 바로 그 이상한 질문을 진지하게 파고들었어요. 그의 이름은 이븐 바자예요. 그는 나라가 아니라 전혀 다른 무언가를 다스리는 법을 적은 책을 남겼어요.
이븐 바자는 지금의 스페인 북동쪽 사라고사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그 무렵 이 지역은 이슬람 문화가 활짝 핀 안달루스였죠. 그는 한 가지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고, 음악을 짓고, 약과 사람의 몸을 공부하고, 한때는 높은 자리에 오른 관료로도 일했어요. 요즘으로 치면 과학자이면서 음악가이면서 공무원이기도 했던 셈이에요. 그러다 1138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살아 있는 동안에는 크게 빛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생각은 뒤에 올 더 유명한 철학자들에게 길을 깔아 주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옛 그리스 철학자의 책을 안달루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읽고 풀이하기 시작한 출발점에, 바로 이븐 바자가 서 있었거든요.

이븐 바자보다 앞선 철학자들은 "가장 좋은 나라"를 그려 보곤 했어요. 모두가 지혜를 사랑하고, 옳은 것을 함께 추구하는 도시요. 그런 곳에서는 사람이 굳이 혼자 애쓰지 않아도 돼요. 사회 자체가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부드럽게 밀어 주니까요. 마치 잘 만든 운동장에서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뛰어놀게 되는 것처럼요.
문제는 현실이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잖아요. 욕심도 있고 다툼도 있고, 옳은 길보다 편한 길로 쏠리기도 하죠. 이런 평범한 사회에서, 정말 지혜롭게 살고 싶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라 전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는데 말이에요. 이븐 바자의 고민이 바로 여기서 시작돼요.

그가 쓴 책의 제목이 바로 '고독한 자의 통치'예요. 여기서 "고독한 자"는 친구가 없는 외톨이가 아니라, 주변과 생각이 달라서 홀로 서게 된 사람을 뜻해요. 그리고 "통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에요.
비유하면 이래요.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다들 시끄럽게 떠들고 규칙도 엉망인데, 나만은 조용히 내 공부와 내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고 해 봐요. 주변은 내 힘으로 당장 바꿀 수 없어요. 그렇다면 내가 다스릴 수 있는 단 하나, 바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거예요. 이븐 바자는 좋은 나라가 없을 때 지혜로운 사람이 스스로 지켜야 할 규칙을, 마치 한 사람만을 위한 나라의 법전처럼 차근차근 적어 두었어요. 나라가 한 명으로 줄어든 셈이죠.

이븐 바자는 이런 사람들을 밭에 저절로 돋아난 잡초에 빗댔어요. 농부가 심은 것도 아닌데 알아서 자라난 풀이요. 보통 잡초는 뽑혀 버리는 천덕꾸러기죠. 그런데 그는 이 말을 살짝 뒤집어요.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우르르 갈 때 혼자 다른 씨앗으로 자라난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더 나은 세상을 틔울 씨앗이 될 수 있다고요. 지금은 밭에서 겉돌고 외로워 보여도, 언젠가 새 밭이 열릴 때 가장 먼저 싹을 낼 풀인 거예요. 외롭지만 결코 쓸모없지 않은 자리예요.

그럼 고독한 자는 혼자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이븐 바자의 답은 "생각하는 힘을 끝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에요. 잘 먹고 잘 입고 편하게 사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더 높은 앎으로 한 걸음씩 올라가, 사람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맑은 이해에 다다르는 거예요. 마치 안개 낀 산길을 천천히 오르다가, 어느 순간 구름 위로 올라서서 멀리까지 환하게 내다보는 순간처럼요. 그는 이렇게 머리와 마음으로 누리는 깨달음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으로 봤어요. 몸의 즐거움보다 훨씬 오래가고 깊은 행복이라고요.
이븐 바자의 생각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뒤에 온 이븐 투파일은 무인도에서 혼자 태어나 자라며 스스로 진리를 깨쳐 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썼고, 이븐 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꼼꼼히 풀이해 멀리 유럽까지 이름을 떨쳤어요. 두 사람 모두 이븐 바자가 먼저 깔아 둔 길 위를 걸어간 셈이에요. "주변이 나를 도와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다스릴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무리에서 혼자 떨어진 기분이 드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아요. 환경을 탓하기 전에 내 안을 먼저 가다듬어 본 적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가 말한 통치를 조금은 해 본 거예요.

이븐 바자가 말한 '고독한 자의 통치'는, 다스릴 나라가 없는 사람이 대신 자기 자신을 다스린다는 이야기예요. 좋은 사회가 없을 때 지혜로운 사람은 주변을 탓하며 휩쓸리는 대신, 자기만의 규칙을 세워 생각의 힘을 끝까지 키워 가요. 혼자 자란 잡초가 새 밭의 첫 씨앗이 되듯이요. 바꿀 수 없는 세상 앞에서 내가 다스릴 수 있는 단 하나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 900년 전 한 철학자가 남긴 이 단순한 깨달음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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