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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도 대륙을 지도에서 보면 아래로 갈수록 점점 뾰족해지죠. 그 맨 끝, 세 바다가 만나는 칸야쿠마리라는 곳에 사람 모양의 거대한 돌상이 바다를 등지고 서 있어요. 높이가 40미터쯤 되는데, 아파트로 치면 13층 정도 되는 키예요.
이 석상의 주인공이 바로 티루발루바르예요. 재미있는 건 이 사람이 왕도, 장군도, 종교 지도자도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는 그저 시를 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타밀 사람들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기리려고 이렇게 큰 석상을 세웠죠. 시 한 권 썼을 뿐인 사람을 왜 이렇게까지 떠받들까요?

티루발루바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사실 많지 않아요.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조차 정확히 몰라요. 대략 2천 년 전 사람으로 짐작할 뿐이에요. 남은 건 그가 쓴 책 한 권뿐인데, 제목이 티루쿠랄이에요. '티루'는 거룩하다는 뜻이고 '쿠랄'은 짧은 시라는 뜻이니, 합치면 '거룩한 짧은 시' 정도가 돼요.
이 책은 짧은 시 1330개를 모아 놓은 거예요. 그런데 시 한 편이 정말 짧아요. 딱 두 줄이에요. 우리로 치면 속담 한 마디 길이죠. 짧은 문장 두 줄에 삶의 지혜 하나를 콕 집어 담은 거예요.

왜 굳이 두 줄로만 썼을까요? 길게 풀어 쓰면 더 친절할 텐데 말이죠. 이유는 외우기 쉽기 때문이에요. 옛날엔 책이 귀해서 사람들이 좋은 말을 입으로 외워 전했어요. 짧고 리듬이 있으면 한 번 들어도 머리에 콕 박히죠. 우리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같은 속담을 저절로 기억하는 것과 똑같아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남이 내게 한 나쁜 짓은, 오히려 그에게 좋은 일을 해서 부끄럽게 만들어라. 복수하지 말고 잘해 주라는 말을, 길게 설교하지 않고 두 줄로 끝내 버리죠. 이렇게 짧게 누르면 오래 남아요.

티루쿠랄이 특별한 또 한 가지는 삶을 딱 세 칸으로 나눠 정리했다는 거예요. 첫째는 덕, 그러니까 바르게 사는 법이에요. 정직, 친절, 욕심 버리기 같은 거죠. 둘째는 부,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며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까예요. 셋째는 사랑, 남녀가 만나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예요.
이 순서가 재미있어요. 먼저 사람이 돼라, 그다음 먹고살 방법을 갖춰라, 그러고 나서 사랑하라. 마치 집을 지을 때 바닥부터 다지고, 기둥을 세운 뒤, 마지막에 지붕을 올리는 것과 비슷하죠. 신에게 비는 법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사람으로 잘 사는 법'을 다뤘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타밀은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 등에서 8천만 명 넘게 쓰는 언어예요. 그 타밀 사람들이 티루쿠랄을 '타밀의 성서'라고 불러요. 성서라고 하면 보통 특정 종교의 경전을 떠올리지만, 이 책은 좀 달라요.
이 책엔 '우리 신만 믿어라' 같은 말이 없어요. 그래서 힌두교를 믿든 이슬람교를 믿든 기독교를 믿든, 종교가 없든, 타밀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책으로 여겨요. 학교에서 배우고, 결혼식에서 읊고, 정치인이 연설에서 인용하죠. 한 종교의 경전이 아니라 한 민족 모두의 마음에 깔린 바탕이라, 그 무게를 담아 성서라 부르는 거예요. 전 세계 4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고요.

티루발루바르는 약 2천 년 전, 두 줄짜리 짧은 시 1330개로 '사람으로 잘 사는 법'을 정리한 타밀의 시인이에요. 그는 덕과 부와 사랑이라는 세 가지로 삶을 묶고, 누구나 외워 쓸 수 있도록 짧게 눌러 담았어요. 특정 신을 내세우지 않았기에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의 책이 됐고, 그래서 타밀 사람들은 그 책을 성서라 부르며 그를 위해 바다 끝에 거대한 석상까지 세웠죠. 누군가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건 화려한 권력이 아니라, 짧지만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한마디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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