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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바닷가에서 물을 한 컵 떠 보세요. 이 물은 바다일까요, 아닐까요? 바다에서 나왔으니 바다라고 할 수도 있고, 컵 안에 따로 담겨 있으니 바다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어요. 같다고 하기도, 다르다고 하기도 애매하죠.
800년에서 900년쯤 전 인도에 살던 한 철학자는 바로 이 애매함을 평생의 질문으로 붙들었어요. 나와 신은 같은 걸까, 다른 걸까. 그의 이름은 님바르카예요. 오늘은 이 낯선 이름이 남긴 두 단어, 은총과 자기헌신을 따라가 볼게요.

님바르카는 힌두교 전통 안에서 신과 세계, 그리고 나 자신의 관계를 따진 철학자예요. 정확한 생몰년은 학자마다 의견이 갈려서, 대략 800년에서 900년쯤 전 사람으로 봐요. 그는 크리슈나라는 신과 그 곁의 라다를 함께 모시는 신앙의 흐름을 세웠고, 그 흐름은 지금도 인도에 이어지고 있어요.
전해지는 이야기 하나가 그의 이름에 담겨 있어요. 어느 날 떠돌이 수행자가 그를 찾아왔는데, 해가 지면 음식을 받지 않는 규칙이 있었대요. 그런데 손님이 도착하니 이미 해 질 무렵이었죠. 님바르카가 곁에 있던 님나무 위에 해를 잠시 머물게 해서 손님을 대접했다는 이야기예요. 님나무의 '님'과 해를 뜻하는 '아르카'가 붙어 님바르카가 되었다고 하죠. 물론 전설이지만, 그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는지를 보여 줘요. 손님을 위해 해까지 붙드는 사람이요.
님바르카의 생각을 한 줄로 줄이면 '차이와 비차이'예요. 나와 신은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다는 거예요. 말장난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해를 떠올려 보세요. 해에서 뻗어 나온 햇살은 해와 다를까요? 손등에 비친 햇살을 보면 '햇살'이라고 따로 부를 수 있으니 달라요. 하지만 햇살은 결국 해의 빛이라, 해를 떠나서는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어요. 그러니 다르지 않기도 하죠.
님바르카가 본 나와 신의 사이가 이래요. 나는 신에게서 나왔고 신에게 기대어 있으니 신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에요. 하지만 햇살이 해 그 자체는 아니듯, 나도 신 그 자체는 아니에요. 그가 본 세상에는 세 가지가 진짜로 있어요. 신, 그리고 나 같은 영혼,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물질세계예요. 영혼도 세계도 신에게 기대어 있지만 신과 똑같지는 않아요. 완전히 하나라고도, 완전히 남이라고도 못 하는 이 사이를 그는 '차이와 비차이'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나와요. 그럼 나는 어떻게 신에게 가까워질까요? 햇살이 아무리 애써도 스스로 해가 될 수는 없잖아요.
님바르카의 답이 '은총'이에요. 내 힘으로 기어올라 신의 자리에 닿는 게 아니라, 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 끌어 준다는 거예요. 부모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번쩍 안아 올리는 것처럼요. 아기가 한 일이라곤 부모를 향해 우는 것뿐인데 품에 안기죠.
이게 왜 중요하냐면, 그 시대에도 '수행을 쌓고 지식을 채우면 내 힘으로 벗어난다'는 생각이 꽤 강했거든요. 님바르카는 거기에 대고, 마지막 한 걸음은 내 노력이 아니라 신의 베풂이라고 말한 거예요. 노력을 하찮게 본 게 아니라, 노력만으로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고 본 거죠.

은총이 먼저라면, 나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내가 할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자기헌신'이에요.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입에 물어 옮기는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새끼는 버둥대지 않고 몸에 힘을 쭉 빼고 가만히 맡겨요. 그 '맡김'이 자기헌신이에요. 내가 다 해내겠다고 움켜쥐는 게 아니라, 손을 펴고 나를 통째로 신에게 내려놓는 마음이죠.
그러니까 님바르카의 길은 두 손이 마주 잡는 일이에요. 신은 은총으로 먼저 손을 내밀고, 나는 자기헌신으로 그 손에 나를 맡겨요. 둘 중 하나만으로는 안 돼요. 신의 손만 있고 내 맡김이 없으면 잡을 수 없고, 내 맡김만 있고 신의 손이 없으면 잡을 게 없으니까요.

님바르카의 생각이 특별한 건, 양쪽 극단을 모두 피했다는 점이에요. 나와 신이 똑같다고 하면 내가 곧 신이라 으스댈 수 있고, 완전히 다르다고만 하면 신은 영영 닿을 수 없는 남이 돼요. 그는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았어요. 충분히 가까워서 기댈 수 있고, 충분히 달라서 우러러볼 수 있는 거리요. 너무 붙으면 교만해지고 너무 멀면 외로워지는데, 딱 그 중간을 짚은 셈이죠.

바닷물 한 컵처럼, 나는 신과 같기도 다르기도 하다. 이것이 님바르카가 평생 붙든 '차이와 비차이'예요. 완전한 하나도 완전한 남도 아닌 그 사이에서, 신은 은총으로 먼저 손을 내밀고 나는 자기헌신으로 나를 맡겨요. 어려운 교리 같지만 결국은 그림 몇 장으로 남아요. 해와 햇살, 안기는 아기, 그리고 몸에 힘을 빼고 맡기는 새끼 고양이요. 내 힘으로 닿으려 애쓰기 전에 먼저 손을 펴 보라는, 오래된 권유인 셈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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